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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일 오후 8시]

세월호 참사 추모 분위기가 계속 되면서 서울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서울소재 주요대학이 봄 축제를 연기하거나 취소한 가운데 연세대와 고려대가 축제를 그대로 강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연세대와 고려대 측은 이번 축제에 대해 각각 "학생, 지역, 국가 공동체에 바람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역할", "유흥의 추구를 넘어 이 사회의 문제에 대한 고민의 장"이라며 의미를 부여했지만,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사회 분위기와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세월호 참사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등 288명이 사망했고, 16명의 실종자(30일 기준)가 아직 구조되지 못한 상황이다.

고려대는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연세대는 29일부터 30일까지 봄 축제를 진행했다.

[고려대 축제] "슬픔 가볍지 않다"더니... 술과 음식물 냄새 진동 

전날 축제가 열린 서울 고려대학교 학생회관 앞에 빈 소주병을 담은 박스가 쌓여있다.
▲ 29일 오전 7시 30분 고려대 학생회관 앞 전날 축제가 열린 서울 고려대학교 학생회관 앞에 빈 소주병을 담은 박스가 쌓여있다.
ⓒ 송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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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운(22)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지난 28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축제 개최 여부에 대해) 오랜 시간 논의했다"면서도 "(찬반 의견이 엇갈렸지만) 학생들에게 활력을 주고자 (축제를)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씨는 "세월호 슬픔을 절대 가벼이 여기는 건 아니다"라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학우들의 의견을 나누고자 관련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8일 오후 4시 고려대 주변 길바닥에 이학교 불어불문학과 주점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28일 오후 4시 고려대 주변 길바닥에 이학교 불어불문학과 주점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 송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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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열기는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진 사회 분위기를 의식했다는 것이다. 실제 총학생회는 이날부터 '대동제, 해도 될까?'라는 부스를 운영했고,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무엇일까요?'라는 주제의 앙케이트 조사(스티커 부착)도 벌였다.

그러나 이날 고려대 캠퍼스 풍경은 이 앙케이트 부스를 제외하고는 이전에 흔히 봤던 대학 축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생회관 중앙 벽면은 '2014 민족고대 석탑대동제 피 끓는 청춘'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메인 무대에선 드럼과 기타, 베이스 소리가 터져 나왔고, 근처 부스에선 물 폭탄 맞추기 게임이 한창이었다. 물 범벅이 된 남학생이 "OO야 빨리 와서 너도 이거해"라며 연신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캠퍼스를 누비는 학생들도 보였다. 정문근처에서 만난 한 커플은 샛노란색 가발과 흰색 가운을 맞춰 입었다. 인문대학에선 '용의자K'라는 게임이 성황이었다. 게임 진행자인 이혜정(20)씨는 "건물 안에 퀴즈 방을 만들고, 답을 맞힐 때마다 다음 방으로 옮겨가는 게임"이라며 "반나절 만에 500여명의 학생이 참여했다"고 귀띔했다.

전날(27일) 저녁에는 남성의 성 상품화 논란으로 주목받았던 쿨가이 선발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대회에는 20명의 남학생들이 참가했고, 그 중 일부는 자신의 웃옷을 벗은 채 각자의 근육을 한껏 자랑했다.

지난 29일 오전 7시 30분 기자가 다시 찾아간 고려대 학생회관 주변은 술과 음식물 찌꺼기 냄새가 진동했다. 전날(28일) 밤 학생들이 마시고 버린 빈 소주병들을 채운 박스가 수북이 쌓여있었고, 음식물 찌꺼기를 담은 쓰레기 봉지도 가득했다. 학생회관이 위치한 민주광장 계단으로 올라서자 고대신문사 건물 앞에도 빈 소주병과 맥주병을 담은 박스 일곱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연세대 축제] '쿵쾅쿵쾅' 음악소리에 환호성

이날 축제가 열린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로 삼거리에서 학내 동아리 밴드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29일 오후 1시 연세대 백양로 삼거리 이날 축제가 열린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로 삼거리에서 학내 동아리 밴드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송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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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축제 현장도 고려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9일 낮 12시경 연세대 중앙로인 백양로에는 파란색 파라솔들이 일렬로 길게 늘어섰다. 축제 때마다 보이는 기업 프로모션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한 화장품 회사에서 진행한 'ㅇㅇㅇ를 향해 쏴라!' 부스에는 한 학생이 경품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파라솔 밑에 맥주와 소주 20박스 정도를 쌓아놓고 주점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백양로 삼거리에서는 학내 밴드 동아리의 공연이 벌어졌다. '쿵쾅쿵쾅' 강한 비트의 음악이 나오자 거리를 지나던 스무 명 가량의 학생이 모여들었다. 들국화의 '돌고 돌고 돌고', 로맨틱펀치의 '토요일이 밤이 좋아'가 연주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 뒤에선 다음 공연을 준비 중인 또 다른 동아리가 대기하고 있었다. 노천극장 쪽에서도 일렉트로닉 계열의 음악이 들려왔다. 연세대 방송국인 YBS가 이날 저녁에 있을 '숲속의 향연' 방송제 시험 방송을 하고 있었다.

연세대 캠퍼스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부스를 찾아볼 수 있었다. 백양로 언더우드 동상을 지나 연희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노란색 파라솔이 보였다. 이 학교 사회과학대 학생회가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서명 부스는 축제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서명을 받고 있던 김홍식(23.정치외교학과)씨는 "(서명 부스는) 공식적인 축제 행사가 아니다"라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대책위의 부탁을 받아 단과대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애도 강요 아니지만... 지금이 축제 할 기간 아니라는 것은 분명" 

연세대·고려대 학생들 대부분은 세월호 참사에도 축제를 진행한 것에 대해 크게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아 보였다. 28~29일 이틀간 기자가 만난 10여 명의 연세대·고려대 학생 중 축제 진행에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학생은 단 2명에 불과했다.

29일 오전 7시 반 고려대 학생회관 앞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다.
 29일 오전 7시 반 고려대 학생회관 앞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다.
ⓒ 송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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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2시경 고려대 학생회관 인근에서 주점 부스를 설치하느라 여념이 없던 김아무개(20)씨는 "(세월호 참사로) 조심스럽긴 하지만 축제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너무 추모 분위기에만 빠져있지 않았으면 한다"고도 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게임부스를 운영하고 있던 신홍규(26,사회학과)씨도 "추모는 추모대로 축제는 축제대로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했다. 연세대에서 만난 정아무개(21)씨는 "(오히려 축제가) 세월호 이후 분위기를 쇄신할 기회"라고 말했다.

적은 숫자이긴 했지만 일부 학생들은 학내 축제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냈다. 자신을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참가한 학생이라고 밝힌 김보영(25.고려대 국문과)씨는 "모든 (축제)행사를 취소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추모 의미를 살린다고 했는데 이전 축제와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겠다"고 말했다. 정아무개(21, 연세대 정외과)씨도 "(세월호 추모 분위기를 고려해) 아카라카(연대 응원단) 공연을 6월 늦췄다고 들었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세월호 참사 때문에) 축제를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축제를 취소하거나 연기한 다른 대학 학생들도 두 대학의 축제 강행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경희대 언론정보학과에 재학 중인 고아무개(25)씨는 "아직까지 16명의 실종자가 있다. 학생들이 당장 축제를 즐겨야 하니까 축제를 강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일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학생인 권아무개(24)씨도 "계획 된 행사가 많이 있었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신중해야 했었다"면서 "다 같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2학기 때 축제를 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김아무개(24)씨 역시 역시 "애도를 강요하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이 축제를 할 기간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축제 강행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조아무개(24.서울대 조소과)씨는 "축제를 하더라도 세월호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어야 한다"며 "세월호 참사에 관한 서명운동이나 문화공간을 꾸려서 운영하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 축제, #대동제, #연고대, #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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