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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미얀마 붐'이 일고 있다. 군부독재를 청산하겠다고 밝힌 미얀마 신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EU·일본·인도 등 경제선진국에게 미얀마는 글로벌 경제의 '그린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세계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개척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 이에 미얀마가 우리에게 '신 블루칩'으로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지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명과 암을 가늠해본다. 이번 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아 지난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으며, 미얀마 경제수도인 양곤과 인접국 라오스의 일부 도시를 둘러봤다. [편집자말]
지난 6월 20일 미얀마 양곤의 도심 풍경. 미얀마 사람들은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버스에는 안내원이 있어서 요금을 받는다. 점차 양곤에 차들은 느는데, 막상 도로는 패여 비가 내리면 물웅덩이가 곳곳에 만들어지기 일쑤. 곳곳에서 보수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체적인 도로 정비가 필요하다.
 지난 6월 20일 미얀마 양곤의 도심 풍경. 미얀마 사람들은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버스에는 안내원이 있어서 요금을 받는다. 점차 양곤에 차들은 느는데, 막상 도로는 패여 비가 내리면 물웅덩이가 곳곳에 만들어지기 일쑤. 곳곳에서 보수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체적인 도로 정비가 필요하다.
ⓒ 유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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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땅' 미얀마에 온 첫날부터 미얀마의 속살을 보러 탁발을 나선 승려처럼 거리로 나섰다. 배고픔을 잊은 지도 오래다. 아니, 배고픔보다는 내가 서 있는 이 땅, 미얀마에 대한 궁금증이 더 허기지게 한 게 맞은 듯하다. 하지만 거리는 깜깜했고, 인적은 드물었다. 일단 무작정 큰길을 찾아 나섰다.

어둠 속에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큰길로 가는 골목은 울퉁불퉁, 곳곳에 물웅덩이도 있었다. 전력난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현지시각이 오후 8시쯤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웬만한 건물의 불빛은 꺼져 있었다. 미얀마 제1의 도시 양곤이 이러할진대, 다른 지역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띄엄띄엄 불빛이 있었고, 가끔 오가는 차량의 불빛이 길잡이를 해주었다.

며칠 후 들은 이야기이지만, 고성민 코트라(KOTRA) 양곤무역관 차장은 "미얀마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바로 '전력' 문제"라며 "급속한 전력 수요 증가에 비해 턱없이 설비가 부족하고, 무엇보다 송배전계통의 불안정으로 전기 공급에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 차장은 "나아가 전력난이 더 이상 바닥으로 내려갈 곳 없는 미얀마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면서 "전력 부문의 개발 등 성장을 위한 기초 인프라 확충이 현 미얀마 정부의 최대 관심사"라고 강조했다.

이후에도 언급하겠지만 그만큼 미얀마에 가면 피부로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발전의 토대가 되는 전력과 도로, 통신 등 기초 기반 시설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 6월 20일 미얀마 양곤 도심 풍경. 큰길에 차들이 신호에 걸려 정차한 틈에 '행운의 꽃'을 팔고 있는 미얀마인. 그 뒤쪽으로 삼성 전광판이 보이나 미얀마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가 바로 '전력' 문제로 인해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지난 6월 20일 미얀마 양곤 도심 풍경. 큰길에 차들이 신호에 걸려 정차한 틈에 '행운의 꽃'을 팔고 있는 미얀마인. 그 뒤쪽으로 삼성 전광판이 보이나 미얀마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가 바로 '전력' 문제로 인해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 유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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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경제발전 위해 꼭 필요한 이것은?

코트라(KOTRA) 양곤 무역관에 따르면, 미얀마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은 230㎸ 132㎸, 66㎸의 송전망을 통해 국가전력망에 공급되며, 주요 도시에 있는 163개 변전소를 통해 최종적으로 일반가정에 공급되는 전압은 230V고 산업공단은 400V라고 한다. 무엇보다 미얀마 전력 손실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력손실률이 2010/11년의 전력 생산량과 소비량의 차이는 21억5700만㎾h로 25%나 됐다고 한다. 이는 송배전 시설이 낙후되고, 낮은 전압의 송배전망에 의존하는 점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미얀마 정부는 현재 발전소 건립을 확대해 전체 발전량을 높이는 한편, 송배전망을 개선해 전력손실률을 줄이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외국인의 전력분야 투자가 본격화되고 있다. 미얀마로의 우리나라 송배전 관련 수출 현황을 살펴보면 아직 전체 금액은 적지만, 2013년 1~5월 전년 동기 대비 30%에서 최대 1만4000%까지 빠른 속도로 증가함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우리 정부는 송배전 분야의 경우 전력손실률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여러 개의 신규 발전소를 건립하는 효과가 있어 효율적인 송배전망 구축을 위해 정책적으로 미얀마를 지원하기로 했다.

'제1차 한·미얀마 경제협력 공동위원회' 참석차 지난 6월 19일 미얀마를 전격 방문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깐 저우 미얀마 국가기획경제개발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예정된 미얀마와의 더 많은 경제협력을 위해 한국 정부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사업을 확대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깐 저우 장관은 "EDCF와 KSP(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 : 개발도상국에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하는 사업)를 통한 한국의 지원과 협력에 감사드린다"면서 특히 "한국이 미얀마의 전력문제에 기여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길에서 만난 미얀마 '청년 의사'에게 듣다

미얀마 양곤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깐도지 호수 인근에 있는 대형 고급 음식점. 이런 곳을 제외하고 일반 음식점들은 전력난으로 영업을 중지하고 일찍 문을 닫는다. 일반인이 사는 곳의 골목길에는 띄엄띄엄 가로등 같은 등불이 켜져 있기는 하지만, 그 불빛만으로 어둠을 밝히기에는 부족하다.
 미얀마 양곤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깐도지 호수 인근에 있는 대형 고급 음식점. 이런 곳을 제외하고 일반 음식점들은 전력난으로 영업을 중지하고 일찍 문을 닫는다. 일반인이 사는 곳의 골목길에는 띄엄띄엄 가로등 같은 등불이 켜져 있기는 하지만, 그 불빛만으로 어둠을 밝히기에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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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로 나서자 멀리서 환한 불빛이 보였다. 대형 음식점들이다.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어서인지 환하다. 사실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음에도, 지리도 잘 모름에도, 지도 한 장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은 막연히 현지 미얀마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던 내 앞에 어둠이 펼쳐지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한참을 걸어 큰 길로 나오면서 현지인을 만나고자 하는 기대가 조금 줄어들었고, 그러면서 배고품이 밀려왔다. 결국 사람보다 현지 음식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밀려왔다.

이런 갈망이 전해진 것일까. 한 청년이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는 내게 "나 영어 할 줄 알아"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에게 난 자연스럽게 배고픔을 호소(?)했고, 주변 식당을 소개받았다. 하지만 식당은 미얀마 초보자에게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미얀마식 샤브샤브(Hot Pot) 식당이었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제안했다.

미얀마 양곤에 있는 Hot Pot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 미얀마식 샤브샤브다.
 미얀마 양곤에 있는 Hot Pot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 미얀마식 샤브샤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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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녁을 먹었나? 저녁을 먹지 않았다면, 같이 먹자. 대신에 네가 추천해준 그 식당에 가서 대신 주문 좀 해 달라. 물론, 우리의 식사비용은 내가 지불할게."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멀리 한국에서 온 이방인의 갑작스러운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우리의 식사 자리는 성사됐고, 자연스럽게 내가 궁금해 했던 미얀마에 관한 이야기 들을 수 있었다. 일종의 즉석 인터뷰가 이뤄진 것.

그 청년의 이름은 네이 묘 아웅(27·Nay Myo Aung)이었다. 직업은 의사. 아직 개업하지 못한 공립병원 소속이라고 했다. 미혼이었으며, 여자 친구도 있다고 했다. 여자 친구의 직업 역시 의사. 집은 양곤이 아니며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고 했다. 내가 이날(6월 19일)에 와서 이야기 나눈 첫 번째 미얀마 현지인이라 특별히 반갑다고 했더니, 그 청년 역시 직접 한국인을 접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순간의 친절이 인연을 만들었고, 그 인연으로 저녁을 먹게 되고, 미얀마를 듣게 됐다. 우선 음식을 주문하고 익기를 기다리면서 쉽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주제인 '한류'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미얀마에서 처음 맺은 인연의 주인공은 '청년 의사' 네이 묘 아웅(Nay Myo Aung·27).
 미얀마에서 처음 맺은 인연의 주인공은 '청년 의사' 네이 묘 아웅(Nay Myo Aung·27).
ⓒ 유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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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드라마 보나? 혹시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면?
"종종 본다. 한국 드라마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성유리다. 너도 성유리 좋아하나? 미얀마에서 한류가 시작된 것 아마도 <가을동화>란 드라마부터였을 것이다."

불쑥 물었지만, 통했다! 한류의 힘이 느껴졌다. 그래서 두서없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 최근 전 세계적으로 미얀마를 주목하는 것을 알고 있나.
"알고 있다."

- 그렇다면 미얀마 젊은이들로서 세계 선진국으로부터 배우고 싶거나 원조받고 싶은 게 있다면? 가장 우선으로, 관심을 두는 분야는?
"음…. 테크놀로지(기술)다. 우리에게 자원은 모든 게 풍부하지만 그것을 개발할 기술이 부족하다. 그리고 IT, 그러니까 컴퓨터 관련된 분야다. 하드웨어 쪽보다 특히 소프트웨어 쪽에 관심이 많다. 하나 더 이야기하면 휴대폰이다."

- 미얀마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뭔가?
"비즈니스맨이다."

- 당신과 같은 의사는 선호하지 않나?
"의사보다 비즈니스맨이 돈을 더 잘 번다.(웃음) 월급이 400달러(한화로 45만원 정도) 정도다."

- 그렇다면 의사들의 월급은 어느 정도인지 물어봐도 되나.
"내 월급은 26만 짯(약 266달러 정도)이다. 물론 개업을 한 개인병원 의사들은 양곤에서 1000달러 이상을 벌기도 한다. 하지만 드문 경우고 국가에 소속된 의사들은 월급이 적다. 그래서 투 잡(개별 야간 진료)을 많이 한다. 양곤 이외의 지역을 가면 의료 기술이 상당히 낙후됐다. 의약품도, 장비도 부족하다."

- 당신 역시 나중에 개업을 양곤에서 할 건가?
"미얀마 시골에 가면 의사들이 부족하다. 고향으로 갈 거다. 한국 의사들(의학단체 등)이 미얀마에 와서 많이 활동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한국 의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의술 등을) 많이 배워야 한다."

- 혹시, 좀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오랫동안 군부가 지배해오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직업 군인' 선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인 부분이라 말하기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된다.
"괜찮다. 이제 미얀마도 변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섰다. 이제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야기도 자주 한다. 많은 이들이 군사정부 때 힘들고 어려워서 군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떼인 세인이 대통령 된 후에 미얀마는 경제적인 발전을 매우 바란다. 참, 군인 월급은 200달러 정도밖에 안 된다. 요즘엔 엔지니어들이 돈을 더 잘 번다. 군부가 오랫동안 정치해서 그렇지, 미얀마는 원래 시장 자본주의 나라다."

의사 청년 아웅과 식사를 하면서 미얀마의 대표 맥주인 '미얀마 비어'도 꽤 많이 나눠 마셨다. 그는 약간 불콰해진 얼굴이 됐지만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 손짓 발짓 다 섞어서 하는 내 짧은 영어 질문을 인내심을 갖고 잘 들어줬고, 나중에는 내 질문에 답하기보다 한국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첫 번째 미얀마-한국 친구가 됐다. 끝으로 난 그에게 미얀마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물었다.

"비즈니스(경제적 투자)를 위해 오는 한국인들은 미얀마에 오면 미얀마에 맞추시기 바란다. 미얀마 사람들은 급하고 화내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본다. 그리고 미얀마인의 삶의 가치라... 내 기준으로 말하자면, 첫째는 '평화'다. 그다음은 '휴머니티'. 마지막으로 나와 나라의 '발전'이다."

6월 19일 미얀마 양곤의 거리 풍경. 교복을 입은 미얀마 학생들의 모습.
 6월 19일 미얀마 양곤의 거리 풍경. 교복을 입은 미얀마 학생들의 모습.
ⓒ 유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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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은 미얀마 청년들도 밀려드는 세계의 관심에 적극적인 반응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과 미얀마인들의 민족성이 달라 한국처럼 빠른 성장을 못 하겠지만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을 끝으로, 아쉽지만 밤이 깊어 자리를 마무리했다. 숙소로 향하는 길, 아웅이 동행을 해줬다. 혹시나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을까 하는 걱정이었는지, 덕분에 쉽게 숙소에 도착했다.

많은 이들이 미얀마를 두고 "인연이 없으면 올 수 없는 나라"라고 말한다. 미얀마에 온 첫날부터 '의사 청년' 아웅과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미얀마가 지닌 묘한 '인연의 힘'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난 6월 20일 미얀마 양곤 외곽에 있는 한 대학교이 여학생들이 학교 앞 가게 앞에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얀마는 대학생도 교복을 입으며, 여학생들의 얼굴에는 미얀마 전통 화장품인 '타나까'가 발라진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6월 20일 미얀마 양곤 외곽에 있는 한 대학교이 여학생들이 학교 앞 가게 앞에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얀마는 대학생도 교복을 입으며, 여학생들의 얼굴에는 미얀마 전통 화장품인 '타나까'가 발라진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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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한인 의사에게 들은 미얀마 사회 운영체제의 문제

그 인연 때문이었을까? 숙소에 들어서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미얀마 양곤 초등학생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보건의료사업을 펼친 한국건강관리협회(회장 조한익 서울의대 명예교수, 이하 건협) 소속의 보건의료사업단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6월 12일부터 19일까지 7박 8일간의 보건의료사업을 마무리하고 늦은 밤 귀국 비행기를 타러 나서는 길이었다.

황의혁 건강사업본부 부본부장(대외협력부장)에 따르면, 이 기간에 미얀마와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기술협력협약(TCA)을 체결했으며, 양곤 인근 3개 타운십 학교에 보건실 인프라 구축을 위해 구급의약품세트를 전달했다고 한다. 또 기생충 검사실 인프라 구축을 위해 미얀마 국립보건연구소(NHL)에 관련 검사장비 및 기자재, 소모품, 보건교육차량, 기생충 감염자 치료를 위한 구충약품을 지원했으며, 10개 초등학교 1547명을 대상으로 기생충감염률 실태조사, 기생충예방교육 등을 실시했다고 한다.

때마침 황 부본부장에게 소개받은 이번 사업단의 단장이자 건협 부회장인 제종일 서울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와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제 교수는 "미얀마의 몇몇 지역을 둘러보니 아이들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도움 주고 해야 할 일들이 앞으로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제 교수에게 이날 저녁에 만났던 청년 의사 아웅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국가에 소속된 의사들이 임금이 낮아 보통 야간에 일하는 '투잡 의사'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나도 들었다"면서 "이들(미얀마)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온 의료 장비 일부만 미얀마 세관에서 통과시켜 의료활동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덧붙여 제 교수는 "미얀마 관리들이 너무 경직돼 있어 여러모로 지원사업을 펼치는데 문제가 발생할 듯하다"면서 "이런 문제에 대해 미얀마 보건 당국자에게 말했더니 제도적인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귀국행 비행기 시간으로 인해 제 교수를 더 이상 붙잡지 못하고 떠나보냈지만, 미얀마 의료 및 보건 분야의 실태를 직접 전해들을 수 있어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특히 자국민의 보건복지에 도움을 주려는 민간단체의 지원(의료장비 및 물품 통관)도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는 미얀마 사회 운영체제의 문제를 직접 전해 들으니, 경제 활동을 위해 미얀마를 찾는 비즈니스맨들이 겪고 있을 고충과 문제점이 무엇일지 대략 짐작이 됐다.

조금씩 미얀마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책이나 기존 언론보도에서 보지 못했던 이런저런 미얀마의 속살들이 눈과 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버마' 아닌 '미얀마'로 표기한 이유

사진 왼쪽이 이전 '버마(Burmar) 국기'이고, 오른쪽이 '미얀마 국기'인 Naingandaw Alin(나잉강도 얼링). 2010년 11월 7일 총선을 앞두고 10월 21일 전격 변경되었다. 맨 위의 노랑 바탕은 단결을, 중간의 녹색은 평화를, 맨 아래 붉은색은 용기를 나타낸다. 국기변경은 2008년 국민회의에 의하여 만들어진 신헌법 의결에 의해 개정되었다.
 사진 왼쪽이 이전 '버마(Burmar) 국기'이고, 오른쪽이 '미얀마 국기'인 Naingandaw Alin(나잉강도 얼링). 2010년 11월 7일 총선을 앞두고 10월 21일 전격 변경되었다. 맨 위의 노랑 바탕은 단결을, 중간의 녹색은 평화를, 맨 아래 붉은색은 용기를 나타낸다. 국기변경은 2008년 국민회의에 의하여 만들어진 신헌법 의결에 의해 개정되었다.

애초 기획을 준비하면서 취재할 나라의 국호인 미얀마(Myanmar)와 버마(Burma)를 놓고 고민했다. 취재를 다녀온 후 첫 기사를 쓰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출고 직전에야 '미얀마'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오마이뉴스>가 그동안 '버마'라고 표기해오던 것을 깬 일이다.

알려졌다시피, 1989년 군사 과도정부가 영어로 표기되는 나라 이름을 '미얀마(Myanmar : '결속'을 의미)'로 변경하기 전까지는 '버마(Burmar)'로 불렸다.

군사정부는 국명을 변경하면서 '전 국민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주 종족인 버마족만을 나타내는 이름을 쓰는 것은 오해를 받을 수 있고, 135개 서로 다른 소수민족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미얀마'를 공식적인 국가명으로 선택했다'고 발표했다. 또 영국 식민시대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했다.

반면, 군사정부에 대항해 민주화운동을 하는 반정부단체와 일부 정치인들은 불법 군사정부가 국민 동의 없이 국명을 바꾼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버마'란 국명과 함께 옛 국기를 고수하고 있다. 이후 미국·영국 정부 등도 반체제인사들을 따라 버마라고 불렀다.

우리나라는 1991년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미얀마'로 칭했다. 그러다가 2007년 미얀마 반정부 대규모 민중 시위 이후 우리나라 언론들은 미얀마란 표현을 영구히 쓰지 않고 '버마'로 부르기로 선언했다. 또 한국진보연대 등 일부 사회단체도 '버마' 단독표기를 시작했다.

한편, 이후 2008년 5월 미얀마에서는 국민투표(투표율 98.12%, 찬성률 92.48%)를 통해 신헌법을 채택했고, 2010년 10월 신헌법에 의해 현재 명칭인 '미얀마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으로 개칭했다. 국내의 일부 미얀마 관련 서적은 마치 우리나라 국명을 대한민국과 한국을 같이 쓰듯이 미얀마 내에서도 버마란 나라 이름이 같이 쓰이고 있다고 소개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현지인들을 만나보니, 버마보다 미얀마로 불러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뗏 세 예(50)씨는 "군사정부를 반대하며 민주화를 주장하며 외국으로 나간 이른바 '민주화세력'에게 '그동안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싶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과 함께 당부를 전했다.

"외국에서 군사정부 돕는 일이라면서 (외국인들에게) 미얀마로 관광 가는 것은 군사정부를 살찌우는 것이니 가지 말라고 하고, 나라 이름도 버마로 고집하면서 혼란을 초래하고, 세계인에게 미얀마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갖게끔 했지 실제로 그들이 민주화를 위해 한 것은 별로 없다. 이 같은 비판을 젊은이들이 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미얀마는 과거와 같은 군사정권이 아니며 지난 2011년 신정부가 출범하면서 많은 게 변했다. 미래를 향한 성장과 변화를 이끌기 위해 미얀마 전체가 통합되고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에서 통합을 의미하는 '미얀마'로 불러주기 바란다."

무엇보다 이번 취재는 미얀마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블루오션'으로 주목해야 할지 여부가 주된 핵심이기에 정치적인 논쟁은 가급적 피했다. 미얀마의 과거를 보러 간 것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보기 위한 취재이기에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나라 이름인 미얀마로 표기하기로 정했다.




태그:#미얀마, #양곤, #블루오션, #경제성장, #기반시설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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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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