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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한산한 노량진 수산시장의 입구.
 비교적 한산한 노량진 수산시장의 입구.
ⓒ 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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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곳입니다.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우리에게 시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연재 '전통시장 고군분투기'는 기자를 지망하는 청년들이 시장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점들을 다룰 것입니다. 장소는 서울의 전통시장 30곳입니다. 취재 원칙은 하나 입니다. '시장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 기자 말

시장 어귀에서 불을 밝히던 간판들이 하나둘씩 꺼져 간다. 명절 대목을 완전히 보내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지난 23일 자정, 전날 장사를 마친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은 피곤하면서도 만족한 기색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아오기는 어렵지 않았다. 버스와 지하철 모두 '노량진역'에서 내릴 수 있고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으로 통하는 계단 중간에 노량진 수산시장과 연결된 육교가 보인다. 육교는 기찻길 위를 지나는데 이를 건너면 바로 노량진 수산시장이다. 수산시장 건물로 들어서면 횟감을 파는 소매상들이 있지만 이 시간에는 문을 연 곳이 별로 없다.

시장 초입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각종 수산물을 파는 도소매상을 만난다. 이들도 지나쳐 서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널찍한 공간에 꽃게와 오징어, 대구, 삼치 등 다양한 종류의 수산물이 쌓여 있다. 이것은 이날 경매에 나올 물품들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어민들로부터 위탁받은 다양한 수산물을 중도매인, 소매인에게 판매하는데 오전 1시 패류를 시작으로 경매장의 하루가 시작된다.

경매는 매일 오전 1시에 시작한다. 지난 23일 전날 산지에서 배송된 수산물이 경매장에 준비돼 있다.
 경매는 매일 오전 1시에 시작한다. 지난 23일 전날 산지에서 배송된 수산물이 경매장에 준비돼 있다.
ⓒ 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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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로 시작하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하루

노량진 수산시장의 중도매인인 우원유통 두 식구도 매일 자정이 넘는 시간에 경매장에 모인다. 평소에는 사장인 김재원(56)씨가 가장 일찍 나오는데 오늘은 오전 0시 반이 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우원유통에서 일한 지 2년째인 박은영(54·여)씨는 혼자서 경매에 나올 수산물들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대하 얼마에요?"
"자연산이고, 오늘은 100마리에 7만5000원입니다."
"알겠습니다."

박씨는 "지난번에는 대하를 마리당 400원에 샀을 때에도 팔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너무 비싸다"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매 전에 미리 거래처로부터 납품을 부탁받은 품목들을 준비하며 다른 '물이 좋은' 수산물까지 눈여겨보는 모습이 꽤나 야무지다. 꼼꼼한 그의 솜씨에 김 사장의 부재는 느껴지지 않는다.

꽃게는 날씨가 선선해지는 이맘때 초가을이 제철이다. 그 중에서도 수컷이 더 맛이 좋다.
 꽃게는 날씨가 선선해지는 이맘때 초가을이 제철이다. 그 중에서도 수컷이 더 맛이 좋다.
ⓒ 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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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를 거래하는 경매장에서 박씨는 자신의 실력발휘를 한다. 상자당 1만7000원에서 시작한 가격은 속절없이 떨어진다. 경매인과 다른 중도매인들의 눈치를 살피던 박씨는 유찰 직전 상자당 1만 원에 꽃게를 낙찰받았다. 덕분에 박씨는 오늘 손님들에게 질좋은 물품을 값싸게 판매할 수 있게 됐다.

한바탕 경매가 끝나고 오전 두 시쯤 잠시 숨을 돌린다. 바빠서 김 사장을 신경쓸 틈도 없었는데 이제는 그를 깨울 수 있다. 박씨는 건물 한켠에 자리잡은 사무실로 가서 김 사장을 깨운다. 김 사장의 대답을 듣고난 뒤 박씨는 다시 경매장으로 돌아간다.

십분 뒤 김 사장은 경매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명절 연휴로 3일을 쉬고 나니 여독이 생겼다"며 박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묵묵히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할 일을 한다. 물론 그 일은 좋은 수산물을 값싸게 구하는 일이다.

전어 외에 가을철 대표 수산물은?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기운이 드는 이맘때 가장 유명한 수산물 중 하나는 전어다.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온다'는 옛 말은 가을 전어의 영양과 맛을 강조하는 말이다.

며느리만 전어를 좋아할까?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에 문 걸어잠그고 먹는다'라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라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그 유명세를 알 수 있기도 하다. 이날 경매장에도 전어는 큰 인기를 끌었다. 우원유통을 비롯해 많은 중도매인, 도소매인이 전어를 구매했다.

반면 전어의 유명세 때문에 가을철이 제철인 다른 수산물들이 관심을 덜 받는 경우도 생긴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0년을 지낸 김 사장이 추천하는 가을철 제철 수산물은 뭘까.

"가을에 나오는 어종들이 맛있는 편이야. 고등어, 참조기, 꽃게 등이 좋지. 여름에는 고등어가 맛이 좀 덜하지만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맛이 들고 꽃게는 요새 또 잘 잡혀서 가격도 괜찮아. 참조기는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엄청 들어오고, 참조기도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 요즘 노량진에는 이런 수산물이 많이 들어와."

우원유통 김재원 사장이 암수 꽃게 두 마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위쪽이 수컷, 아래쪽이 암컷이다.
 우원유통 김재원 사장이 암수 꽃게 두 마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위쪽이 수컷, 아래쪽이 암컷이다.
ⓒ 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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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장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지난 17일 국립수산과학원 산하 서해수산연구소는 보도자료에서 "올해는 서해안에 직접적인 태풍의 영향이 없고, 20℃ 전후의 수온이 유지돼 꽃게의 성장이 좋다며 통통하게 살이 오른 서해안 꽃게가 풍년"이라고 알렸다. 김 사장은 이날 꽃게를 몇 상자 구입해 단골 손님들에게 보냈고 남은 물건들을 소매로 팔았다. 진열된 꽃게 상자를 가만 보니 김 사장이 골라온 물건은 대부분이 수컷 게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초가을에는 수컷 게가 맛이 더 좋아. 수온이 더 내려가면 암컷 게가 더 좋구. 봄에는 무조건 암컷 게가 맛있어. 알을 품어서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암컷 게랑 수컷 게를 구분하는 방법은 배의 껍질을 보면 돼. 수컷은 껍질에 있는 모양이 날카로운 삼각형이고 암컷은 뭉툭하지. 이렇게 배의 껍질을 열면 생식기가 보이는데 이걸로 확실히 알 수 있지."

김 사장의 말을 듣고 꽃게를 구경하던 중 한 손님이 꽃게에 관심을 보였다. 손님은 꽃게의 배를 꾹꾹 눌러보기도 하며 속이 꽉 찼는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김 사장은 꽃게의 신선도를 알려면 배 껍질의 끝에 있는 삼각형을 자세히 보라고 설명했다.

"꽃게를 들어봐서 무게가 특별히 가볍거나 중량감이 덜하면 살이 덜 오른 거지. 그런데 가끔 꽃게를 사먹는 손님들이 그걸 구별하기는 힘들어. 그것보다 이 꽃게의 배 껍질 맨 위에 위치한 손톱만한 삼각형을 봐. 이 꽃게는 이 부분이 다른 껍질처럼 똑같이 하얗고 깨끗하지? 그러면 신선한 거야. 가끔씩 이 부분이 거무튀튀한 것들이 있는데 그거는 신선도가 떨어지는 거야. 똑같은 날 잡혀도 그물에서 죽은 채 시간이 지난 뒤 올라오는 게 있잖아. 그것들은 아무래도 신선도가 떨어지지. 좋은 꽃게 구하려면 이것만 알면 돼."

방사능 공포는 언론 때문에 커져

우원유통을 찾는 단골 손님들은 주로 오전 5시에서 7시 사이에 방문한다. 직접 물건을 보고 구매하는 손님들도 있고 김 사장과 박씨를 믿으며 전화로 필요한 품목들만 보내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기자는 직접 대량구매 손님들의 짐을 주차장까지 배달하는 일을 도왔다.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서 일명 '딸딸이'라고 불리는 수레를 끌고 손님들을 쫓아다니다 보니 수산시장 밖에서 수산물을 취급하는 음식점, 소매점의 동향을 들을 수 있었다. 당산동의 한 마트에서 수산물 구역을 임대해 운영하는 김남윤씨는 "약 한 달 전부터 일본산 수산물의 방사능 위험성에 다시 공포가 생겨 장사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우원유통의 김 사장도 "언론의 영향력이 참 크다"며 아쉬운 점을 토로했다.

"여름만 되면 비브리오균인지 방송사에서 하도 방송을 해서 사람들이 수산물을 잘 안 찾아. 그러면 수산물을 먹는 사람들이 관리가 잘 된 것을 잘 조리해서 먹으면 되는데 사람들은 아예 수산물을 끊어. 일본산 수산물 방사능 오염 때문에 후쿠시마 인근 8개 현(후쿠시마를 비롯해 이바라키, 군마, 미야기, 이와테, 도치기, 치바, 아오모리 현)의 수산물을 아예 수입금지했잖아. 그리고 나서 사람들이 국내산만 찾게 됐을까? 그렇지 않아. 아예 국내산조차 찾지 않게 돼. 언론이 수산시장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더라고."

김 사장을 만나기 전 사전답사 차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했을 때에도 무언가를 묻거나 사진을 찍기만 하면 싫은 기색을 보이는 상인들이 있었다. 한 상인은 "긍정적인 얘기를 한다고 영상을 찍고 갔으면서 일부러 방송을 찾아보니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부정적인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선정적인 언론의 보도나 무분별한 소비자들의 공포 심리 때문에 시장 상인들은 큰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다. 김 사장은 "수협 직원이 수시로 시장을 돌아다니며 방사능 수치를 검사한다"며 "국내산 수산물마저 의심하는 시선이 문제"라고 말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유래를 알아?" 

김 사장이 시장에서 일을 한 계기가 궁금해 묻자 대답 대신 질문이 날아왔다. 수산시장에 오기 전에 미리 공부를 했던 터라 어느 정도 대답이 가능했다. 1972년에 지금의 자리에 개설된 노량진 수산시장은 용산에 있던 어시장과 통합돼 생겼다는 등의 대답이었다. 그러자 또 질문이 들어왔다.

"그러면 여기에 난전이 있었던 것도 알아?"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노량진역과 인천의 제물포역을 잇는 철도가 생기고 이곳에 어산물 난전이 생겼다고 한다. 김 사장은 빨간색 고무 대야도 나오기 전 자신의 6촌 고모부가 제물포역에서 함석으로 만든 대야에 생선을 가득 담아온 게 자신과 노량진 수산시장의 첫 인연이라고 회상했다. 그 이후에는 어머니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장사하실 때 일을 도와줬던 게 두 번째 인연이다. 그 경험이 그가 수산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나는 중학교를 못 갔고 14살 때부터 여기 나와서 일을 했어. 그때부터는 수산시장에서 벗어난 일이 별로 없어. 갑자기 대학 간다고 검정고시 준비할 때 잠깐 일을 그만뒀고 군대 생활을 할 때에도 휴가 나오면 꼭 어머니를 도왔어. 대학교 졸업하고 한국유리라는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한 달 보름을 다니고 그만 뒀어. 그게 1983년도 이맘때야. 가을이었지."

그가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이유에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취직을 했을 때 대졸 초임이 16만 3천원이었던 것 같아. 이게 그때는 큰 돈이었지. 그러면서도 가끔씩 어머니 일을 도와드릴 때가 있었는데 내가 나이가 드니까 이제 가게 장부까지 관리하게 됐어. 그러면 이 가게에서 어머니가 얼마나 버시는지를 알 수 있잖아. 어머니 장부를 보고 나니 얼른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돈 벌기로는 정말 엄청나게 벌었었지."

물론 그때는 인천을 제외한 수도권에서 수산물 도매시장이 거의 유일하던 때다.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발산동 수산시장 등 수도권 곳곳에도 도매시장이 생기면서 수도권 물량이 분산됐다. 대형마트가 늘어나는 2000년대까지 부침을 겪었지만 그래도 김 사장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모습이다.

"요즘은 사회 전체가 힘드니 오히려 여기가 안정적인 측면이 있어. 정년도 없고 정 피곤하면 하루 쉴 수도 있고. 나도 30대 때는 어디 가서 생선장사한다고 말 안했는데 40대가 돼서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생선장사한다고 말 잘해. 생각이 바뀌어야지."

생선에도 이불이 필요하다
수산물을 다루는 수산시장에서 얼음은 필수다. 선어와 냉동, 생물 수산물이 부패하지 않도록 얼음이 냉장고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에는 다른 때보다 얼음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겨울에도 얼음은 꼭 필요하다. 한파에 선어, 생물 수산물이 얼어붙지 않도록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데 얼음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협노량진수산(주)은 얼음사업부를 통해 직접 얼음을 만들고 시장 내 가게에 얼음을 배달한다. 얼음은 수산물에 맞닿기 때문에 수협은 얼음의 수질관리와 배달부들의 서비스를 높이는데 노력하고 있다. 한가위가 지나고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얼음을 배달하는 직원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구슬땀이 맺혀 있다. 큰 포대 자루에 담긴 얼음은 30kg, 그보다 작은 크기의 자루는 무게가 15kg이다. 하루에 얼음 25톤을 직접 배달한다는 얼음사업부 강완희(49) 반장은 "이 일이 근무시간도 길고 고된 일이긴 하지만 수산시장이 365일 운영되는 데는 우리도 연중무휴로 일하기 때문"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들의 근무 시간은 하루에 9시간으로 크게 오전반과 오후반 두 파트로 나뉜다. 오전반은 오전 0시부터 9시까지, 오후반은 오후 2시부터 11시까지 근무한다. 총 17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얼음사업부는 각자가 맡은 구역을 돌아다니며 얼음을 배달하기 때문에 서로 마주칠 일이 적다. 이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은 오후 12시, 점심 시간이다. 힘쓰는 남자들만 있어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스물여섯 막내부터 쉰이 넘은 고참까지 한 데 모여 반찬을 나눠 먹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이 말그대로 가족같다. 강 반장은 "한 사람이 시장 모두의 수요를 파악할 수 없어 분업화한 게 우리 업무"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면서도 일을 잘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시장 사람들에게 미소를 잃지 않는 얼음배달부의 모습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얼음사업부 강완희 반장이 얼음을 배달하고 있다.
 얼음사업부 강완희 반장이 얼음을 배달하고 있다.
ⓒ 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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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연재는 김진석 사진작가가 기획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 중인 안형준(29), 임경호(29), 박기석(27) 3명이 취재를 진행합니다.



태그:#노량진 수산시장, #우원유통, #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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