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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한 주택가에 위치한 우리 집(사진은 지난 해 봄 연산홍이 곱게 피었을 당시 찍은 것).
 대전 서구 한 주택가에 위치한 우리 집(사진은 지난 해 봄 연산홍이 곱게 피었을 당시 찍은 것).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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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다 된 그날 밤 우리 집 현관문이 쿵쿵 울렸습니다.

대문이 있으나 마나 한 우리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의 통과의례지요. 문을 열기가 조금 두렵기도 했습니다. 무서웠냐고요? 아닙니다. 너무 반가운 손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조금 떨리기도 했습니다.

건장한 청년 둘이서 야심한 시각에 우리 집에 찾아온 이유는 이렇습니다. 지난 제 기사 '단독생활' 보장없는 단독주택이 나간 이후 많은 분들의 호응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 기사를 페이스북에 여러 페친(페이스북친구)들이 공유해 주면서 많이도 퍼져 나갔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제 페이스북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제 페이스북 댓글에 모르는 사람이 "안녕하세요^^ 옆집 사는 청년입니다"라고 남긴 것입니다. 저는 곧바로 "여보~ 여보~ 이것 봐" 하고 아내를 불렀습니다. 댓글을 함께 읽으며 벌써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일인가가 곧 벌어질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옆집 청년, 이렇게 만나니 더 반갑네요. 앞으로 우리 동네 이야기 쓰는 것 조심해야겠군요"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사실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제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들 일상의 한 부분이 온라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알면, 동네 분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청년은 곧 바로 "절대 조심하면서 쓰지 마세요. 저는 우리 동네 사람들 정 받으면서 사니깐요"라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당신 마음대로 동네이야기를 쓰느냐', '당신이 쓴 이야기 사실과 다르다', '이사온 지 얼마나 됐다고 설레발이냐' 이런 식의 답글이 올라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들었었거든요.

전 그 청년에게 지나가는 말로 "건너오세요. 대하 굽고 있는데 같이 먹을래요?"라고 답글을 남겼습니다. 그랬더니 "갈게요"라는 답변이 곧 바로 돌아왔습니다. "헉!" 전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나와 옆 집 청년이 페이스북에서 댓글로 나눈 대화(편집).
 나와 옆 집 청년이 페이스북에서 댓글로 나눈 대화(편집).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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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청년은 제가 이사온 지 1년 5개월이 되었지만 잘 모르는 사이입니다. 제 기사에서는 마치 동네사람들 모두와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그려졌지만, 사실 우리 집 양 옆집하고는 그저 인사만 하는 사이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양 옆집은 저희와 연배가 잘 맞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처럼 아이를 키우는 집이거나 아니면 늘 집 앞에 나와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은 금세 친해져서 일찍부터 이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왼쪽 옆집은 우리보다 연배가 10년 이상 높으시고 그 자녀가 또 저희와 10년 이상 차이 나니 딱히 말 붙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안면몰수하고 살던 것은 아니고, 반갑게 인사는 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옆집 청년이 한밤중에 현관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약간의 취기도 있어 보였지만요. 저는 "옆집 청년? 아이고.. 이 밤에... 오라고는 했지만... 아이고... 정말로... 일단 들어오세요" 대체 제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게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처음 본 옆집 청년들, 인사 나누고 보니...

우리 집을 찾아온 청년은 두 명. 형제였습니다. 댓글을 남긴 사람이 형이었고, 동생도 같이 왔습니다. 둘이서 술 한 잔 하다가 우연히 페이스북을 봤는데, "우리 동네 이야기 아냐?" 하고서는 댓글을 달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묻고, 학교를 묻고, 직업을 묻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이 청년들은 제가 아주 잘 알고 지냈던 분의 조카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는데, 산을 사랑했던 사람, '이슬마루'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던 제 마음 속의 형님. 지금은 지리산과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있는 그 분의 조카였습니다. '아~'

삼촌 이야기에 큰 조카는 울먹이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보다 좋았다던 그 분의 이야기에 저도 울컥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두 형제와 제가 아는 여러 사람들과의 친분을 확인해 보니 정말 우리들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바로 옆집에 살면서도 이렇게 모르고 살았다니... 그 뒤로도 우리는 정치 성향에 대해서도, 스포츠에 대해서도, 취미에 대해서도, 이 동네에 대해서도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두 형제와 우리 부부가 왜 그 동안 얼굴을 못 보았나 했더니, 다른 곳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집으로 다시 온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출퇴근 시간이 서로 달라서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청년들은 "이제 서로 잘 알았으니 주말에는 인사도 나누고, 가끔 재밌는 이야기도 하고 살아요. 그리고 우리 집에 블루베리가 50그루는 되는데, 나중에 블루베리 따서 동네사람들과 블루베리 파티도 하고요..." 그 말에 전 코끝이 찡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집에서 바라 본 옆 집. 두 집 사이에는 담을 대신하는 나무울타리가 놓여있다.
 우리 집에서 바라 본 옆 집. 두 집 사이에는 담을 대신하는 나무울타리가 놓여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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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알고 지내면 이렇게 가까운 것을,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마 제가 살던 아파트 옆집도 어쩌면 제가 잘 아는 사람이었을지 모르는데, 그 10여 년을 살면서 옆집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제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등을 하고 있으면 늘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 이상해. 가족들하고는 이야기도 잘 안 하면서 온라인에서는 뭘 그렇게 친구를 챙겨? 완전 수다쟁이야... 헐~."

아내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수다쟁이에 가깝도록 그렇게 떠들어대면서 바로 옆집에 나와 가까운 사람이,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고민이 비슷한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동안 관심도 없었다니요.

새벽이 되어서야 그 청년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우리 부부는 서로 얼굴을 보며 빙긋 웃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전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단독주택이어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테지요. 하지만 우리 동네처럼 담을 없애고, 이웃이 늘 얼굴을 보며 살다보니 이런 일도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담을 없애고 꽃과 나무를 심으면 사람들의 심성도 좀 더 착해질 테니까요.

다음날 아내가 옆집 청년들 부모님을 만났는데, "아유~ 어제 우리 집 애들이 실례 많이 했지요?"라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아내는 "아니에요. 엄청 재밌었어요"라고 답했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옆집 청년은 우리 아이에게 '바람개비'를 선물했습니다. 아이에게 좋은 이웃집 삼촌이 생기려나 봅니다.


태그:#단독주택, #단독주택 살아보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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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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