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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본관
▲ 인하대 인하대학교 본관
ⓒ 시사인천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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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캠퍼스 조성 부지 이전 문제로 한때 혼란에 빠졌던 인하대학교(총장 박춘배)가 다시 내홍을 겪고 있다.

박춘배 총장이 단과대학 통폐합과 책임경영제, 교수 인센티브제 등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교수회와 학생회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현 단과대학 10개(공대·IT공대·경영대·경상대·사회과학대·자연과학대·생활과학대·문과대·사범대·의대)와 학부 2개(아태물류학부·예술체육학부)를 단과대학 7개(공대·경영대·사회과학대·자연과학대·인문예술대·사범대·의대)로 통·폐합하겠다는 게 학교당국의 입장이다.

박 총장은 지난달 30일 "변화된 교육환경과 함께 학문영역의 광역화와 융·복합 추세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 운영의 효율화가 필수적"이라며 "단과대학 통폐합과 이에 기반을 둔 단과대학 책임경영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학문 융합 학부제 실패, 단과대학 통합으로 융합?

인하대는 1999년부터 학부제를 본격적으로 실시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올해부터 학부제를 폐지하고 학과제로 돌아섰다. 학부제의 폐해가 컸으나 정부가 학부제를 도입한 대학에 인센티브를 줬기 때문에, 대학들은 학부제를 도입했다.

인하대가 학과제로 돌아선 뒤 학생과 교수 모두 환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학문 간 융합이라는 미명아래 단과대학 통폐합이 등장했다. 학부제 역시 학문 간 융합을 목적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인하대 총학생회를 제외하고 10개 단과대학 학생회는 성명을 내어 "학문 융합이 대세인지는 오래됐다. 학부제 시절 학문 융합이 이뤄졌는지 묻고 싶다. 학부제 실시 후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졌다. 학과제로 전환하면서 오히려 소속감과 학과 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새내기 때부터 전공에 진입하는 등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학부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대학원에서 융합학문을 배우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다. 대학이 충분한 지원을 한다면 활발한 융합연구는 지금도 가능하다. 그런데 학교당국은 여전히 단과대학 통합이라는 물리적 결합만으로 학문 융합을 얘기한다. 이는 융합에 대한 무지몽매한 발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단과대학 통폐합 추진 역시 교육부가 올해 1월 '대학구조개혁안'을 발표한 데서 비롯됐다. 정부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국내 대학을 단계적으로 구조조정하기 위한 방안으로 '각종 정부 지원 대학특성화 사업과 재정지원 사업에 입학정원 감축을 연계'한 구조개혁방안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인하대는 내년도 입학정원을 4% 줄이기로 했다. 140여 명이다. 이공계열 대신 기초학문 분야 인문사회과학 계열의 학과를 중심으로 입학정원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기초학문 붕괴, 학문 불균형, 학과 간 부익부빈익빈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교수회와 학생회가 걱정하는 점이다.

정부는 입학정원을 축소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정원 외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인하대의 '정원 외 입학'은 140~150명 선이다. 이는 주로 공대에서 이뤄지고 있다.

진리의 상아탑에서 무한경쟁시장으로?

단과대학 통폐합은 단과대학 책임경영제와 맞물려 있다. 학교당국의 계획은 단과대학 통폐합으로 각 단과대학의 정원을 3000명 이상으로 늘리고 단과대학별로 책임경영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박춘배 총장이 총장선거 입후보 당시 내세운 공약 '독립채산제'와 다름없다.

이 독립채산제란 수입과 지출 책임을 각 단과대학이 지님으로써 최종적으로 각 단과대학이 자기 수익구조(=수입 확대방안과 지출 운영방안)를 책임지는 것을 뜻한다. 이는 국내 일부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책임경영제'라 부른다.

이 경우 기부금·재단지원금 등 대학 재정 수입 확대를 위해 대외적으로 노력해야했던 총장의 책임이 각 단과대학 학장에게 분산된다.

이는 또 교수 평가제·인센티브제와 맞물릴 전망이다. 정부는 특성화사업·연구사업·산학협력사업 등으로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부가 재정을 지원할 때 사용하는 평가지표는 입학성적·취업률·각종 연구비 유치실적이다.

연구사업비와 산학협력사업비 등을 많이 유치한 교수에게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게 인하대 학교당국의 의사다. 교수들이 학문연구와 학생지도에 전념하는 게 아니라, 기부금과 정부지원금을 타 내기 위해 경쟁해야하게 생겼다.

책임경영제가 실시되면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한 경쟁이 대학 간 경쟁에서 대학 내 단과대학과 학과 간 경쟁으로 치닫고, 이는 대학 내 학문 불균형과 학과 간 양극화 현상을 심화할 공산이 크다.

김영 인하대교수회 의장은 "취업률과 연구비 유치실적 등을 학과와 단과대학 평가에 도입하면 이공계열이 인문사회계열보다 유리한 게 현실이다. 이는 결국 대학 내 학과 간 갈등, 교수 간 갈등, 학생 간 갈등으로 번져 대학은 학문공동체에서 무한경쟁시장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반값등록금이 대통령 공약이었지만 답보상태에 있고, 대학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등록금을 몇 년째 동결하거나 인하하는 분위기다. 이로 인해 대학은 재정난을 겪고 있고, 이는 교육환경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김현철 인하대 공대학생회장은 "책임경영제를 도입한 한양대와 경희대의 경우 학교당국이 단과대학에 배분하는 예산을 5~10%씩 삭감했고, 각 단과대학은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 요구에 부응할 수 없게 됐다. 실험실습이 중요한 단과대학들이 타격을 받았다. 심지어 건물 내 승강기 사용도 중단하는 등, 폐단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텐-텐-텐 프로젝트, 학과 간 무한경쟁 예고

박춘배 총장은 단과대학을 통폐합한 후 '텐(10)-텐(10)-텐(10) 프로젝트'를 가동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박 총장의 인하대 발전 전략으로 10년 내 학과 10개를 전국 대학 동일 학과에서 10위권 안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인하대 전공학과는 모두 58개다.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학과는 정원 감축과 학과 통폐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교수회와 학생회의 우려다.

이미 국내 대학들이 정원 감축을 명분으로 학과 통폐합 또는 폐지에 나서면서 기초학문·예술·인문사회과학·사회복지학·어문학계열 등의 학과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있다. 기초과학과 인문학의 중요성은 커졌지만, 대학 현장에선 외면 받고 있는 것이다.

김현철 공대학생회장은 "인하대는 교육부의 지원 사업인 씨케이투(CK2: 수도권 대학 특성화) 사업에 프로젝트 9개를 신청했다. 이를 전공분야로 살펴보면 항공·물류·기계·중국·물리·화학 등이다"라며 "박춘배 총장의 명품 학과 육성을 위한 '텐-텐-텐 전략'에 나머지 학과 48개는 누락돼있다. 인하대의 위상은 더욱 추락할 게 자명하다"고 비판했다.

단과대학 통·폐합은 항공대와 통합 신호탄?

인하대와 항공대의 통합 추진 의혹은 1995년부터 제기되기 시작했고, 2012년 송도 캠퍼스 조성 부지 이전 사태 때 다시 부각했다.

그 뒤 지난해 8월 두 대학의 학교법인인 인하학원과 정석학원이 정석인하학원(이사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으로 통합하면서 두 대학의 통합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특히 이번에 인하대 대외부총장이 두 대학의 통합 구상안을 말해 파문이 커질 전망이다.

인하대 학교당국이 지난 3월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 뒤 학교당국과 학생회는 매주 한 차례 정기 협의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동원(경영학과 교수) 대외부총장은 지난 5월 8일과 27일 열린 협의회에서 '통합 후 인하대 용현캠퍼스를 공학계열로, 항공대 화전캠퍼스를 인문사회계열로 편재하면 좋지 않겠냐?'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대학 통합 방안 또한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방안을 염두에 둔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 대합입학시험 수험생은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2018년부터 줄어든다. 이에 교육부는 입학 정원을 감축하거나 대학끼리 통합할 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대학구조개혁안에 담고 있다.

한편, 박춘배 총장은 2012년 취임 초기부터 산학협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인하대는 국내 산학협력 사업 중 가장 대표적인 LINC(산학협력 선도대학)에서 최근 탈락했다.

교수회와 학생회는 "우리보다 연구·교육역량이 적은 대학들이 LINC에 선정되고, 우리 대학이 탈락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또 최근 대학평가 순위에서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 뒤 "재단의 적극적 투자 부재, 대형 국책사업 탈락, 몰상식한 대학구조조정 추진으로 인한 혼란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하는 이는 바로 총장이다. 모든 개악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학교구성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박 총장은 지난달 30일 '최근 대학평가 순위 하락과 LINC 사업 탈락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구성원들을 실망시킨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그러나 총장은 실행의 적절한 수준과 타이밍을 결정하고 그 책임을 지지만, 실행은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해야 한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담화문 발표 후 박 총장에 대한 불신은 교수회와 학생회를 넘어 동창회까지 확산됐다. 박 총장의 리더십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셈이다.

정석 인하학원은 대학 구조조정 방안과 관련해 오는 27일 이사회를 열기로 했다. 인하대 내홍이 향후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이사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하대, #한진그룹, #조양호, #정석인하학원, #항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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