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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은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일명 '사법살인'이 일어난지 3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2008년 재심 무죄판결로 피해자들의 명예는 회복됐지만, 최근 그들과 가족들이 다시 신음하고 있습니다. 유신시절 고문과 조작의 가해자였던 국가는 2011년 이후 빚을 독촉하는 채권자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이 기획은 그에 대한 고발입니다. [편집자말]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씨가 8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자택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2008년 재심에서 무죄판결로 피해자들의 명예는 회복됐지만, 최근 대법원이 배상금을 반환하라는 판결에 그들은 또 다시 채무자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신세가 됐다.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씨가 8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자택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2008년 재심에서 무죄판결로 피해자들의 명예는 회복됐지만, 최근 대법원이 배상금을 반환하라는 판결에 그들은 또 다시 채무자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신세가 됐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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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배상금 반환소송 관련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다.
"이제 말년을 살아야 하는데 이 집도 가압류 돼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얼마 안 있으면 이 세상 떠날 사람이 집 한 칸 있는 걸 빼앗아서 내쫓는다고 했을 때 국가 체통이 뭐가 되느냐. 그건 우리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1심 초반에는 법원이 국가가 낸 가압류신청을 기각했다. 그런데 1~2개월 후엔가 그걸 받아들였고, 올해 1월 패소했다. 할 수 있는 만큼 논리를 세워서 얘기했는데, 재판장이 나 혼자가 아니라 (대법원 결정에 따라) 일괄적으로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

- 이자 계산법을 바꾼 대법원 판결을 들었을 때 심정이 어떠했나.
"2011년 1월 27일 대법원에 가서 직접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우리를 또 두 번 죽이는구나.' 대법원은 이미 1975년에 우리를 죽였다. 2011년에는 파기환송해서 고법이 판단하면 될 일을 파기자판(원심 판결을 깨고 대법원이 다시 판결하는 것)해서 또 죽였다. 해선 안 될 일인데, 판례를 바꾸려면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해야 하는데 소부에서 결정했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우리는 희생자 8명과 같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재심 무죄판결 이후 국가는 희생자 8명에게는 항소도 하지 않고 1심 판결을 확정해 배상금을 줬는데 우리는 대법원까지 갔다. 거기서도 파기자판까지 해서 궁지에 몰았다. 검찰이라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정의, 인권 등을 지키는 게 본연의 임무다. 그럼에도 검찰이 우리한테는 항소에 상고까지 했다는 건 여러모로 짚고 넘어가야 할 측면이 있지 않겠나.

이런 떳떳치 못한 일로 우리를 두 번 죽이고, 돈 받는 과정에서 또 우리를 죽인다고 하면…과연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 법의 보호 밖으로 내몰린 신세 아닌가."

- 그럼 올 1월 1심 패소 후 소송대상 금액을 반환하고 있는 상황인가.
"저와 부인, 세 자녀가 함께 배상금을 23억 원 정도 받았다. 그 중 6억 정도는 기부를 했고 나머지는 집 짓고, 빚 갚는 데에 썼다. 반환소송 걸린 금액은 약 13억 원이다. (소송 후) 부모들이야 낼 돈도, 갖고 있는 재산도 없으니까 모르지만 다른 집 자녀들은 반환했다고 하니 아이들한테 형평성에 맞게 내라고 했다. '하늘도 무심치는 않을 거다, 법원도 눈물이 날 테고 국정원도 사람인데 우리를 밖으로 내몰진 않을 거다, 그렇게 가혹하겠냐'는 말도 했다. 근데 막내아들은 나처럼 정신질환을 겪고 해서 같이 항소했다. 아직 항소심 재판부가 정해지지 않았다."

- 막내아들도 이 사건 때문에 아프다는 얘기인지.
"그런 영향이 컸다. 구속될 때는 돌이 채 지나기도 전이었다. 나와 보니 초등학생이더라. 근데 아버지가 벌써 거기(교도소)를 다녀와서 정상인이 아니지 않나. 8년 동안 자유 없는 몸으로 생활했으니 그 마음이…. 일반 사람들은 그 아픔을 모른다. 위축되고 구겨진 마음이니까 스스로 '나가서는 이걸 전부 풀어야 사회 생활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되질 않고,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심하게 했나보다.

아이들도 충격을 받고, 그런 갈등 때문에 막내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6개월 다니다 그만 두고 포항공대로 갔다. 거기서도 밖으로만 돌더니… 머리가 이상해져버렸다. 학교야 그런 대로 공부해서 졸업하고 취직까진 했는데 사회에 적응을 못했다. 대인관계가 잘 안 되니까 회사를 그만 두고, 다른 데 들어갔다가 또 관두고 그러면서 계속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들이 정신질환에 시달려 입원하게 됐으니 부모 심정이 어떻겠냐."

- 그래서 막내만 함께 항소를….
"다른 아이들은 직장도 갖고 있는데 그냥 놔두면 봉급도 차압당하고 은행 거래도 힘들 테니 변호사가 (반환대상금액을) 내라고 권유했다.

아무튼 항소를 해놓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이 착잡하다. 나도 집사람도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왔지만, 남에게 줄 것 못 주는 삶은 처음이다. 빚을 졌으니까(웃음). 잠도 못 자고 악몽에 시달린다. 그전에 아팠을 때처럼 이따금 땀도 흘린다. 평소에 잊어버리려 하는데도 이런 상황에 직면하니까…."

- 2008년 마침내 재심에서 무죄판결 받으면서 좀 나아졌나.
"참으로 옳은 것은 언젠가는 이렇게 밝혀지는 날이 있구나,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때부터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했다.

예전에는 어디 다녀오면 주변 사람들이 '김정일 만나고 왔어?'식으로 얘기했다. 그 말 한 마디가, 겉으로는 허허 웃고 넘겨도 마음을 건드렸다. 그럼 며칠 동안 아팠다. 무죄 판결 받고 나서는 그런 농담도 없어지고 사회생활하면서 '나도 무죄 판결 받았어, 민주화운동의 공로자야'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무죄 판결) 그 다음부터 사람다운 사람답게 살았다. 죄인처럼 살아왔다. 내 삶의 모습 자체는 죄인이었다. 무죄 판결 받고서야 비로소 내가 정상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구나 생각했다."

- 그런데 대한민국이 지금 '돈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걸었다.
"(소장을 받았을 때) 정말로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해야 하나… 참담했죠. 가족 전부 다 합쳐서 반환해야 하는 돈이 13억 원 정도인데, 나랑 (막내) 아이 몫은 약 7억 원이다. 집도 포함됐다. 가압류 상태라 매각해서 돈을 마련할 수도 없다. 이 일이나 해결되면, 살림 규모를 좀 줄여서 조용하게 살다가려고 한다. (목소리가 낮아짐) 살 길이 뭐 있겠나, 죽는 일밖에…."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씨가 2년 전 집을 지을때 심은 매화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창복 씨는 "노년에 손주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싶었는데 대법원의 판결로 집까지 가압류됐다"고 말했다.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씨가 2년 전 집을 지을때 심은 매화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창복 씨는 "노년에 손주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싶었는데 대법원의 판결로 집까지 가압류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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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씨의 손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씨의 손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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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4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초등학교 6학년이던 손녀가 박근혜 대통령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더라.
"애들끼리 한 일이라 우리는 몰랐다. 우리가 아이들을 어렸을 때 키웠다. 얼마나 자기들을 사랑하는지 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를 더 잘 따랐다(웃음). 그러더니 할아버지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니까 제 깐에는 마음이 쓰였나봐요…. 저희 엄마한테 들은 얘기를 쓰면, 그렇게라도 하면…. "

- 대한민국이 원망스럽진 않은가.
"(웃음) 참 안타깝죠. 정말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됐으면 얼마나 보람 있고 좋았겠냐…. 그것이 앞으로의 세상을 밝게 만드는 길 아니겠는가."

- 아버지 뒤를 이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에 벌어진 일이다.
"어찌 감정이 없을까…. 그래도 박 대통령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세상을 크게 본다면, 그렇게 올바른 길로 간다면 스스로 빛날 거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도 좋지만 그 지위에서 합당한 일을 하면 사람이 빛이 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과거의 아픔을 씻어주는 대통령, 지혜로운 대통령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간첩사건에 증거조작 등이 잦아져서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도 똑같은 심정이다. 간첩 증거조작 사건 얘기 들었을 때는 우리가 겪은 일이 떠오르더라. 딱 겹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웃음). 그때만 해도 전국에서 대학생들이 우르르 일어나 불같이 올라오니까 우리 사건을 만들지 않았나. 지금 선거 앞두고 또 그런 것을 반복하면 참 안 되죠. 그런 것은 안 된다. 결국 한국 사회가 다시 암흑의 시대로 돌아가는 일이다. 과거처럼 선거 때 이런 꼼수를 쓰는 건 참으로 환멸스러운 일이다. 정말 개탄스럽다."


태그:#인혁당, #이창복, #국가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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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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