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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변기의 내부 부품을 모두 교체했다. 양변기 상단을 완전 분해해야 가능한 일이라서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 처럼, 우리집 양변기는 꽤 노후됐다. 그래서 완전교체를 마음먹었는데, 마음씨 좋은(?) 사장님의 권유로 1만원으로 해결했다.
 양변기의 내부 부품을 모두 교체했다. 양변기 상단을 완전 분해해야 가능한 일이라서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 처럼, 우리집 양변기는 꽤 노후됐다. 그래서 완전교체를 마음먹었는데, 마음씨 좋은(?) 사장님의 권유로 1만원으로 해결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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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손을 빌려드립니다."

광고카피다. 어떤 집수리업체의 센스 있는 카피다. 그러니까 집수리 잘하는 만능 기술자 '아빠(?)'를 돈 주고 데려다 쓰라는 뜻일 게다.

이 카피를 보는 나는 참 기분이 나쁘다. '맥가이버'가 되지 못한 아빠로서 자존심이 상한다고나 할까? 마치 세상 모든 아빠가 '맥가이버'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지나치게 배배 꼬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분 나쁘다. 나처럼 집수리는커녕, 집 청소도 제대로 안 하는 아빠가 어디 한둘이랴.

단독주택에 살기 시작한 이후 난 매우 수동적인 '맥가이버'가 되었다. 30년 된 노후 주택을 구입하다보니 가끔씩 뭔가를 수리해야 할 일들이 발생한다. 아파트에 살 때는 뭐든지 관리실에 전화하면 해결 방법이 생겼다. 친절한 관리소 직원들은 내가 출근하고 없는 사이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그런데 단독주택은 다르다. 도움을 요청할 직원이 없는 것은 물론, 부하직원 다루 듯 하는 아내와 딸아이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능력도 안 되는데 말이다.

"여보! 이거 막혔는데? 어쩌지?"
"아빠! 엄마가 저것 좀 고쳐 달래"

물론, 부하직원 다루는 직장상사처럼 호통을 치지는 않지만,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 눈망울로 똘망똘망 바라보는 눈빛은 '부담백배'다. 할 줄 아는 것 없고 게으른 나는 '아빠 손 빌려 주는 집'에 전화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아빠 손을 빌리는 것은 돈이 든다. 돈도 아껴야 하고, '빨리 어떻게든 해 보라'는 아내의 무서운 눈초리도 피하기 위해 지극히 수동적으로 맥가이버가 되기를 자처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진짜로 아빠가 '만능'인 줄로 착각하는 아이의 눈빛은 덤이다.

이사를 온 지 1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우리 집 샤워기가 고장이 났다. '사람 부르면 얼마나 들까?'라고 묻는 아내의 말에 "일단 출장 나오면 기본이 5만 원은 하고, 거기에 부품 값까지 하면 10만~15만 원은 더 부르지 않겠어?"라고 답했다. 그렇게 계산하고 나니 겨우 저거 하나 교체하는데 15만 원은 너무 비싼 것 같았다.

그래서 도전에 나섰다. 나에겐 든든한 친구, 인터넷이 있기에 용기를 냈다. 일단 부품 가격을 알아보기로 했다. 검색창에 '샤워기 교체'라고 검색하니 다양한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부품가격은 1만 원 대에서 10원대까지 다양했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좀 더 저렴하겠지만, 당장 샤워를 해야 하니 마트에 가서 저렴한 것으로 구매했다.

고치는 데는 돈이 든다, 그래서 직접 하기로 했다

물이 새던 샤워수전을 난생 처음으로 내 손으로 교체했다. 노후된 단독주택에 사는 일은 아빠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물이 새던 샤워수전을 난생 처음으로 내 손으로 교체했다. 노후된 단독주택에 사는 일은 아빠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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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나의 첫 '샤워수전 교체기'가 시작됐다. 일단 인터넷에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사진과 함께 자세히 소개해 놓은 블로그를 찾아보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고,  제품 사용설명서도 꼼꼼하게 읽었다.

먼저 고장 난 샤워기를 뜯어내야 했다. 블로그 선배들은 '뜯어낸다'는 한 마디로 설명을 끝냈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우선 뜯어낼 샤워수전에 맞는 공구가 필요했다. 다행히 공구함을 열심히 뒤져보니 맞는 공구가 있었다. 그리고는 돌리고 돌려서 샤워수전을 뜯어냈다.

헉! 그런데 뜯고 보니 벽 속에 숨어있는 수도관이 나타났다. 그 수도관과 새 샤워수전을 연결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사온 샤워기 수전이 딱 들어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말 그대로 헛수고만 하고, 사람을 불러야 할 판이다.

다행히 규격은 잘 맞았다. 어찌 어찌하여 샤워기를 모두 조립한 뒤 물을 틀었다. 그런데 벽에서 물이 새어 나왔다. 헐~ 그럼 그렇지, 단 한 번에 잘 될 리가 있겠나. 다시 뜯었다.

뭘 잘 못했나 곰곰이 살펴보니 수도관을 연결할 때 빈틈을 매워주는 흰색 테이프, 즉 '테프론테이프'를 감지 않은 것이다. 철물점으로 뛰어가 테프론 테이프를 사왔다. 이번에는 단단히 테이프를 감고 조립을 마치니 이번에는 물이 새지 않았다. 휴~

"다 됐어. 이쯤이야 뭐~ 돈 굳었지?"

나는 의기양양하게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다. 아내는 "오~ 대단한데?"라면서 내 엉덩이를 두들겼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이에게 "아빠가 다 고쳤다!"라고 자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으로 내 '맥가이버 도전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두 달이나 지났을까? 이번에는 양변기가 문제를 일으켰다. 노후한 양변기를 언젠가는 교체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결국 사고가 난 것이다. 물 내리는 손잡이와 연결된 쇠고리가 낡아서 끊어졌기에 임시방편으로 클립 등으로 이어서 사용해 왔는데, 이번에는 아예 물이 내려가는 것을 막고 있는 고무패킹이 찢어진 것이다.

"어쩌지?"라고 묻는 아내의 눈빛은 수리공 아빠에게 당신의 능력을 보여 달라는 주문으로 들렸다. 난 완강한 말투로 말했다.

"이건 너~무 낡아서 안 돼. 이참에 아예 변기까지 다 교체해야겠어."

사실, 부품만 갈아도 될 것 같기는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돈이 좀 들더라도 새것으로 교체하면 10년은 문제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아내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내가 좀 알아봤는데, 양변기 교체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 것 같아. 어때? 바꿀까?"
"알았어. 자긴 돈도 많네."

힘없이 내뱉는 아내의 말투가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교체할 자신도 없으면서 부품 사다가 양변기를 뜯는다면 아마도 돈만 버리고 사람 불러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집 근처 양변기 가게를 찾아갔다. 사정을 설명하니 여사장님의 말씀.

"그거 아무것도 아녜요. 만 원짜리 이거 하나 사다가 갈아주면 돼요."

참, 훌륭하신 사장님이다. 내 맘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모르겠으나 양변기 전체 교환을 원하는 내게 1만 원짜리 부품만 팔고 마시는 저 분, '천사'가 따로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부품을 사서 들고 나오는 내 뒤통수에 그 사장님은 한 말씀 더 하신다.

"그거 여자들도 다~ 해요. 남자가 그것도 못해요?"

어이구 정말 짜증나. 부품을 사들고 집에 오니 아내가 활짝 핀 얼굴로 나를 맞는다. 돈을 아끼게 됐으니 어찌 좋지 않을 쏘냐, 대신 나는 고생을 하게 생겼다. 부품 설명서를 꼼꼼히 읽은 뒤 온갖 공구를 꺼내서 고장 난 양변기를 분해했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제법 힘도 들고, 적합한 공구도 반드시 필요했다.

"뭐? 여자들도 다 한다고? 이걸? 어휴~"

힘겹게 조립을 끝내고 물을 내려 보니 제법 그럴싸하게 물이 내려간다. 다 됐나 싶었더니 물이 샌다. 다시 뜯어 재조립하니 이번엔 물이 차오르도록 구멍을 막아주는 고무패킹이 맞지 않는다.

"다 됐어? 여보?"
"아빠 다 됐어요?"

자꾸 조바심이 생긴다. 뭐 그리 크게 압박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태를 묻는 아내와 딸의 말에 자꾸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래도 다행히 다시 뜯어 또 재조립하니 이번엔 잘 맞았다. 에구 에구 내 허리야~~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단독주택에 아빠 손이 필요한 부분이 이뿐이랴. 뜰에 있는 나뭇가지 전지도 해야 하고, 벌레 잡는 약도 뿌려야 하고, 때론 나무를 사다가 심기도 해야 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커다란 대추나무와 감나무를 베어냈다. 동네 할머니들이 왜 베느냐고 성화셨지만, 난 묵묵히 베어냈다.

'이 녀석들 때문에 내가 앞으로 고생할 것 생각하면 지금 고생하는 게 나아~~'

물론 우리 집 감나무 5그루 중 2그루만 베었고, 나머지는 아직도 그대로다. 그리고 베어낸 자리에 올 봄 체리나무와 장미꽃나무를 심었다. 얼핏 보면 이 모든 일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전문지식이 필요하기도 하다. 또 사다리 타고 5미터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 전지를 하는 일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님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우리집 울타리에 페인트도 직접 칠했다.
 우리집 울타리에 페인트도 직접 칠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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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름에는 우리 집 담을 대신하는 나무 울타리의 페인트를 칠했다. 옆집 아저씨와 페인트를 공동구매해서 칠했는데, 게으른 나를 대신해 아내가 거의 칠하고, 나는 조금 거들었다. 겨우 그것 조금하는데도 며칠이 걸렸는지 모른다.

아무튼 단독주택에 사는 것은 참 쉬운 일은 아니다. 톱질을 할 때도 있고, 삽질을 할 때도 있다. 망치를 쓰는 일은 당연하고... 온갖 공구들이 다 필요하고, 내 손으로 그 것들을 다뤄야 한다. 난 배운 적도 없는데 말이다.

이 뿐이랴. 방수, 도배, 보일러, 바닥 시멘트 콘크리트 등 앞으로 내 손길을 거쳐야할 일이 째깍째깍 시계침 처럼 다가오고 있다. 물론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해야 하겠지만, 다 부담스럽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이 앞의 글을 통해 알려지면서 '단독주택 사는 것 어때?'라고 묻는 주위 분들이 많아졌다. 그러면 나는 꼭 이렇게 말한다.

"음... 좋아요. 아내도 만족하고, 아이도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아빠들은 좀..."

단독주택 아빠 되기, 결코 만만치 않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단독주택, #단독주택살아보기, #집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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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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