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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글로벌 게임사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가장 유명한 글로벌 게임사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 블리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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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매장을 뒤로 한 채 좁은 복도에 서서 담배를 묵묵히 태우는 PC방 사장님의 모습은 이제 아주 흔한 광경이 됐습니다. 그만큼 대다수의 PC방들은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얼어붙은 취업시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규모 창업으로 몰리면서 PC방 업계의 어려움은 날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PC방 사업이 하향세를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요금은 10년 전에 비해 별다른 차이 없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지만 신작 게임들이 갈수록 고급화되면서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씩은 꾸준히 시설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오르는 임대료와 전기세 등은 업주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요인들입니다.

게다가 인기게임들의 사용료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노하우 없이 쉽게 창업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새로운 경쟁 PC방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눈앞이 캄캄해질 지경입니다.

사실 PC방에서 올릴 수 있는 매출은 한정돼 있습니다. 업주가 보유한 매장의 좌석 수와 운용 시간, 그리고 1000원을 간신히 넘는 요금을 계산하면 일일 최대 매출을 계산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매출 안에서 앞서 열거한 운영비, 임대료, 전기세, 그리고 각 게임들에 대한 사용료까지 지불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게 PC방 업주들의 한결같은 고민입니다.

덕분에 한때 2만5000개 이상으로 추정되던 PC방의 수는 1만6000개 수준까지 급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PC방 업주들의 한숨 섞인 담배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지난 8월 말, PC방 업주들의 한숨을 더욱 깊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른바 '디아블로3 소송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대표적인 소상공인들인 PC방 업주들과 해외 대형 게임사간의 불합리한 힘겨루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오과금 해결 요구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블리자드

지난 5월 공개된 디아블로3는 국내에서도많은 유저가 전야제에 참석하며 큰 화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 공개된 디아블로3는 국내에서도많은 유저가 전야제에 참석하며 큰 화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 블리자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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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등으로 유명한 글로벌 대형 게임사인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는 지난 5월 15일 자사의 대표적인 시리즈 게임인 '디아블로'의 최신작 '디아블로3'를 발매했습니다.

그리고 디아블로3는 전세계적으로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대대적인 흥행에 성공합니다. 국내에서도 정식 판매 하루 전 개최된 전야제 행사에 무려 5000명 이상의 유저들이 군집하며 9시 뉴스를 장식할 정도로 화제를 낳은 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편의 게임이 큰 흥행을 거두게 되면 PC방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마련입니다. 국내 유저들의 상당수가 PC방에서 게임을 즐기기 때문에 인기가 높은 게임이 출시되면 당연히 PC방 매출도 올라가기 때문이죠. 그런데 디아블로3의 엄청난 흥행에도 불구하고 PC방 업주들은 오히려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사건의 시작은 '오과금'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PC방은 특정 게임을 고객들에게 자유롭게 제공하는 대신 시간당 일정금액을 게임사에 지불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특정 PC방에서 A라는 게임을 한 달 동안 100시간 사용했다면 미리 정해진 시간당 사용료를 계산해 게임사에 납부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디아블로3의 경우 서비스 초기에 40만 명이 넘는 고객들이 집중되며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말 그대로 제대로 게임에 접속할 수 없는 상황이 2주일 이상 지속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블리자드는 접속 오류로 게임이 플레이되지 못한 시간까지 계산해 PC방에 요금을 부과했습니다. 정상적인 과금이 아닌 오과금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당연히 PC방 업계는 강하게 반발했고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인터넷PC방문화협회(이하 인문협)'를 통해 조속한 사태 해결을 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이들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인문협이 블리자드의 한국지사인 블리자드코리아에 수차례 공식면담을 요구하고 내용증명까지 보냈지만 아무런 대답도 받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PC방 업주들의 1인시위까지 이어졌지만 블리자드의 침묵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두 당사자가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는 기본적인 자리마저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실제로 관련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블리자드코리아'를 방문했던 지난 7월에도 그들의 입장은 여전했습니다. 오과금 문제와 관련, 어떤 답변도 밝힐 수 없으며 PC방 업주들의 주장에 대해서 공식적인 대응을 할 계획은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블리자드의 외면에 지친 PC방 업주들이 인문협을 통해 지난 8월 31일 블리자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하게 되면서 결국 이 문제는 법원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PC방 업주들이 소송까지 하고 나섰지만, 블리자드의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디아블로3 오과금 소송과 관련하여, 블리자드는 지난 7월에 답변했던 '오과금 피해를 입은 업주들에게 개별 보상을 완료했지만 구체적인 보상 내역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우월적 지위 악용, 힘없는 PC방 업주 속수무책

PC방 업주들은 1인 시위로 오과금의 부당함을 알려지만 블리자드의 침묵은 여전했습니다.
 PC방 업주들은 1인 시위로 오과금의 부당함을 알려지만 블리자드의 침묵은 여전했습니다.
ⓒ 인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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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블리자드는 PC방 업주들의 요구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국내 게임 시장을 수익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해외 게임사(블리자드)와 소상공인(PC방 업주)간의 불공평한 힘의 논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PC방 입장에서 블리자드는 철저한 '갑'입니다. 블리자드가 제공하는 인기 게임들을 서비스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블리자드의 행태에도 당장의 매출을 올려야 하는 PC방 업주들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항변을 하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적자에 허덕이는 PC방으로서는 손님을 끌어주는 인기 게임을 거부할 현실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블리자드가 PC방 업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소송을 시작했음에도 PC방 업주들은 여전히 디아블로3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덕분에 블리자드 입장에서는 PC방 업주들의 불만이나 소송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고객들이 찾는 이상 PC방이 자사의 게임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블리자드는 PC방 업주들의 요구는 묵살했지만 수익의 원천인 고객들의 불만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디아블로3'의 접속 오류로 인한 고객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이례적으로 대대적인 환불정책을 시행했으며 자사의 다른 유료 게임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특혜까지 아낌없이 제공했습니다. PC방 업주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제대로 된 대화에 응하지 않았던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블리자드가 국내 게임 산업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일반적으로 국내 게임사의 경우 한 편의 게임이 큰 흥행을 거두게 되면 산업 전반의 성장이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임으로 인한 수익이 인력 충원 및 신작 개발비로 투자되며 시장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적지 않은 대형 게임사들이 브랜드 이미지 상승 및 이미지 재고를 위해 사회 공헌 사업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물론 국내 게임사들에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국내 게임 산업의 성장'이라는 대의명분에는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다릅니다. 국내에 지사만 설립해 놓았을 뿐 그들이 한국 시장에서 거두는 수익은 대부분 해외 본사로 넘어갑니다. 개발진 및 인프라가 해외에 있기 때문에 국내 시장 재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 환원 및 공헌 사업에도 인색합니다.

블리자드는 지난 2010년부터 3년 동안 매년 2억 원씩 총 6억 원을 한국장학재단이 시행하는 사랑드림장학사업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블리자드가 지난 1998년부터 국내 게임 산업에 뛰어들었다는 점과 이 사업을 시작한 시기가 디아블로3의 개발착수 발표 시점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게임 홍보를 위해 급조된 지원사업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소송에 대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법원이 PC방 업주들의 손을 들어준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보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소송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더 이상의 불합리한 대우는 받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입니다.

실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PC방 업주들. 여전히 진행 중인 그들의 소송에서 힘없는 소상공인들의 슬픔이 묻어나오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정광연 기자는 <경향게임스> 취재기자입니다



태그:#블리자드, #PC방, #소상공인, #디아블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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