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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이 건설되는 현장 가까운 마을에 이르자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송전탑이 건설되는 현장 가까운 마을에 이르자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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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병력 3000여 명이 투입되어 밀양 송전탑 건립 반대 농성이 힘듭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도 희망버스를 긴급 조직합니다. 함께 가서 도웁시다."

지난 3일은 개천절이었습니다. 모처럼 휴일을 맞은 저는 들로 나들이 가는 대신 새벽같이 일어나 밀양에 갈 준비를 하고 희망버스에 올랐습니다. 희망버스 타러 민주노총 울산본부에 가려고 했지만, 노동당 사무실로 갔습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삼산동에 있고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침 효문사거리 근처에 있는 노동당 승합차도 밀양에 간다고 하여 그리로 갔던 것이었습니다.

바드리 마을로 가다

울산에서 밀양에 도착한 후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의 농성장에서 강성신 울산본부장이 인삿말을 했습니다.
▲ "울산에서 지원 왔습니다." 울산에서 밀양에 도착한 후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의 농성장에서 강성신 울산본부장이 인삿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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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밀양에는 5곳에서 한전 송전탑 건설을 한다고 합니다. 그중 제가 간 곳은 바드리 마을이었습니다. 그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엔 경찰 버스가 서 있었습니다. 큰길 입구에서 100여 미터 들어가니, 마을 주민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길은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길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가가자 할머니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어디서 왔소?"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울산에서 왔으며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장 어르신들을 지원하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반갑게 맞으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아이고, 어서 와요. 우리는 또 한전 직원들이거나 경찰들인 줄 알았지 뭐유. 한전이나 경찰에 하도 속아서 그러니 이해하세요. 처음 보는 사람은 모두 한전 직원이나 경찰로 보인다니까."

경찰은 송전탑 건설 현장에 못올라가게 무장한채 막고 있었습니다.
▲ 비닐치고 노숙농성 경찰은 송전탑 건설 현장에 못올라가게 무장한채 막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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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알아보니, 바드리 마을 입구를 막고 농성하는 어르신들은 이웃 마을서 지원해 온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상황이 궁금했습니다. 한 어르신께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말도 마. 한전에서 길 넓혀 준다고 하고 여러 가지 혜택을 준다고 하니까 도장 찍어 준 거지 뭐. 반장이 길 넓혀주고 다른 혜택도 모두 주고 공사 진행하라고 했대. 한전이 그러겠다고 해서 도장 찍어준 건데…. 한전은 우리 피 빨아 먹으려고 별의별 짓 다하고 있어. 두고 봐. 일단 탑을 세우고 나면 길넓이는 것이고 뭐고 다 끝이 날 게야."

격분한 다른 어르신 한 분이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 원주민이야. 몇 대를 이어 살아왔어도 이런 일은 처음이여! 정부가 지금 어떤 짓을 하는지 알아? 땅 좀 있다고 3만 원이던 세금을 9만 원으로 올려놨어. 농촌에서 사는 게 한 푼이라도 아쉬운 판에 세금을 그렇게 많이 받아서야…. 밀양에 이렇게 쎈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이 건설되면 우리 마을은 파탄이 날 거여. 그래서 우린 목숨 걸고 송전탑 건설 반대하는 거여. 박사 논문도 있다잖어. 저런 괴물 같은 송전탑이 들어서면 닭은 알을 낳지 못하고 소·돼지는 새끼를 낳지 못하게 된데. 그뿐이야? 꿀벌이 살 수가 없어 곡식의 열매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운 거여?"

주민들이 의경 앞에 드러누워 농성.
▲ 잠자기 농성 주민들이 의경 앞에 드러누워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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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질문하려는 데 갑자기 아래쪽이 시끄러웠습니다. 트럭에 이동 화장실이 실려 있었습니다. 경찰 진영에서 필요한 물품인 듯했습니다. 주민들은 트럭을 못 가게 막고 있었고, 주민과 경찰이 실랑이했습니다.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로 이동 화장실은 올려보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송전탑 상황을 알기 위해 가 보려 했으나 걸어가면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위 쪽에는 경찰이 방패로 막고 있어 겁이 나기도 했었습니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출입이 자유로웠으나 외부인 출입은 차단되어 있습니다. 송전탑 만들 장소에는 11명의 주민이 작업을 못 하게 막고 있다고 했습니다. 금세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밀양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이 점심거리를 가져와 함께 먹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김밥이며 떡, 빵, 과일 같은 먹을 거리를 가져오는 단체가 많았습니다.

평리마을에 가다...

산에 불이 나거나 위급 상황에 써야 할 비행기를 한전 공사에 투입하고 있었습니다.
▲ 송전탑 건설 자재를 비행기로 산에 불이 나거나 위급 상황에 써야 할 비행기를 한전 공사에 투입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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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면서 옆 어르신께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바드리 마을 사람도 아닌데, 왜 와서 농성하는지를. 어르신은 대답하셨습니다.

"바드리에는 12가구 정도 있어. 그동안 잘 싸워 오다가 한전과 합의해서 공사가 들어 간 거여. 바드리 사람도 화가 많이 났어. 길 먼저 넓혀주고 다른 민원 모두 해결해 주고 송전탑 세우기로 해놓고선 송전탑 먼저 세우고 있잖어.우린 4개면 모든 지역에 단 한 개의 송전탑도 허용 못 해. 그래서 여기 와서 이렇게 시위하는 거야. 지금은 다시 반대 여론이 높아."

점심식사 후에는 울산에서 온 인도주의 소속 의사들이 어르신들을 진료해 주었습니다. 마침 위에서 농성 중이던 어르신들이 모두 내려오셔 같이 진료를 받았습니다. 경찰 때문에 긴장이 흐르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오후 3시경 울산에서 함께 온 이가 몰래 불렀습니다.

"지금 우리는 평리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 지원이 필요해서요. 몰래 한 사람씩 천천히 내려가요."

주민과 환경단체는 방패로 막은 경찰과 몸싸움을 하며 위로 올라 가려고 시도했습니다. 결국 100미터 정도 올라간 길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 올라 가려는 사람, 막는 경찰. 주민과 환경단체는 방패로 막은 경찰과 몸싸움을 하며 위로 올라 가려고 시도했습니다. 결국 100미터 정도 올라간 길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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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사람씩 큰길로 나갔습니다. 다 모이자 차를 몰아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은 온통 대추나무밭이었습니다. 울산엔 은행나무가 가로수인데 그곳엔 가로수도 대추나무로 되어 있었습니다. 높은 산도 많고, 계곡도 넓은 멋진 산골 동네였습니다. 그런 곳에다 흉측한 송전탑을 세우다니…. 한전의 횡포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평리라는 동네였습니다. 하늘에선 계속해서 헬리콥터 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송전탑 건설 현장으로 자재를 실어 날으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은 경찰 차량으로 마을 진입로를 막아 두었습니다. 또 방패든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타고 간 승합차를 50여미터 먼 곳에 주차하고 마을 입구 길로 다가가니 경찰과 주민이 몸싸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재빨리 버스 뒷길로 올라가려 했으나 한 의경이 뒤따라와서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민들과 한꺼번에 올라가니 경찰은 우리를 막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우리보다 더 위에 올라가 방패로 막아 줄지어 섰습니다.

평리로 오르는 길엔 농성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경찰 방패막을 뚫고 올라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 쇠사슬로 서로 몸을 묶은 밀양 주민들 평리로 오르는 길엔 농성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경찰 방패막을 뚫고 올라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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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의 횡포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나무뒤에 숨어 동영상 찍는 사복 경찰. 한전의 횡포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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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경찰 병력이 더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래를 막았습니다. 주민의 농성을 위·아래로 고립시키기 위함인가 싶었습니다. 경찰은 주민의 농성을 동영상으로 찍었습니다. 일부 화가 난 주민들은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복을 입은 경찰은 나무 뒤에 숨어 체증 영상을 찍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노래도 부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할머니들은 맨 앞줄에 앉아 서로서로 쇠사슬로 몸을 묶고 열쇠로 잠갔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곳은 그분들이 몇 대를 이어 살아온 삶 터전입니다. 대한민국 공기업 한국전력의 무자비한 강제 송전탑 건설 집행으로 파탄나게 생겼습니다. 송전탑이 건설되고 76만5천 볼트의 초고압 전류가 흐르게 되면 농성에 가담한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대로 암이 생길 위험을 안고 사는 것입니다.

기르는 가축은 닭의 경우 알을 낳지 못하고 돼지나 소는 새끼를 낳을 수 없으며, 전자파에 민감한 꿀벌이 접근을 못 해 꽃피고 열매 맺는 모든 식물도 재배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대책위 관계자에 의하면 밀양에만 69개 송전탑이 세워질 예정이며 그 크기도 일반 송전탑의 5배에 달한다고 하니 4개면 22개 마을 주민이 파탄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보충되어 큰 길에서 올라가는 입구를 봉쇄해 버렸습니다. 위에도 막아 농성자들은 고립되었습니다.
▲ 밀양 평리 입구 경찰이 보충되어 큰 길에서 올라가는 입구를 봉쇄해 버렸습니다. 위에도 막아 농성자들은 고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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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면 한 주민은 "공사가 진행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고 있다"면서 "전자파로 뒤덮일 밀양 땅을 후손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었습니다.

오후 5시에 우리는 평리 농성장을 슬며시 벗어났습니다. 모두 직장인들이라 다음날 출근해야하기 때문에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발길이 무거웠습니다.

쇠사슬을 묶고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노숙 농성 중인 밀양 원주민이 눈에 밟혔습니다.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데 힘들었습니다. 한전과 정부는 더이상 밀양 어르신들 괴롭히지 말고 안전하게 땅속으로 전기선을 깔고 전기를 공급하는 방법으로 시설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순박한 어르신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떠오릅니다.

그들은 삶의 터전을 파탄 시키지 않기 위해 작업장 곳곳마다 길을 막고 노숙농성 중입니다.
▲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원주민 그들은 삶의 터전을 파탄 시키지 않기 위해 작업장 곳곳마다 길을 막고 노숙농성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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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밀양, #송전탑, #한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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