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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크카르카.
▲ 로지 주변 모습 야크카르카.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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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캉사르(3730m)에서 예기치 않게 이틀을 숙박하였습니다. 틸리초 호수(4920m)를 가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입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제가 편리한 대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어제는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를 하루 종일 걸었습니다. 덕분에 고소에 적응할 수 있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야크카르카 가는 길

야크카르카로 떠나면서
▲ 캉사르 마을 모습 야크카르카로 떠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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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크카르카(4110m)로 출발하였습니다. 트레킹은 캉사르 마을 뒷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해발 3000m대의 고도를 걷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어제 고도에 대한 적응 훈련을 하였음에도 숨이 목까지 차옵니다.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언덕을 오르는데 무려 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캉사르 마을 뒷편에서
▲ 틸리초 모습 캉사르 마을 뒷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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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사르 마을 뒤편에서
▲ 마낭과 마르샹디강 캉사르 마을 뒤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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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도착하자 캉사르 마을뿐만 아니라 안나푸르나Ⅲ와 틸리초 피크 아래 거대한 계곡이 펼쳐져 있습니다. 계곡에는 마을과 강이 조화를 이루며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설산과 마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입니다. 이 길을 며칠 걸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해발 4000m를 넘었습니다.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대지는 황량함. 그 자체입니다. 수목한계선 아래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 모습을 자랑하던 나무들이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다. 척박하고 황량한 고산 지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겸손함인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낮아질 때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의 삶이 가능하겠지요.

계곡 건너에는 마낭에서 출발하여 야크카르카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이었는데 저는 지금 능선 위에 서 있습니다.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이겠지요. 세상을 계획대로 살 수 있다면 무미건조할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변수가 있기에 세상은 살만한 곳 같습니다.

휴식과 여유의 중요성

계곡 건너 마낭에서 야크카르카 가는 길 모습
▲ 야크카르카 가는 길 계곡 건너 마낭에서 야크카르카 가는 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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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가 오늘 일정은 점심 무렵에 끝난다고 합니다. 시간으로 보아 더 갈 수 있지만, 고소 적응 때문입니다. 4000m 고지에서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오전에 일정을 끝내는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히말라야는 걷는 것 못지않게 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만 보고 걸어 온 우리에게 휴식과 여유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저 멀리 야크카르카가
▲ 야크카르카 모습 저 멀리 야크카르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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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사르를 출발한 지 4시간 30분 정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야크카르카(4110m)는 말 그대로 '야크의 방목장'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에 걸맞게 야크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야크는 해발 3000m 이상에서만 살 수 있는 동물입니다. 고산지대의 사람들에게 고기, 젓, 털 그리고 배설물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제공합니다. 

넓은 개활지에 자리 잡은 숙소는 무척이나 아담하였습니다. 객실과 식당이 분리되어 있으며 담장은 돌담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돌담 너머로 푸른 하늘과 설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설산을 보고 있자니 눈이 즐거워집니다. 로지에는 두 명의 종업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로지 주인은 겨울철에는 따뜻한 포카라에 거주한다고 합니다. 자본의 논리는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든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거울 속의 당신은...

야크카르카 숙소에 도착하여
▲ 숙소 야크카르카 숙소에 도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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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식당에 거울이 있습니다. 트레킹을 시작하고 난 후, 처음 거울을 보는 것 같습니다(물론 기억이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거울 저편에 저를 닮은 낯선 얼굴이 있습니다. 트레킹 이후 한 번도 면도하지 않았으며 세수도 해발 3000m를 넘으면서 하지 않았습니다. 거울 저편의 꾀죄죄한 트레커의 모습은 낯익어 보이면서도 처음 보는 모습입니다. 

"거울 저편의 낯선 이는 무엇을 위해 히말라야를 걷고 있을까요?"

오랜만에 빨래하고 침낭을 볕에 말렸습니다. 미지근한 물이지만 수건에 물을 적셔 얼굴도 닦았습니다. 빨래와 세수를 한 것뿐인데 큰일을 한 것처럼 가슴 뿌듯합니다. 따스한 햇살이 몸과 마음을 모두를 여유롭게 합니다. 해발 5416m 쏘롱라를 넘어야 한다는 중압감도 잊은 것 같습니다. 한가한 여행자의 모습으로 식당에 모여 걸어온 길에 대한 무용담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석양이 질 무렵에 혼자 숙소 뒤편에 있는 강가에 갔습니다. 사람의 인기척이 없는 곳을 택하여 자리를 잡고 몸에 걸친 옷을 모두 벗었습니다. 언젠가 책에서 히말라야의 기(氣)를 받기 위해 옷을 벗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저도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옷을 벗자, 기(氣) 보다는 히말라야의 세찬 바람이 먼저 느껴집니다. 1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옷을 입었습니다.

딸의 생일

틸리초 호수와 야크카르카 이정표
▲ 팻말 틸리초 호수와 야크카르카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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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 생각하니 오늘이 딸의 생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겨울이면 여행을 떠났기에 아이와 생일을 함께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난겨울은 아이의 대학입학시험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초조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여행준비를 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제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 대한 교육이라 생각하고 항공권을 예약하고 여행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번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공지영의 <즐거운 우리집>과 전경린의 <엄마의 집>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책의 공통점은 평범하지 못한 가족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른 내용이지만, 두 작가가 주는 메시지는 가족의 소중함입니다. 오늘 밤은 가족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며 긴 밤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로지의 식당에는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한 독일 여행사 포스터가 걸려 있습니다.

"Die Welt und sich selbst erleben!"
"세상과 자기 자신을 경험하라!"

고산 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야크 모습
▲ 야크 모습 고산 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야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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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네팔,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라운딩, #야크카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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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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