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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애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
 <학교애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
ⓒ 시공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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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아무 때나 어디서든 날짜를 볼 수 있다. 스마트폰 때문에 달력의 존재가 많이 약해졌을 것 같다. 그런데 결코 아닌 모양이다. 2013년의 종이 달력 판매가 2012년의 종이 달력 판매보다 24%나 증가했다는 통계까지 나와 있으니 말이다.

하기야 여전히, 해마다 이즈음이면 괜찮은 달력이 은근 기다려지곤 한다. 마음에 드는 달력 하나 덕분에 1년이 즐거워지기도 한다. 이런지라 단행본 한 권 값을 웃도는 달력을 구입해 고마운 분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내 집에 걸기도 한다.

좋은 달력들은 한해가 지났음에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다. 대개 멋진 풍경이나 근사한 작품이 들어간, 그리하여 감상가치가 높은 달력들이 오래 보관하고 싶은 달력에 해당한다.

한때는 달력이 그 집 형편을 짐작한 척도가 되기도...

이런지라 남의 집에서도 눈에 띄는 달력이 있으면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넘겨보기도 한다. 12월은 달력에 관심이 가는 때, 그 때문인지 이즈음이면 어렸을 때의 추억도 몽글몽글 떠오르곤 한다. 한때는 달력이 그 집 형편을 짐작한 척도가 되기도 했다. 달력의 비중이 크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새해, 누구네 집에 어떤 달력이 있는가?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넘겨보고 내 집의 달력을 자랑하기도 하던 그 순진했던 날들의 추억들 말이다.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시공아트 펴냄)은 이명옥의 최근 책. 저자는 미술작품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글로 풀어쓴다는 평을 받고 있다.

<베리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는 15세기 초에 만들어진 최초의 명화달력입니다. 프랑스 국왕 샤를 5세의 동생이며 갑부였던 베리 공작이 당시 유럽 최고의 세밀 화가였던 랭부르 형제(폴, 에르망, 장 랭부르)에 그린을 주문해서 제작되었지요. 이 그림(기자 주:12개월에 해당하는 그림 중 1월 그림)이 1월 달력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정보를 드리지요. 먼저 그림 속 잔치는 새해맞이 연회입니다. 당시 1월이면 신하들은 영주에게 세배를 드리고 영주는 세배객들에게 새해 선물을 내려주는 관습이 있었거든요. 다음은 그림 위에 보이는 반원형 창의 별자리입니다. 그려진 별자리는 염소자리와 물병자리인데, 태양은 12월 25일~1월 19일에는 염소자리에, 1월 20일~2월 18일에는 물병자리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하면 1월 달력이라는 것을 알아맞힐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애초에 명화달력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어요. <베리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라는 이름처럼, 가정용 기도서를 장식하는 그림이었지요. 중세 시대의 카톨릭 신자들은 하루의 특정한 시간대에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기도문과 예배방식을 적어 둔 기도서를 보며 기도를 드렸어요.-<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에서

'최초의 명화달력은 기도서였다' 일부분.
 '최초의 명화달력은 기도서였다'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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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는 왜 빈센트라고 서명했을까? 페이지 일부분.
 반 고흐는 왜 빈센트라고 서명했을까? 페이지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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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 때문인지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에서 만나는 명화달력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 책 역시 여러 미술 작품들 속에 얽힌 이야기와 미술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힌트들을 들려준다. 인쇄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책값이 터무니없이 비쌌다고 한다. 그 당시 책은 부와 명예, 권세를 상징하는 그리하여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존재였다. <베리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 역시 마찬가지. 오늘날 <모나리자> 못지않은 걸작으로 평가되는 프랑스의 보물인 이 기도서나 기도서를 바탕으로 제작된 명화 달력도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매우 비싼 물건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베리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는 언제, 어떻게 명화달력이 되었을까.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나 고흐, 르느와르 등의 작품만을 따로 모은 명화들을 제작 판매하는 업체들이 있을 정도로 명화달력은 꾸준하고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작품이 최초의 명화달력이 되었는지, 명화 달력의 시작은 어땠는지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베리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 언제, 어떻게 명화달력이 되었을까

이 책 '최초의 명화 달력은 기도서였다'에서 명화에 얽힌 이야기와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 기도서 제작과 달력 제작에 대한 이야기, 또 다른 명화달력 이야기 등을 풍성하게 읽을 수 있다. 명화달력 마니아라면,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세상에 널려있는 수많은 지식들과 교양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이 도움 될 것이다.

가끔은 이 작품이 왜 명작인지, 혹시 작가가 유명하기 때문에 덩달아 유명하거나 비싼 작품이 된 건 아닌지 의아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대로 그림을 볼 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와 함께 만나는 명작들이 요즘 달리 보이고 있다.

2005년 위작 파문을 일으켰던 이중섭, 박수근 두 화가의 미공개 작품 2800여점이 모두 가짜로 판명되었다는 기사는 미술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어요. 흥미롭게도 가짜 그림으로 판명된 결정적인 증거 중의 하나는 서명이었지요.

가짜 그림의 서명만 따로 촬영해 컴퓨터로 하나씩 비교한 결과, 천여 개의 가짜 그림에 적힌 서명이 국화빵처럼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진짜 그림 밑에 먹지를 대고 서명을 베껴 가짜 그림에 사용한 것이지요. 이런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그림의 이름표인 서명은 진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보증서와 같은 역할을 해요. 또한 작품의 권위를 보장하거나 그림의 배경과 특징, 예술가의 개성까지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줄임)<부채를 든 자화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1886~1963)이 무더운 여름날에 윗옷의 단추를 풀어헤치고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자화상은 한국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어요, 조선최초의 서양화가가 그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화작품이거든요. 그림 위에는 '1915'라는 숫자와 'Ko. Hei Tong'이라는 알파벳이 보이네요. 왜 영어로 서명을 했을까요?-<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에서

또한 흥미로운 것은 서양 미술 작품에 한정하지 않고 주제 관련 우리 작품들도 언급하고 있다는 것. 서명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고희동의 <부채를 든 자화상>, 손이 가진 다양한 표정 편에서는 정복수의 <몸의 추억>과 <몸의 공부>를, 발의 메시지 편에선 김준의 <문신신발>, 그림에서 들려오는 소리 편에선 김호득의 <아>, 그림 속의 리듬 편에선 이희중의 <포도와 동자>, 그림에서의 주인공의 크기에 대한 이야기에선 우리나라 어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탱화나 <영산회상도>, 새와 벌레의 시선 편에선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 <박연폭포>를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포인트들을 들려준다.

고희동-<부채를 든 자화상>.1915년.캔버스에 유채.61X46cm. 등록문화재 제487호. 국립현대미술관(과천)
 고희동-<부채를 든 자화상>.1915년.캔버스에 유채.61X46cm. 등록문화재 제487호. 국립현대미술관(과천)
ⓒ 국립현대미술관(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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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저자의 또 다른 책인 <팜므 파탈>을 읽었었다. 클림트의 <유디트>, 레오나르다빈치의 <모나리자>,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레이디 릴리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등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미술 작품 속에 표현된 치명적인 유혹, 그 팜므 파탈적인 작품들의 제대로 된 감상과 이해를 돕는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클림트를 알았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알게 되었다. 워낙 인상 깊게 읽었던지라 이후 이 책처럼 미술작품들을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설명한 책들을 몇 권 더 찾아 읽게 되었으며, 언제든 시간 내어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팜므 파탈>을 필자처럼 인상 깊게 읽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저자의 신간 프로필을 보니 일본에서도 번역 출판되었으며, 한국번역문화원선정 2005년 한국의 책 96에 선정되었다는 설명과 재출간되었다는 설명이 있으니 말이다.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은 <팜므 파탈>보다는 좀 가볍게 썼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작품들과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참고서 같은 책이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이명옥 (지은이) | 시공아트(시공사) | 2013-11-18 |17,000원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 - 이명옥 관장과 함께하는 창의적 미술 읽기

이명옥 지음, 시공아트(2013)


태그:#명화 달력, #베리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 #고희동, #부채를 든 자화상,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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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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