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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린이·청소년 대상 경제교육에 대한 문의와 요청이 부쩍 늘고 있다. 부모가 스스로 돈 관리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기도 하거니와 삶 속에서 오만가지 돈 문제로 생생한 고통을 받고 있기에 자녀만큼은 '돈에 밝은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부모들은 세상에는 너무도 좋은 금융정보와 인생 역전의 기회가 넘쳐 흐르는데 나만 미련하고 잘 모르고 뒤처지고 있는 것만 같아 불안해한다.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마냥 금융 트렌드만 좇다가 원금이 손실되기도 하는 피해를 보곤 한다. 으레 부모들은 '나는 이미 늦었구나, 그렇지만 앞으로 이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갈 내 아이만이라도…'라는 절실함을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모든 '교육' 뒤에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부모들의 혼란과 '너만큼은 이런 고생 하지 않길'이라는 절절한 사랑이 뒤엉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시시각각 세상살이의 매뉴얼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선두 그룹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뒤처지지만은 않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모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뒤처짐의 기준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부모들은 대체 어떤 경제 교육을 원하는 걸까? 정확히 내 아이가 경제적으로 어떤 마인드를 갖게 되길 바라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건강한 경제'란 무엇인가? 사실 이는 자녀보다 먼저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근본 철학이 없다면 그 어떤 좋은 교육도 예기치 않은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검증된 경제 교육법?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책 겉표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책 겉표지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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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시리즈를 기억할 것이다. 이 시리즈의 핵심 교훈은 '지연된 만족'이었던 것도 물론 기억하고 있을 것. '돈을 버는 족족 모조리 써버리지 말고, 그 돈을 잘 활용(?)하면 더 큰 만족에 이를 수 있다'는 이 단순한 교훈은 IMF 구제금융 이후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진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간에 '벌자마자 다 빠져나가 버리고 마는 돈 씀씀이 구조'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은 크게 반성하고 어떻게든 '종잣돈'을 만들기로 이를 앙다물었다. 일단 '종잣돈'이 생기고 나면 이를 불릴 '방법'이 있다 하지 않는가!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3억 원 만들기' 열풍에 넥타이 부대가 동참하면서 '투자'의 개념이 생소하던 국민들이 '주식'과 '펀드'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다. 인생 역전의 기회가 있다. 그러려면 '종잣돈'을 마련해야 한다.

이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리즈 4편인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자녀교육법>은 아이가 갖고 싶은 물건을 가지려고 곧바로 돈을 써버리지 않고, 그 돈을 활용해 물건도 얻고 돈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다시 한 번 세련된 경제관념의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핵심은 돈을 즉시 써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돈을 투자(?)해 잘 불려 나가는 것에 있다. 어찌 보면 유대인식 경제교육법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다. 쓰지 않고 대를 물려 돈을 남기면서 '복리'를 활용하면 3대 째엔 어김없이 누구나 자산가가 된다는 놀라운 교훈이라고나 할까. '지금을 참으면 나중이 행복하다'는 인내의 결과물은 아름다운 철학이요, 근검절약하는 우리 조상들의 풍습과도 닮았다.

결국, 좋은 물건과 서비스가 가득한 환경 속에 살면서 내 후손이 부자가 돼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근데 후손의 행복이야 그렇다 치고, 내 한 번뿐인 삶은 어떻게 하면 좋나.

정작 문제는 쓰지 않고 수중에 갖고 있는 돈을 '불려야 한다'는 데 있다. 그래야 이론적으로 '종잣돈'인 원금을 남기고 이자로 먹고사는 생활 방식이 나오니 말이다. 원래 농사지을 때도 종자는 먹어치우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아주 단순한 투자라도 '원금'이 보존되지 않을 수 있다는 놀라운 리스크가 있다. 그러면 이자로 생활을 하기는커녕 원금까지 날려버리는 이중고를 겪게 되는 셈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탁월한 해법을 내놓을까.

'실패는 누구나 겪는 과정이야. 긍정의 철학과 좌절하지 않는 굳센 신념을 가지렴' '될 때까지 좌절하지 말고 해내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꾸준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해' 등은 너무나도 금과옥조 같은 말씀이다. 투자라는 게임은 될 때까지 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말아 드실 돈이 없을 때 비로소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 실제 재무 상담 시 다섯 가중 중 한 가정꼴로 주식 몰락자 혹은 주식 중독자가 있었다. 이들은 가정의 위기 요소와 같다. 그런 분들은 주로 남성인데, 그의 아내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냥 어디서든 건강한 몸으로 50만 원만이라도 꾸준히 벌어왔으면 좋겠어요. 가장 답답한 건 더 이상 일을 해서 돈을 벌 생각을 안 하고, 집에만 처박혀 있다는 거예요. 50만 원, 100만 원은 돈으로도 안 보이는지…. 그 돈 벌자고 그 고생하냐는데 할 말이…."

아이들을 '불리기' 게임에 동참시키려고요?

지난 9월 2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가 1,700선이 무너졌을 당시.
 지난 9월 2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가 1,700선이 무너졌을 당시.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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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이렇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아이들에게 조기 주식 투자 교육을 시키는 곳이 많다. 부모들은 "주식이나 투자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 않느냐" "현재의 최첨단 금융공학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배워놔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씀하신다. 물론 지당하신 말씀. 그러나 현재 이뤄지고 있는 '투자'의 모든 성공의 법칙은 '더 바보 게임'이다. 즉 나보다 '더 바보'가 웃돈을 더해 내놓은 주식이나 부동산을 덥석 사 줘야만 한다. 그래야 나의 수익이 창출되니까.

투자자들은 계속 이익을 남겨 팔아 치우려 할 것이고, 누구도 손해를 보고 팔려 하지 않을 것이므로 주식이나 부동산의 가격은 끝없이 상승해야 한다는 욕망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거품 가격이 형성되다가 실제 제 가치로 수렴돼 거품이 붕괴되면 결국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 주자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다른 사람의 실패가 나의 수익이 되는 이 게임의 기본 규칙은 '타인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의 집을 지을 수 없다'는 옛 가르침을 곱씹어보게 한다. 게다가 일한 대가와 보람으로서의 돈벌이 건강성이 일확천금의 꿈에 의해 무시를 당하게 된다면? 우리 삶의 건전한 토대를 이루는 경제의 기반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에 대한 이해도 없이 아이들을 '불리기' 게임에 동참시키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그냥 성실히 일해서 번 돈의 10% 정도만 십일조 내는 셈 치고 모은 뒤 나머지는 하고 싶은 데 제대로 쓰면서 살면 안 될까. 나중 쓰기 위해 모아둔 그 돈은 크게 이자가 붙지 않더라도 잃지만 않을 수 있다면, 장롱 안에 모은다 한들 그게 더 나을 성 싶다. 그냥 이렇게 사는데 뭐 그리 최첨단 정보나 정교한 계산이 필요할까 싶지만, 더 나은 삶에의 욕심은 현실을 훨씬 복잡하게 만든다.

"우리 아이는 기특하게도 저축만 해요"

경제관련 강좌에서 만난 한 어머니는 알뜰하고 저축 잘하는 초등학생 4학년 아들을 몹시 자랑스러워 했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 같은 때 친척들에게 돈을 받으면 모조리 저축해요. 전 건드리지도 않아요. 제가 일주일에 1만 원 정도 용돈을 주거든요. 그런데 하나도 안 쓰고 저축해서 동네 사람들이 다들 기특하다 그래요. 벌써 통장에 300만 원이 넘는 돈을 갖고 있는 알짜 부자라니까요."

용돈을 일주일에 1만 원씩 받는데 그걸 몽땅 저축한다면 실제로 준비물을 사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 드는 돈 등은 어떻게 할까. 어머니는 "그때그때 필요하다고 하는 만큼 주기도 하는데, 얜 거의 아무것도 안 사는 편이에요"라며 "친구들한테도 주로 얻어먹거나 하지 자기가 돈 쓰진 않아요"란다.

용돈이란 게 말 그대로 쓸 용(用)자를 써서 '쓸 돈' 아닌가. 사는 데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비용'이 있게 마련인데, 무조건 안 쓰는 게 능사일까. 자기가 써야 할 돈을 어떻게든 꼬불쳐서 자기 주머니에 모으기만 하고, 정작 필요한 곳에 쓸 줄을 모른다면…. 이 아이는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

"어머니, 제가 사회 생활할 때 제 직장 상사인 분이 자기 돈은 한 푼 안 쓰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구두쇠 양반이었거든요. 다들 왜 저러고 사나 했죠.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행색이 형편없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담배 끊는다면서 몇 년째 꼭 한 개피씩 얻어 피우고 다니고…. 이런 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축 강박을 키우는 것을 경제교육이라 여기시는 분들 참 많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 돈이 있을 때 미래를 준비하는 저축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다만 돈을 어떻게 하면 많이 모으느냐보다 왜 모으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지금 쓸 돈과 나중 써야 할 돈의 분배 결정은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개 '지금 쓸 돈'이 '나중 써야 할 돈'보다 비중이 크기 마련이다. 만약 누군가가 밝은 미래를 위해 현재 지나치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고 있다면? 묻고 싶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 행복해지시려구요?"

어디에 얼마 정도 필요한지 자녀 스스로 알게 하는 대화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한 가정의 총 교육비 예산 내역이다. 6개월 정도 꾸준한 내역 조사 결과,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부모님이 우선 많이 놀라셨다. 항목별 비용 조정도 하고 부모님 집행 항목과 자녀 스스로 집행해야 할 항목을 분리해서 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예산 내역을 정리해놓으니 무엇이 필요할 땐 서로 의논해서 주어진 예산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협의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 어느 가정의 자녀 교육비 예산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한 가정의 총 교육비 예산 내역이다. 6개월 정도 꾸준한 내역 조사 결과,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부모님이 우선 많이 놀라셨다. 항목별 비용 조정도 하고 부모님 집행 항목과 자녀 스스로 집행해야 할 항목을 분리해서 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예산 내역을 정리해놓으니 무엇이 필요할 땐 서로 의논해서 주어진 예산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협의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 박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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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아이가 스스로 어디에 얼마를 쓰고 사는지를 파악하도록 돕는 것은 어떨까. 말 그대로 내 삶의 경제적 버전에 대한 기록을 남겨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인식해보는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많이 쓴다, 적게 쓴다는 판단 이전에 어디에 얼마 정도가 든다는 기본 개념부터 정립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준비물을 구입하는 데는 얼마,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는 얼마, 영화를 보러 가는 데는 얼마, 사고 싶은 것을 사는 데는 얼마…. 아이들이 삶의 기본 비용을 이해해야 다음부터 스스로 '예산'이라는 것을 계획해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산'은 한마디로 '정해놓고 쓰자'는 기준이다. 어디에 얼마 쓰고 사는지 그 현황을 알아야 예산을 배정할 수 있고, 정해두고 쓰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다. 지금 당장 사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에게 "지금은 안 돼!"라고 이야기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살 수 있을까를 더불어 모색하는 과정이 경제교육이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할 일은 없다. 다만 정해진 예산 내에서 뭔가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다른 것과의 우선순위를 조율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게 '경제 살림'의 기본이고, '경제 교육'의 시작이다.

- 다음 기사에 계속

덧붙이는 글 | 박미정 시민기자는 현재 (사)여성의 일과 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참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그:#어린이경제교육, #용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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