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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올 여름 나의 주식.
 사과. 올 여름 나의 주식.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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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홈런이가 내 몸 속에 생긴 지 11주 하고도 5일째 되는 날이다. 처음 8주 동안에는 잘 모르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만큼 변화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라고 한다. 8주에서 11주 사이에 태아의 키는 약 4.5cm까지 자란다는데, 지난번 2.39cm였던 홈런이는 지금은 4cm쯤으로 자랐겠지? 이미 나온 팔다리에 손목과 손가락이 나타나고 다리가 허벅지, 무릎, 종아리, 발, 발꿈치 등으로 분화된다는데, 며칠 뒤 병원에 가면 볼 수 있을까?

이목구비도 생기고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흡수하고 배설하기도 하고, 심장과 간 등 조직이 발달하기도 한다는 이 시기를 잘 보냈다는 것은 홈런이의 성장에 필요한 중요한 신체 기관이 무사히 형성되었다는 말과 같단다. 홈런이는 나름대로 손가락 발가락 만들면서 바쁘게 살았을 테고, 나 또한 최근에 그동안 없던 많은 변화를 느끼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홈런이가 내 안에 자라면서 생긴 제일 큰 변화는 변비였다. '장트러블' 덕에 유난히도 고생스러웠던 중고등학생 시절에 캠프나 여행을 가면 제일 걱정되었던 게 변비였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는 스스로 일어서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변비가 심해져서, 부축을 받으며 응급처치실로 가 하루를 누워 보낸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고딩 때의 이야기이고 그 이후에는 변비로 고생한 적은 없다.

그러나 임신 후 이야기가 달라졌다. 임신을 하면 장 근육이 이완되어 변비가 생긴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놈의 변비는 가뜩이나 더운 날, 나를 괴롭힌다. 우리는 옥상과 맞닿은 5층에 살고 있는데 여름이 다가올 무렵 전기를 아껴 쓰자는 좋은 의도로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구입했다. 그리고 다행히 올 여름엔 비가 많이 와서 선풍기만으로도 덥지 않게 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약 두 주 전부터 폭염이 시작되면서, 낮에 화장실에 들어가면 사우나처럼 습하고 덥다.

그런데 그 사우나 같은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며칠 동안 숙성(?)된 그놈을 내보내려 힘써보지만 그 노력의 결실은 허무할 따름이다. 몇 차례 고생한 후에는 물을 많이 마시고 채소를 많이 먹으려 노력하고, 변비에 좋다는 맨손체조 몇 가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예전에 '몸살림'이라는 운동으로 잠시 배웠던 베개운동(베개를 엉치뼈 아래에 깔고 반(半)만세 자세로 몸을 쭉 펴주는 운동)은 척추를 바르게 펴줘서 오장육부를 편안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변비에 대한 효과도 좋은 편이다.

변비로 지친 마음, 사과로 달래고...

그 다음 변화는 눈물. 그동안 아이들의 감동적인 합창을 듣거나 예상치 못했던 생일축하를 받았을 때 말고는 언제 울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참, 내가 잠시 영국에 있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귀국한 후에 외할머니 묘에 가서 운 것도 기억난다. 나는 울기보다는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런 내가 요즘 툭하면 눈물을 흘린다. 그것도 아주 사소하고, 울 만한 일도 아닌 것에 말이다.

예를 들면 어느 날 지갑을 열다가 손톱이 살짝 뒤집혀 피가 좀 났다. 처음엔 그냥 '아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나와 나중엔 꺼이꺼이 울었다. 아니, 왜? 또 어느 날, 자려고 남편 옆구리에 붙어 누웠는데 내가 뜨겁다며 조금 떨어져 손가락만 잡으라고 했다. 홈런이의 존재를 알기 전부터 남편이 내 몸이 뜨겁다고 하길래 감기인가 싶어 남편한테 감기가 옮을까 조금 떨어져 잤고, 요즘은 특히 날도 더워져서 그렇지 않아도 팔다리를 대자로 벌리고 서로 거리를 두고 자던 우리였다.

그런데 손가락만 잡으라는 그 말에 나는 또 눈물이 났다. 아니, 도대체 왜? 볼을 타고 주르륵 흐르던 눈물은 갑자기 점점 굵어졌고, 결국엔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며 울었다. 내가 우는 걸 알고 남편은 몹시도 당황했다. 내가 울면서도 황당했는데 남편은 오죽했을까. 지금도 내가 왜 울었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이토록 사소한 일에 내가 눈물을 흘리다니! 나 원 참. 이때에는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기 때문에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는데,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최근의 또다른 변화는 과일 욕심이 생긴 것이다. 결혼 전에 가족들과 함께 살 때, 아버지께서 과일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실 수가 없는 분이라 집에 사과는 늘 준비되어 있었고 여름엔 포도와 수박을 매일 먹고 살았다. 결혼 후에는 남편이 과일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집에 과일을 사두고 먹지 않았는데, 갑자기 과일이 먹고 싶어졌다. 남편이 사과를 싫어 하니 사다 두면 잘 안 먹을 것 같고, 안 먹기에는 또 뭔가 아쉬워 엄마 집에 갈 때마다 사과를 한두 개씩 얻어다 여러 날 나누어 먹었다.

이때 먹은 사과는 그동안 먹은 사과 중에 제일 달고 맛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때는 포도, 또 다른 때는 귤까지 탐이 난다. 생각해보니 임신 초에는(그때는 임신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자몽차처럼 시큼한 것이 많이 생각나기도 했다. 요즘엔 연둣빛 풋사과가 참 맛있다. 남편은 보기만 해도 신맛이 나는 것 같다며 쳐다보지도 않는다. 예전엔 같이 안 먹어주면 맛이 없었는데 이제는 같이 안 먹어줘도 신나게 먹는다. 그렇게 과일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다보니 이제는 과일 없이 하루도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이외에도 소변이 자주 마려워 밤에 자다가도 한두 번은 꼭 화장실에 가야 한다든가, 설거지만 해도 땀이 날 정도로 땀이 많아진 것 등 내 몸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조금 불편한 것들 투성이지만 내 몸에 한 생명을 품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변화들이니 이것들도 품어야지 별 수 있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도 일 못지않게 중요한 거야"

이런 몸의 변화와 함께 일꾼에서 가정주부가 된 내 정체성에 대해서도 큰 혼란이 있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주신 분은 선희 선생님었다. 예전에 대안교육에 관심이 있어 드나들던 곳에서 만나게 된 선생님인데, 알고 보니 내 친구의 엄마였다. 바쁘게 일하기 전에는 자주 선생님 댁에 들러 술도 한잔 하고 힘든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며 삶의 고단함을 많이 풀곤 했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던 그날, 이제 술 대신 옥수수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나눈 이야기는 따뜻하고 행복했다. 선생님은 홈런이의 존재를 무척 반겨주시고 축하해주셨다. 선물해주시고 싶은 책이 있으니 그 책은 사지 말라는 당부도 해주셨다. 그 책에는 아이를 어떻게 만날 것인지가 어렵지 않게 펼쳐져 있으니 꼭 남편과 함께 보라는 당부와 함께. 그리고 그동안 일을 열심히 했으니 지금 일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기쁘게 생각하라고 조언해주셨다.

생활비가 줄어드는 문제야 조금 덜 벌고 덜 쓰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며, 지금 이 시간을 대안교육 현장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기간으로 삼으면서 조금 여유를 가져보라고 하셨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도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라는 점도 강조하셨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중요하다는 것은 내가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것인데 그새 또 잊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런 마음을 품는 것이 조금 어렵지만 선생님의 혜안을 믿고 지금 이 시간을 나와 홈런이를 위한 선물이라 믿어 봐야겠다.


태그:#태교, #변비, #과일, #주부, #태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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