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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출산 임박. 집결바람!"

그날이 왔다. 새벽부터 진통을 호소한 아내와 일요일 점심 즈음 산부인과로 향하며 본가와 처가에 메시지를 날렸다. 출산을 위해 두 번째로 산부인과를 찾은 날이다.

첫 번째는 일 주일 전. 양수가 터진 것 같다는 아내의 전화에 부리나케 뛰어가 보쌈집으로 데려갔다. 출산 바로 직전에 고기를 먹여야 아기를 '순풍' 낳는다는 장모님 말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날 아내는 보쌈만 실컷 먹고 쿨쿨 잤다. 양수 오보였던 것이다. 막상 진짜 산통이 왔을 땐 고기고 뭐고 할 여유가 없었다.

양수가 터진 것 같다는 아내말에 달려간 보쌈집. 신호가 오면 즉시 고기집부터 가야한다는 장모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보쌈만 먹고 잤다.
▲ 출산 직전엔 고기를! 양수가 터진 것 같다는 아내말에 달려간 보쌈집. 신호가 오면 즉시 고기집부터 가야한다는 장모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보쌈만 먹고 잤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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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실에는 먼저 온 산모들이 거친 신음소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동안 아내와 수없이 많은 출산 예행 연습을 했지만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특유의 건강 체질을 뽐내는 아내 때문이다.

아내는 좋게 말해 무던하고 나쁘게 말해 둔한 스타일이다. 임신을 확인한 순간도 그랬다. 드라마에서는 어떻던가?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여자가 화장실로 뛰어간다. "체했나 봐요." 그리고 병원 장면. "축하합니다. 5주째입니다." 뭐 이런 스토리.

그러나 아내는 생일 기념으로 먹은 돼지갈비가 잘 소화가 안 된다며 투정하다 혹시 모르니 산부인과에 가보라는 나의 제안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후로 출산 때까지 입덧 한 번 하지 않았다. 다른 산모들은 이것저것 갑자기 먹고 싶은 것이 많이 생기고, 평소 잘 먹는 음식을 보고 구역질하기도 한다지만, 아내는 반만 맞았다. 먹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구역질한 음식은 없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임신 전부터 관찰됐던 증상.

유달리 아픈 것을 잘 참는 아내는 출산도 '방귀 뽕' 하는 힘으로 해치울 것만 같았다. '출산 체질'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내가 딱 그 체질인 것 같았다. 이런 아내가 그토록 처절한 고통에 몸부림 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장모님이 말했다 "이제 그만 수술하게"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글에서는 출산 고통이 가랑이 사이로 수박 한 통을 억지로 빼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수박이 나오다니? 에이 설마.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다. 

'방귀 뽕' → '응애애애~'라는 공식은 적용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몇 시간 동안 힘을 쏟아 붓던 아내는 결국 탈진 직전까지 갔다. 의사는 진땀을 빼면서 "이상하게 안 나오네요"만 되뇌었다. 부모님과 장모님이 도착해 "아직이냐?"고 묻는다. 당직 의사는 몇 번을 "자, 마지막입니다. 이제 나와요. 힘주세요!"하고 기합을 불어 넣었지만, 나오는 것은 힘이 다 빠진 신음소리뿐이었다.

"안되겠습니다. 모두 나가주세요."

7시간 동안 '힘주세요'만 외치던 의사는 결국 우리를 분만실에서 쫓아냈다. 그러고 다시 몇 시간이 흘렀지만 소식이 없었다. 이제는 힘 빠진 신음소리마저 나오지 않았다. 초조했다. 장모님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뭔가 결심이 서신 듯, 조용히 내 곁으로 와 말했다.

"손 서방. 이제 그만 수술한다고 하게. 이럴수록 산모 고통만 더 깊어지네. 우리가 빨리 선택해 줘야 하네."
"의사가 한 번만 더 해보자니까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초산은 다 힘들다던데요."
"아니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나중에 결국 수술하면 더 견디기 힘드네."

오랜 진통에도 아기는 나올 생각을 안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분만실에서 쫓겨나야 했다.
▲ 분만실의 아내 오랜 진통에도 아기는 나올 생각을 안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분만실에서 쫓겨나야 했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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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도 했다. 우리보다 먼저 출산을 경험한 처남댁은 오랜 시간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결국 제왕절개를 했다. 수술 후에는 우울증이 와서 아기까지 보기 싫어했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장모님은 하나밖에 없는 딸도 그렇게 될까봐 걱정이셨다.

혼란스러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 자연분만을 하는 것이 산모에게 최선이다. 그런데 계속 안 나오면? 수술하면 출산 후에도 계속 고생스럽다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못하던 순간에도 분만실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듣기로는 분만이 어려운 산모에게는 화장실 변기를 뚫는 속칭 '뚫어 뻥'과 같은 기구로 아이 머리를 집어 뺀다고 했다. 또는 간호사들이 산모 배 위에 올라타 강제로 밀어낸다고도 했다. 그 수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상상되고 있었다. 이제 신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 분만실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속만 타들어갔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내는 누가 봐도 출산에 최적화된 체질인데...

"낳은 건가?" "글쎄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수술을 결심한 순간, 간호사 한 명이 포대기에 무엇인가를 싸안고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이인가? 울음소리가 들렸던가?' 잘 모르겠다. 간호사들은 대걸레 자루를 들고 분만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대걸레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낳은 건가?"
"그런 것 같은데요."
"그런데 왜 아무 말이 없나?"
"글쎄요..."

불안감이 엄습했다. 간호사들은 분주하게 움직일 뿐, 우리에게 말을 전해주는 사람 한 명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이 떠올랐다. 극도의 초조함에 휩싸였다.

출산 전에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우리 부부에게 '출산의 기적' 같은 신화를 교육하기에 바빴다. 탯줄 자르는 연습을 미리 해놔야 한다던가, 신기하게도 출산 후 울던 아이에게 태교하면서 들려주던 노래를 불러주면 뚝 그친다던가. 그런데 탯줄을 자르거나 노래를 불러주기는커녕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내 소식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얼마 전, 주위 산부인과에서 있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잠시 후, 드디어 의사가 나왔다.

"아기 나왔습니다. 고생을 좀 했네요."
"산모는 괜찮습니까?"

아기 손가락, 발가락은 몇 개인지 같은 것은 관심도 없었다. 아내가 무사한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내가 둘째를 가지면 인간이 아니다'라는 다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네, 괜찮습니다. 들어가 보세요."

분만실에 누워있는 아내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실핏줄은 모두 터져 있었다. 초죽음. 그렇다. 초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모양새였다. 배에는 온통 피멍이 들어 있었다. 뚫어 뻥도, 배 밀기도 다 한 모양이다. 나도 울고, 아내도 울었다. 아내는 눈을 반쯤 뜨고 나지막이 물었다.

"아기는요? 수박은 안 깨지고 잘 나왔나요?"
"글쎄요. 나도 못 봤는데..."

분만 직전 정기검진에서는 3.2kg이라던 아이가 태어나니 4kg으로 변했다. 저 머리가 걸려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 분만 직후의 똘복이 분만 직전 정기검진에서는 3.2kg이라던 아이가 태어나니 4kg으로 변했다. 저 머리가 걸려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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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나오지 않던 아이, 실체를 보니....

아내의 안전을 확인했으니, 이제 아내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의 실체를 봐야 했다. 위층 신생아실로 올라가니 인큐베이터 안에 웬 검은 물체가 아른거렸다. 놈이다. 그런데 범상치가 않았다. 보기에도 다른 아이보다 머리통이 하나 더 컸다. 머리털도 이미 장발. 간호사가 아기를 데려와 설명을 해준다.

"몸무게는 4kg이고요..."
"네? 4kg이요? 바로 직전에 검진 받을 때는 3.2kg이라고 했는데요?"
"네. 4kg이고요, 손가락, 발가락, 척추 다 정상이고요..."

그랬다. 이 놈은 보통 '대두'가 아니었다. 그러면 그렇지. 출산 체질이 분명한 아내가 이렇게 힘겨워 했다면 보통 아이였을 리가 없다. 만일 아이의 머리통 사이즈를 정확히 포착했다면, 일찌감치 유도분만이나 제왕절개를 했을 것이다. 여기 저기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여줬다. 아내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똘복이(아기의 태명)는 무럭무럭 자랐다. 태어났을 때 상위 3%였던 아이는 그 후로 몸무게가 크게 늘지 않아 오히려 홀쭉한 몸매를 갖게 됐지만, 머리통만큼은 단연 돋보였다. 그래서 촛불시위가 있으면 가끔 데려가곤 한다. 위에서 사진을 찍으면 참여 인원이 한 명 더 늘어날 것만 같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2개월 정도 지난 후의 똘복이. 대두의 위엄이 느껴진다.
▲ 대두의 위엄 태어난 지 2개월 정도 지난 후의 똘복이. 대두의 위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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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후, 첫 출산을 앞둔 예비부모를 만나면 꼭 두 가지를 당부하게 된다. 첫째는 적당히 드시라는 것이다. 태아의 식욕을 핑계로 체중 조절에 실패하면 가랑이 사이로 빼내야 하는 수박 크기가 달라진다. 초음파 검사는 크게 믿을 게 못된다.

둘째, 다들 아이가 하루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기를 낳아본 부모들은 알고 있다. 나오기 전에 얼마 남지 않은 자유를 만끽하며 푹 자두라는 것. 어떤 아기 엄마는 나온 아이를 다시 집어넣고 싶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아이는 가끔 보면 사랑스럽고 자주 보면 귀엽지만, 쉬지 않고 보게 되면 항상 사랑스럽지만도, 귀엽지만도 않다. 남은 시간을 최대한 즐기시라.

덧붙이는 글 | 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공모 글입니다.



태그:#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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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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