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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오른쪽)와 '동네 오빠' 재준이. 이 둘은 날마다 만나서 엄마 아빠 놀이에서 부터 숨바꼭질, 자전거타기, 달리기, 칼싸움,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 등 각종 놀이를 하며 정말 신나게 놀았다.  우리 부부는 "우리 한이는 날마다 어린이 날이야"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오빠가 이사갔다.
 우리 아이(오른쪽)와 '동네 오빠' 재준이. 이 둘은 날마다 만나서 엄마 아빠 놀이에서 부터 숨바꼭질, 자전거타기, 달리기, 칼싸움,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 등 각종 놀이를 하며 정말 신나게 놀았다. 우리 부부는 "우리 한이는 날마다 어린이 날이야"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오빠가 이사갔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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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와 동네 오빠 재준이, 우준이 형제는 그냥 삼남매였다. 같이 놀고 같이 먹고.... 그런 오빠와 동생이 지금은 없다.
 우리 아이와 동네 오빠 재준이, 우준이 형제는 그냥 삼남매였다. 같이 놀고 같이 먹고.... 그런 오빠와 동생이 지금은 없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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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하고 서윤이만 아파트 아니고 친구들 다 아파트 살아."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 나에게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오늘 유치원에서 집 주거와 관련된 내용이 나왔었나 보다.

5살 우리 아이가 다니는 병설유치원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다. 큰 길을 육교로 건너야 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편이다. 이 학교에 맞닿아 있는 아파트 단지는 상당히 규모가 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만 3세반에 다니는 우리 아이 친구들도 대부분 아파트에 산다. 아이의 증언에 따르면 15명 중 겨우 2명만이 단독주택에 사는 셈이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그동안 단독주택에 사는 것이 얼마나 장점이 많은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다녔다. 그러나 단독주택 최대의 약점이면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바로 '단독주택에는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잊었었던 것 같다.

2년 전 단독주택에 살아보기로 결심하고서도 가장 큰 고민이 아이의 친구였다. 다행히도 우리가 이사 온 이 골목에는 우리 아이보다 한 살 많은 동네오빠가 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동네오빠의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어서 외동딸인 우리아이의 동생까지 덤으로 생겼다.

지난 2년 동안 이 녀석들은 거의 친남매나 다름없이 지냈다. 눈만 뜨면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오빠 집으로 달려갔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도 얼굴을 봐야했고, 유치원이 끝난 후에는 어두워질 때까지 길에서, 오빠집에서, 우리집에서 장소를 옮겨가며 놀았다.

오죽하면 난 가끔 "한이야, 너 오빠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면 아이는 늘 "아빠, 오빠, 둘 다"라고 말하곤 했다. 평소 하는 짓을 봐서는 당연히 "오빠"라고 말할 것 같아서 내심 불안해하면서도 아빠만큼, 어쩌면 엄마만큼 좋은 '소울메이트(?)'가 아이에게 있다는 것이 '복'이라 여겼다.

번개맨으로 변신한 우리 아이와 동네 오빠 재준이.
 번개맨으로 변신한 우리 아이와 동네 오빠 재준이.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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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오빠가 얼마 전 이사를 갔다. 그것도 쉽게 만나기 어려운 먼 타 지역으로 말이다. 그 소식을 듣고 우리 부부는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뭐라 말해야 할까, 아이가 얼마나 아파할까... 정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 동네오빠가 이사를 가기 닷새 전 쯤, 오빠 집에 놀러갔다온 아이가 "아빠, 오빠네 이사간대"라고 말하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그래? 어디로?"
"응. 멀리... 근데 내가 놀러 가면 만날 수 있다는대?"
"아... 그럼 또 만날 수 있지."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아이의 얼굴은 슬픔이 묻어났다. 그리고 닷새 쯤 지나 오빠네는 정말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가던 날 아이는 엉엉 울었다. "오빠 보고싶어~" 하면서 우는 아이의 등을 떠밀며 유치원에 가던 아내는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이 마음을 달래려 장난감도 사주고, 키즈카페도 데려가고, 맛있는 것도 사줬지만 순간뿐이었다. 과자를 사주면 "이제 오빠도 없으니까 한 개만 사도 되겠다"라고 말하고, 장난감을 사주면 "오빠랑 같이 놀 수도 없으니까 재미없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우리부부는 "마음에 병 들겠네... 어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들 정말... 우리집과 동네 오빠 재준이네가 사는 골목은 막다른 골목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차가 없는 좁은 골목이다.  이 녀석들은 이 골목에서 늘 땅강아지처럼 뒹굴며 놀았다.
 이 녀석들 정말... 우리집과 동네 오빠 재준이네가 사는 골목은 막다른 골목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차가 없는 좁은 골목이다. 이 녀석들은 이 골목에서 늘 땅강아지처럼 뒹굴며 놀았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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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나는 아이가 그 오빠를 많이 잊었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아이의 입에서 오빠의 이름이 튀어나오곤 했지만, 그래도 어린아이니까 곧 잊히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오늘 유치원에서 재석이가 서윤이랑 결혼한대."
"그래? 재석이가 서윤이 좋아해?"
"아니, 재석이는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재준오빠랑 결혼한다니까 서윤이랑 결혼한대."
"어? 너는 재준오빠랑 결혼할거야?"
"응, 당연하지... 근데 오빠한테 아직 말 안했어. 다음에 오빠 집에 놀러 가면 말해야지?"

아이는 아직도 그 오빠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심지어 결혼상대자로 낙점하고 있었다. 물론, 곧 잊힐 것이다. 이별의 아픔도 겪으면서 아이는 커 갈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왠지, 젊은 부부들이 거의 없고, 아이들이 없는 단독주택으로 이사 와서 아이에게 더 큰 아픔을 주는 것은 아닌지 미안하기만 하다.

아파트에 살아도 이사로 인한 친구와의 헤어짐은 잦을 것이다. 하지만 단독주택가에 아이들이 워낙 적다보니 단짝친구를 떠나보내는 아픔이 더 큰 것 같다. 이제 누군가가 '단독주택 사는 것 어때요?'라고 물으면 조금은 망설일 듯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아이가 몇 살이죠? 형제는요?"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단독주택, #단독주택살아보기, #동네오빠, #이사가던날, #대전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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