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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돈 없어서 안돼" 하고 말리면 "엄마 카드 있잖아"라고 대답한다죠? 아이들에게 신용카드는 정말 신기한 도깨비방망이라도 될 듯합니다. 뭐든 카드 한 장이면 구입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어른들도 그랬죠. 각종 포인트와 할인 혜택으로 여러 장의 카드에 혹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가 정말 고객을 위한 것일까요? <오마이뉴스>는 '나는 왜 카드를 잘랐나' 기획을 통해 '당겨 쓰고 갚게 하는 소비 문화'를 바꾸고자 합니다. 비슷한 사례가 있으신 분은 직접 기사로 입력하셔도 좋습니다. [편집자말]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재미나게 사는 인생, 자! 시작이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그걸 가져라.'
 
한때 굉장히 유명했던 신용카드 광고음악이다. 언제적 광고인지 찾아보니 2005년에 만들어진 광고인데 지금까지 멜로디가 정확히 기억나는 걸 보면 그 광고 참 많이 봤나보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신용카드를 쓰면서 즐기라고 권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신용카드를 만드는 것은 너무 쉬웠다. 하지만 나는 그런 광고를 보고 들으면서도 '홀리지' 않았다. 신용카드를 쓰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통장 스쳐가는 월급, 나는 신용카드 안 써야지 했는데...

내가 대학생 때 부모님은 맏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다 하면서 내 등록금까지 마련하느라 맞벌이를 하셨다. 어느 날 우연히 식탁 위에 놓여있던 신용카드 청구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두 분이 한 달 동안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이 청구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쇼핑을 즐기거나 명품을 사는 것도 아니고 아빠가 돈이 많이 드는 취미를 즐기는 것도 아니었다. 신용카드 사용금액과 카드사에서 받은 현금서비스의 청구액은 점점 늘어났고 엄마 얼굴의 주름도 함께 늘었다. 

거기에 일찌감치 취업한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신용카드는 정말 안 써야지 싶었다. 신용카드를 쓰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월급이 카드 값으로 홀랑 출금되는 것을 보고 좌절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다시 카드로 이것저것 사거나 누군가를 만나면서 그 스트레스를 풀고, 또 다음 달 월급도 그렇게 스쳐지나 간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KB국민카드 본사 1층에 설치된 KB국민카드 현금자동입출금기.
 서울 종로구 KB국민카드 본사 1층에 설치된 KB국민카드 현금자동입출금기.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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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신용카드를 절대로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대학 졸업 후에 돈을 제대로 벌기 시작하면서도 나는 한동안 신용카드를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체크카드를 사용했다. 통장에 돈이 있으면 기분 내며 신나게 쓰고 통장에 돈이 없으면 친구들이 불러도 핑계를 대고 안 나갔다. 그렇게 나는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2012년 봄, 결국 신용카드를 만들고 말았다. 휴대폰 사용료 할인, 커피값 할인, 헤어숍 할인, 교통비 할인, 실적에 따른 카드 청구요금 할인 등, 신용카드로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을 보니 어느 순간 나 혼자 손해보고 사는 것 같았다.

나도 그 혜택을 누리며 살아야 덜 억울할 것 같았다. 게다가 특정 백화점에서는 무료로 커피나 코코아를 제공받을 수 있는 쿠폰과 무료주차 쿠폰도 줬다. 그런 혜택들을 받으면서 마치 내가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면서 '꼭 필요한 곳에만 쓰고 안 쓰면 되지, 혜택만 챙기자'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처음엔 체크카드와 신용카드를 같이 사용했다.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때에만 신용카드를 썼는데 점점 이 카드 저 카드 따로 쓰는 게 귀찮아졌다. 게다가 예쁜 분홍색 신용카드를 꺼내 긁을 때마다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마치 '나는 이 물건을 살 만큼 형편이 좀 됩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건네는 듯했기 때문이다. 

통장 잔고 0원, 신용카드의 본모습을 만났다

2012년 봄, 결국 신용카드를 만들고 말았다. 신용카드로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을 보니 어느 순간 나 혼자 손해보고 사는 것 같았다.
 2012년 봄, 결국 신용카드를 만들고 말았다. 신용카드로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을 보니 어느 순간 나 혼자 손해보고 사는 것 같았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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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체크카드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과 만나 한턱을 낼 때에도, 인터넷에서 맘에 드는 물건을 살 때에도 신용카드를 썼다. 체크카드로 결제하려면 잔액을 확인하고 잔액이 없으면 은행에 가서 입금한 후에야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신용카드는 그냥 '드르륵' 긁기만 하면 되니 훨씬 편했다. 컴퓨터로 결제할 때에도 실시간 계좌이체보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숫자 몇 개 적는 것으로 어느새 결제가 끝났다.

'어차피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나 같은 통장에서 나갈 텐데 뭐 어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점점 신용카드를 쓰면서 '미리 당겨쓰는 것'에 익숙해졌다.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 그럴싸한 옷을 살 때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어차피 한 달에 몇 만원 씩 몇 달만 나눠 내면 되니까 사도 큰 무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후배를 만나거나 제자들이 나를 찾아오면 그들의 지갑은 주머니밖에 나오지도 못하게 했다. 친구들을 만나 한 끼 식사로 몇 만원 쓰는 것도 상관없었다. 신용카드를 쓰면 마법처럼 돈을 자주, 그리고 많이 쓰는 것이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신용카드를 쓰는 동안 나는 일이 바쁘고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사용 내역을 세세하게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카드 값은 부지런히 그리고 조용히 내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결혼 후 일도 바빠지고 남편과 신혼을 즐기느라 신용카드 씀씀이는 훨씬 줄었지만 신용카드는 계속 사용했다. 그러다가 2013년 여름, 아기가 생겼다. 때맞춰 직장도 관두었다. 그리고 내 신용카드를 덜 쓰기 시작했다. 안 쓴 건 아니라는 게 함정.

그리고 신용카드의 본 모습을 마주했다. 그다지 많이 안 썼다고 생각했는데 내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이 '0'원이 되고 난 후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신용카드로 야금야금 써버린 돈이 한 달 후엔 그 합이 꽤 커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영어강사를 하면서 또 그 후에 이직한 곳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는데 남아있는 돈이 없었다. 당장 지난 달 쓴 카드값을 해결해야 했다.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쓴 것은 아니었지만 내 통장에서 나가던 내 신용카드 값을 남편에게 말하기가 민망했다.

카드 값도 해결할 겸 예전부터 벼르던 보험해약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해약금의 반을 카드 값으로 내게 되었다. 속이 몹시도 쓰렸다. 카드 값을 내고난 후에 청구서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내가 대체 어디에 이렇게 돈을 썼던 건가 싶고, 혹시 잘못 결제된 돈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카드 값을 안 냈으면 내 통장에 고스란히 남았을 돈인데, 뭘 샀는지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들로 빠져나갔다. 아,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게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잔액부족' 생각하는 그 떨림, 나쁘지 않다

'잔액부족' 생각하는 그 떨림이 나쁘지 않다. 과소비를 막아주고 있으니. ^^
 '잔액부족' 생각하는 그 떨림이 나쁘지 않다. 과소비를 막아주고 있으니. ^^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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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쓰린 각성의 시간을 보낸 후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신용카드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남편 월급날이 되면 월급에서 일정금액을 내 통장에 넣어두고 그 돈으로 한 달 동안 생활한다. 둘이 벌다가 남편 혼자 버는 돈으로 생활하려다 보면 '쫄리는' 때도 많다. 밥하기 싫을 때, 아니면 그냥 생각나면 쉽게 시켜먹던 치킨도 예전만큼 쉽게 시킬 수 없다. 이번 달 생활비를 잘 계산해 보고 조금 빠듯하다 싶으면 다음 달에 먹기로 한다.

또, 우리집 고정 지출도 줄여볼 겸 내가 쓰던 휴대폰을 알뜰폰으로 바꿨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면서 얼마 할인도 받지 못하고 한 달에 5만 원쯤 나왔던 휴대폰 요금이 이제 한 달에 6천 원 정도로 줄었다. 가스, 수도, 전기도 절약하고 보험도 정리했다. 신기하다. 신용카드 하나 정리했을 뿐인데 내 소비패턴이나 생활패턴이 전반적으로 정리되었다. 돈을 지금처럼 신중하게 고민하며 쓴 적이 언제였나 싶다. 그런 적이 있기는 했을까?

체크카드를 다시 쓰면서 물건을 사고 계산할 때마다 떨린다. 특히 20일쯤 되면 더 그렇다. 남편의 월급날은 25일, 그 전에 혹시라도 통장에 잔액이 없어서 '고객님, 잔액 부족이라는데요'라는 말을 들을까봐서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다. 그래도 그 떨림이 나쁘지 않다. 내가 과소비 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각성시켜주는 것 같아서이다.

앞으로도 나는 신용카드를 쓰지 않을 생각이다. 또 다시 지난해 11월의 허탈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참, 이번에 글을 쓰면서 그동안 메일로 받았던 청구서를 다시 열어 봤다. 그리고 카드를 쓴 마지막 달 청구서를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청구 금액 중 할인 받은 금액은 허탈하기 짝이 없다. 단 돈 3만8459원. 내가 1년 동안 쓴 카드 값이 얼만데…. 백화점에서 무료로 커피를 마셨거나 무료 주차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혜택을 쫓아 만들었던 신용 카드였는데 '소탐대실'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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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용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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