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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세비야 지역화폐모임에서 발제 중인 마키
 2013년 세비야 지역화폐모임에서 발제 중인 마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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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2013년) 세비야에서 열린 '스페인 지역화폐 모임'에서였다. 스페인 여러 도시에서 온 사람들 중에 눈에 띄는 동양인 여자 한 명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마키 이주카(46)였다.

그녀는 세비야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도시 헤레스의 '조키토' 지역화폐 모임의 멤버였다. 2007년 시작된 조키토는 스페인 지역 화폐 운동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운동이었고, 그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스페인 사람이 아닌 일본인인 그녀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5월인데 벌써 기온이 40도를 넘어서는 수요일 오후(13일), 약속한 카페에 들어서는 그녀는 친환경 가게를 들러 장을 보고 오는 길이라 두 손이 묵직했다. 프랑스인 남편이 오랫동안 하지 않던 플라멩고 기타 수업을 다시 듣기 시작해, 남편 수업시간 동안 이래저래 개인 볼일을 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세비야의 한 골목 카페에서 만난 마키
 세비야의 한 골목 카페에서 만난 마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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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플라멩코를 찾아 나선 길

그녀가 스페인에 온 것은 18년 전, 20대 후반 때였다. 22살에 그녀의 어머니가 오랜 기간 투병 중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한동안 방황하던 그녀가 만난 것이 플라멩코였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항상 병풍 같은 것이 있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모든 보호막이 무너진 느낌이었어. 내 스스로의 힘을 찾는 시간이 필요했고 플라멩코는 그런 나에게 열쇠 같은 것이었어."

일본에서 4년간 플라멩코를 배운 그녀는 병중인 엄마와 퇴원하면 꼭 같이 가자던 스페인에 홀로 왔다 처음 마드리드에서 2년을 보내고, 플라멩코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세비야로 자리를 옮겼다. 매년 일본으로 가서 콩쿠르에 참여했고 4번 만에 대상을 받을 만큼 그녀는 한동안 플라멩코의 세계 속에 푹 빠져 지냈다.

자연에서 찾은 또 다른 열쇠

세비야에서 다시 헤레스로 삶의 자리를 옮긴 그녀는 그곳에서 플라멩코 기타를 배우러 온프랑스 남자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더 이상 플라멩코를 추지는 않았다. 왜 플라멩코 전문 댄서의 길을 왜 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답했다.

"어느 순간 플라멩코를 둘러싼 사회에 실망을 느꼈어. 외국인이기에 전통 플라멩코를 할 수 없다는 선입견들, 남성중심주의적인 풍토. 좀 더 깊이 들어간 플라멩코 사회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 속살들이 많이 있었지."

플라멩코만을 바라보고 10여 년을 달려온 그녀에게 그것은 두 번째 위기와도 같았다. 그 때 일본 방문에서 우연히 후쿠오카 마사노부(1913~2008)의 자연농법을 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헤레스로 돌아와 작은 텃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론 쉽지 않았다. 지금도 역시 어렵다고 한다.

"나는 내 삶의 힘을 내 안에서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왔어.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생명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엄청난 힘을 매일매일 보고 배우고 있어. 작은 벌레부터 식물까지… 어떻게 스스로 살아가려고 힘을 끌어내는지. 그 모든 것을 관찰하고 보살피는 일은 경이로워. 고요한 듯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엄청난 삶의 에너지를 볼 때마다 내 안에 있을 나도 모를 힘들을 생각하게 되지."

마키의 텃밭에서 수확한 건강한 먹거리
 마키의 텃밭에서 수확한 건강한 먹거리
ⓒ M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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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새로운 제도가 필요해

그 때쯤 지역화폐 모임도 시작하게 되었다. 원하는 삶의 리듬을 유지하려면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같이 농사를 짓던 친환경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모임이었던 '조코'를 중심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약 200명 정도의 회원이 있어. 크지는 않지만 8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 그 안에서 서로 공유하며 살아지는 하나의 룰이 생겨가고 있는 느낌이야."

기타 수업이 끝나는 남편과 야외 점심 약속이 있다는 그녀에게 앞으로의 시간은 어떤 것일지 물어보았다.

"이것저것 하고 있는 일들이 달라 보여도 결국 이 모든 삶을 관통하는 것은 '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요즘은 플라멩코도 다시 할 수 있을 거 같아. 모방이 아닌 내 것으로 말이야."

그녀가 새로이 출 플라멩고는 어떤 몸짓일지 기대된다.
 그녀가 새로이 출 플라멩고는 어떤 몸짓일지 기대된다.
ⓒ M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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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18년 남짓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큰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삶의 전환점에서 배우고 싶었던 '살아가는 힘'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배움터였던 셈이다.

"기회가 되면 이제는 일본으로 돌아가서 내가 배운 삶의 힘을 나누며 살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그녀는 최근 텃밭에서 농사지은 것으로 건강한 먹거리 요리를 가르치고 나누는 '식사의 날'을 한 달에 한 번씩 꾸려가고 있다.

아무래도 삶의 에너지를 향한 그녀의 실험과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태그:#스페인, #이방인, #플라멩고, #자연농, #지역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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