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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도심을 흐르는 나일강.
▲ 나일강. 카이로 도심을 흐르는 나일강.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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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의 한가운데에는 나일강이 흐른다. 아프리카 대륙의 저 아래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의 빅토리아호에서부터 시작되어 지중해까지 흘러가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또 내 눈엔 가장 아름답기도한 강, 나일.

이집트에는 나일강 물을 마신 이는 다시 이집트로 돌아오게 된다는 속담이 있다. 현지인들에게서 얻어 마신 차 중에 한 잔쯤은 생수인 척 위장한 나일강 물이었겠지. 그래서인지 덕분에 나는 정말로 이집트에 돌아와 있었다. 마음을 담아 강물에 손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손끝에 와 닿는다. 다음번엔, 여기에 눌러앉게 해주세요.

나일강 물을 마시면 다시 이곳에 돌아온다네

펠루카 사공이 틀어주었던 시끄러운 노래가 끝났다. 여느 여자들보다 유연하게 골반을 흔들며 춤을 추던 세 남자의 춤사위도 끝났다. 춤과 노래라면 질색인 이보는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선 어떤 댄스 요청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듯이 딴청을 피우며 저 먼 곳만 바라본다. 열심히 춤을 추던 나흘라가 자리에 앉으며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말했다.

"Nile is the best river ever in the world"
("나일은, 세계 최고의 강이야.")

"왜?" 하고 내가 묻자, 그녀는 잔잔한 수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집트의 나일강은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야. 부자들도 가난한 이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나일강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어. 주변을 둘러봐. 부자들은 저기 저 고급 호텔의 방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경치를 감상해, 고급 유람선을 타며 호화로운 만찬과 함께 나일강의 야경을 즐기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일강이 그들만의 것인 건 아냐. 가난한 이들은 가족과 함께 이곳에 와서 강가를 거닐고, 젊은 연인들은 강둑의 나무들이 만들어 준 밤의 어두움 아래에서 용기 내어 남들 몰래 손을 잡아보기도 해. 그렇게 여기 있는 모두가 나일강을 만끽하는 거야. 시끄러운 가요가 울려 퍼지는 통통배에 올라타서 춤을 추고 스트레스를 풀며 밤을 지새지. 나일강은, 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자신을 내어줘."

나일강의 밤을 밝히는 이 통통배는 춤을 추는 남녀로 가득하다. 한번 타는데 드는 돈은 5파운드(한화 750원)정도.
▲ 서민들이 나일강을 즐기는 법 나일강의 밤을 밝히는 이 통통배는 춤을 추는 남녀로 가득하다. 한번 타는데 드는 돈은 5파운드(한화 750원)정도.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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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집트의 모든 곳에는 과거가 머물렀다. 그것은 도망가지도 않았고 흐려지지도 않았다. 다만 새로운 것이 또 과거가 되고 또 새로운 것이 밀려올 때면, 카이로는 쉼 없이 갓 들어온 현재를 빨아들여 그것을 새 과거와 더 오래된 과거까지 적절히 버무린 공기로 다시 자신을 감쌌다.

그 어느 곳 하나 과거가 보이지 않는 곳은 없었고, 그러나 그 어느 하나 새로움이 깃들어지지 않은 것도 없었다. 피라미드의 돌 한 덩이에 조차도 매일 새로운 이들의 손길이 덧입혀졌고, 하루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십년이 지나 그것 또한 과거의 흔적이 되고 있었다.

삶은 그저 오래된 계산기 같은 거예요

지칠 때까지 수다를 떨고 놀다 보니 어느덧 두 시다. 이집트에 간다고 하니 선뜻 여기 와 머물라며 방 하나를 내어주신 카이로 하우스 사장님께 일찍 들어오겠다고 약속했는데, 걱정하고 계시면 어쩌지. 난 이제 큰일 났다.

"가다,마 피쉬 무시킬라."
("가다, 문제없어 걱정 마.")'
('가다'는 가다툰이란 내 아랍어 이름의 준말이다.)

무함마드가 이집션(이집트인)답게 손을 휘휘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얘기한다. 그러더니 여기선 금방 간다며 갑자기 주행 속도를 올린다. 불안하긴 하지만, 교통지옥인 이집트에서 이집션보다 운전을 잘하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믿어야지, 믿는 수밖에.

3년 전 이집트에서 맹장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당시 한인회 부녀회장님이셨던 사장님께서는 그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오셔서 우선 나를 믿을 만한 병원으로 옮겨주셨다(처음 내가 있었던 병원은 의료사고로 소문이 자자한 병원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한때 간호사로 일하셨던 사장님은 퇴원 직후 나를 당신의 집으로 불러 일주일 동안 매일 소독을 해주시며 엄마처럼 나를 돌봐주셨다.

사장님께서 운영하는 민박집은 장기로 투숙하는 한국 분들이 보통 출장 기간 동안 머무르는 곳이었는데, 그 큰 침대방 하나를 혼자 썼으니 손실을 따져 계산을 한다면 아무것도 없는 유학생에게 결코 베풀 수 없는 선의였다. 거기다 감사하게도 사장님께선 몸에 칼을 대고 나면 몸조리가 가장 중요하다며 소고기 넣은 미역국과 귀한 고기, 생선으로 차려진 엄마가 해주신 '집밥'을 일주일 내내 차려주셨다.

수술이 끝난 직후, 나는 마취에서 깨어나는 중이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엄마를 그리도 찾았고, 사장님이 옆에서 손을 꼭 잡아 주셨다고 했다. 사장님을 포함해 그곳에 있는 동안 내게 부모님 같았던 세 분이 계신다. 차마 다 갚지도 못할 은혜를 받으며 나도 꼭 이렇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덕분에 내 아랫배의 수술 자국은 지금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카이로에 거주하는 한인들 중 맹장수술이 필요할 때 많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카이로 하우스 사장님께서 나를 이리로 옮겨주셨다.
▲ 맹장수술을 받았던 병원 카이로에 거주하는 한인들 중 맹장수술이 필요할 때 많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카이로 하우스 사장님께서 나를 이리로 옮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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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살기에도 참 좁은 세상과 짧은 삶이다. 내가 날 위해 사는 선물보다 남에게 받는 선물이 더 기분 좋은 것처럼, 나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보다는 서로가 주고받으며 함께 사는 삶이 더 행복한 법이다.

삶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들어맞는 수학처럼 살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모든 것에 지쳐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저 계산하는 데 조금 오래 걸리며 가끔은 제대로 작동조차 하지 않는 오래된 계산기처럼 언제가 될지 모를 뿐, 살면서 베푼 것들은 다시 내게 되돌아온다. 그것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언제나 불분명하고 공평하지 않은 것, 그것이 인생이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도 매일 수많은 실수를 만들어 내지 않는가. 그리고 혹시 모른다. 스스로 미처 기억하지도 못하는 도움을 언젠가 내가 받았을지도. 그래서 이번엔 내가 다시 그 도움을 되돌려 베푼 것뿐이었을지도. 삶에서 우리는 그저 주기도, 또 그저 받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런 대가 없이 사장님께 저런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도움이 필요할 땐 누군가의 도움을 감사하게 받는 법을 알아야 한다. 다만 받은 것을 잊지 않고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것을 잊지 않으면 된다. 사람은 혼자 설 수 없고 혼자 살 수 없기에, 언제나 우리는 많은 것을 주고 받는다.

그새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이보가 조심스레 나를 흔들며 내 이름을 부른다. 시계를 보니 오전 3시. 이리저리 흔들리는 고개를 샴스가 자기 옷을 내내 어깨에 받쳐 주었나 보다. 길었던 2012년의 밤은 어느덧 2013년의 첫 새벽이 되어있었다.

왼쪽부터 샴스 하룬, 그리고 사진을 찍어준 무함마드까지.
▲ 새해 펠루카에서 내린 후 왼쪽부터 샴스 하룬, 그리고 사진을 찍어준 무함마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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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엔 뭐가 들어 있을까?

다음날 아침 타흐리르 광장에서 만난 이보와 나흘라는 날 보자마자 낄낄거리며 말했다.

"소피 그거 알아? 오늘 샴스 학교 못 갔대."
"응? 왜?"
"음…. 어제 사실, 차가 밀리는 바람에 네 숙소 가는 데까지 거의 한 시간이 걸렸거든? 근데 네가 잠들고 샴스가 자기 어깨를 빌려주고 있었는데 네가 너무 곤하게 자니까 차마 빼질 못 했던 거야. 그래서 한 시간 내내 그 자세로 있었던 거 알아? 게다가 어제 뒷좌석에 우리 넷이 앉았잖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어. 근데 그 후에 집에 가 보니 어깨가 심하게 뭉쳤었나 봐. 그래서 움직이질 못 해서 오늘 학교도 못 갔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미안함에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나중에 샴스를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할까. 종종 이보가 장난을 치다가 내 머리가 무겁다는 얘기를 할 때면 그냥 놀리나 보다 싶어 흘겨주고 말았는데, 아, 정말로 무거웠나 보다. 머리 안에 돌이라도 든 게 확실한 것 같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아는 것 마냥, 이보가 얄밉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던진다. 아주 천연덕스럽게 눈까지 깜박이면서.

"소피, 나 딱~ 한 번만 네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좀 보고 오면 안 될까? 응? 제~발!"

그가 얄밉기도 하고 내가 민망하기도 해서 난 대답도 않고 걸음을 재촉해 혼자 앞서 걸었다. 그때 뒤에서 나흘라와 이보가 다가온다. 나는 나흘라 옆에 서며 이보를 모른 체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 걸었다. 그때 그가 우리 사이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미소와 함께 내 눈을 마주치며 얘기한다.

"소피, 네 머릿 속엔 네가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들어가 있어서 그래. 벌써 나만 해도 70킬로그램이잖아? 나흘라는? 아, 숙녀의 몸무게를 묻는 건 실례니까, 흠흠, 어쨌든.그리고 네 삶의 수많은 이야기들까지 그 안에 있고 말야. 소피, 지금 이 순간을 잊지마. 다시는 없을 이 순간을. 그리고 우리가 함께 웃고 행복했던 이 순간을 기억해. 너만이 할 수 있는, 그 아주 작은 것까지 기억하는 그것말야. 언젠가 네가 힘들 때, 그 기억들이 너를 미소짓게 할 거야. 그리고 가끔 내가 힘들면, 네가 추억을 내게 나눠줄래? 대신 가끔 그 기억들이 너무 무거워 목이 아파올 때면, 내가 어깨를 빌려줄게."

매번 언제나 병주고 약주는 식이다. 그런데도 도저히 이 장난꾸러기를 미워할 수가 없다.

살쪄도 좋아, 내 사랑 압드

이집트에 온 이후로 손을 꼽아 기다리던 날이다. 알 압드(Al-Abd)에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는 날. 카이로에서 웬 아이스크림이냐 하겠지만, 압드의 아이스크림은 론리 플래닛에도 나오는 명물이다.

종류는 딸기, 망고, 초콜릿, 피스타치오가 뿌려진 아랍식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딸기와 망고는 생과일의 맛을 그대로 가진, 이탈리아의 젤라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싸고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부터 매일 하루에 두 개씩 아침저녁으로 먹어주겠노라 다짐을 했건만, 첫째 날은 셋 다 숙소에서 기절해버렸고 어젠 나일강에서의 새해 파티 때문에 접어야 했다. 안되겠다. 이틀 동안 못 먹은 아이스크림까지 하루에 세 개씩 먹어줘야겠다.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신이 나서 걷고 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이보가 나흘라에게 속삭인다.

"나흘라, 소피 미친 거 같지 않아?"

이보의 놀림도 안 들린다. 설령 미쳤다 해도 하루에 세 개씩 먹는 계획은 변함 없으니까!

'할와'는 아랍어로 '달콤하다'는 뜻이다. 영어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부를 때 "스위티(Sweetie)" 혹은 "허니(Honey)"라고 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헬와'라는 애칭을 사용했다. 내게 저 호칭을 써주는 사람은 고작 길거리에서 시간을 때우는 짓궂은 이집션 녀석들이 전부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할와는 나의 달링이 아닌, 아주 달디단, 너무 달아서 턱 뼈까지 가끔 얼얼하기도 한 아랍의 디저트였다.

이것은 할와의 한 종류인데, 중간의 견과류와 너무 달지 않은 맛이 외국인의 입맛에도 무난하다.
▲ 할와 이것은 할와의 한 종류인데, 중간의 견과류와 너무 달지 않은 맛이 외국인의 입맛에도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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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사람들은 단 것을 좋아했다. 아니, 미쳐있었다. 주먹만 한 커피잔의 설탕 네 숟갈은 기본이었고 더 많이 환영할수록 더 많은 설탕을 그의 찻잔에 넣어주곤 해 나를 뜨악하게 했다. 내가 먹었던 차와 커피는 그냥, 커피향이 나는 설탕물이었던 것 같다. 수카르, 수카르(설탕(Sugar)을 뜻하는 아랍어). 전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백색 가루에서 아직도 이들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압드에서 그동안 너무너무 먹고 싶었던 케이크를 세 조각 샀다. 그리고선 카운터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려는데, 줄도 질서도 없는 이곳에 후덕한 이집션 아줌마들까지 가세하니 키 작은 나는 그들에게 묻혀 길을 잃었다. 겨우 아이스크림 세 개를 주문하고선 종이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것은 오른쪽에서 첫번째 두번째 케이크다.
▲ 알 압드의 케익들 이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것은 오른쪽에서 첫번째 두번째 케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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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드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인지 아이스크림은 가게 밖에서 팔고 있다. 역시 아이스크림 앞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줄이고 뭐고 나도 눈치를 보며 앞으로 조금씩 밀고 들어갔다. 앞에 서있던 아줌마가 아이스크림을 건네받았다. 이때다. 지금 주문하지 못하면 또 얼마나 치이고 또 기다려야 할지 모르기에 냅다 영수증을 들이밀며 누가 끼어들세라 주문을 했다.

"하나는 딸기랑 망고 주세요, 두 번째 건 딸기랑 초콜릿, 그리고 마지막 건 딸기랑 망고랑 초콜릿으로 세 개 얹어주세요."

그 순간, 시끄러운 카이로 다운타운 한복판에서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다. 작은 동양 소녀가 야무지게 사람들을 뚫고 나온 것도 신기한데, 또박또박 그것도 아랍어로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다니! 아이스크림을 떠주는 총각까지 합세해 다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곤 갑자기 아이스크림 사려 기다리던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과 오지랖 넓은 행인들까지 합세해서는 "와우!, 뭄타즈!(멋진데!), 따맘!(최고야!)" 하면서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다. 한 아주머니는 나를 툭툭 치시더니 엄지를 치켜올리며 웃어주신다.

사실 이런 일이 이전에도 몇 번 있었지만, 몇 번을 겪어도 이집트스러운 이 상황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재미있다. 이보와 나흘라는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눈물이 흐를 때까지 웃었다.

구차한 변명일지 모르나, 이래서 내가 이집트에서 아랍어를 못 배웠다. 한 마디만 해도 잘한다고 치켜세워주는 이 사랑스러운 이집션들 때문에.

아이스크림은 손에 쥐고 행복에 흠뻑 젖은 얼굴로 시타델에 가는 길.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있고 시간은 아직 채 한시도 안되었다. 이렇게만 흘러갔으면 좋겠다. 더디게 더디게, 삼 주가 세 달 같도록.

그 유명한 압드의 아이스크림. 먹어도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그 유명한 압드의 아이스크림. 먹어도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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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집트, #카이로, #가다툰, #알 압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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