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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 기자말

 신랑신부가 퇴장하며 날린 종이비행기. 복권이 끼워져 있었다. 물론 당첨은 되지 않았다.
신랑신부가 퇴장하며 날린 종이비행기. 복권이 끼워져 있었다. 물론 당첨은 되지 않았다. ⓒ 김희선

한국에서 중국어를 배울 때, 교사의 꿈을 안고 한국으로 건너온 앳된 얼굴의 중국인 선생님이 한 분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너덧 살 어렸지만, 나에게는 아직 선생님이다. 첫 수업을 시작하는 선생님은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열정을 온몸으로 내뿜으며 중국어를 가르치던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다.

하지만 낯선 외국 생활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힘들어했고, 고향보다 비싼 물가에 쉽사리 지갑을 열지 못했다. 그래도 중국보다 반이나 싼 '한국산' 화장품 가격에는 아이처럼 좋아하며 사들이곤 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도 한 보따리 싸들고 갔으니 말이다.

선생님의 결혼식을 위해 선양으로!

 입맞춤을 하는 행복한 신랑신부와 중국 혼례 전통 상차림
입맞춤을 하는 행복한 신랑신부와 중국 혼례 전통 상차림 ⓒ 김희선

중국에서 졸업논문을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때였다. 그녀가 결혼한다며 연락을 했다. 매사에 유난히 수줍어하고 곧잘 상기되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그녀가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골인'한 것이 의외였다면 실례이려나.

초목이 파랗게 초록빛을 뿜어내는 볕 좋은 오월 중순,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선양으로 향하는 기차에 한국인 네 명이 몸을 실었다. 우리 모두 그녀의 첫 외국인 제자다. 제일 싼 훠처 열차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파를 헤치며 역을 빠져나오니 예비신랑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하오지우부찌엔! 따지아라이더하오신쿠!(오랜만이야! 다들 오느라고 고생 많았어!)"

선생님은 호텔에 도착한 우리를 얼싸안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몇 년 만에 마주하니 아이 같던 순박함이 아닌, 처녀 같은 성숙함이 물씬 풍겼다. 짐을 풀자마자 식당을 예약했다며 재촉한다. 푸짐한 음식과 그녀의 가족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구들이 어린 시절의 그녀를 하나하나 추억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한 상 가득 잘 차려진 중국음식과 정겨운 대화로 결혼 전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꼭두새벽부터 부지런한 신랑 신부

 신부가 정성스레 남편의 빨간 허리끈을 매주고 있다. 신랑이 들어올 때 빤냥에게 주는 붉은 돈봉투. 1위엔부터 20위엔까지 여러 단위의 돈이 들어 있다.
신부가 정성스레 남편의 빨간 허리끈을 매주고 있다. 신랑이 들어올 때 빤냥에게 주는 붉은 돈봉투. 1위엔부터 20위엔까지 여러 단위의 돈이 들어 있다. ⓒ 김희선

결혼식은 아침 여섯 시 반부터 시작이다.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 할 시간이다. 아침부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선생님의 방으로 향했다. 제법 넓은 방이다. 사실 이 과정은 신부의 고향 집에서 해야 한다. 선생님의 집이 랴오닝성 외곽에 있어, 남편이 사는 도시인 선양에 호텔 방을 잡은 것이다.

중국 결혼식에는 빤냥(伴娘, 신부 들러리), 빤랑(伴郎, 신랑 들러리)이 있다. 보통 신랑 신부의 지인이 이 역할을 하는데, 내내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결혼식 진행을 보조한다. 신부의 방은 흡사 신부대기실과 같았다. 메이크업 전문가가 부산스레 신부에게 화장하고, 사진사가 연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리고 방 한편에 과일, 담배, 만두 등이 차려진 상이 있다. 가족과 친구들이 신부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사이 신랑이 나타났다.

"니능부능용위엔아이타?(평생 그녀를 사랑할 수 있어요?)"
"니능부능두어정디알?(돈 많이 벌어 올 수 있어요?)"
"니후이빵니더치즈깐훠마?(집안일 잘 도와줄 거예요?)"

빤냥 두 명이 서로 손을 마주 잡은 상태로 문을 막아서고 질문세례를 퍼붓는다. 신랑은 모든 질문에 호쾌히 대답하고 돈이 든 붉은 봉투 여러 개를 빤냥에게 건넨다. 통과시켜달란 뇌물이다. 신부는 침대에 다소곳이 앉아 그 모습에 연신 웃음보를 터트린다. 빤냥들은 마지못한 척 길을 열어 준다. 아주 비슷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함 들어오는 풍습이 생각났다.

 신부가 붉은 보자기에 싼 예단을 들고 있다. 주변 지인들은 폭죽을 터트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신부가 붉은 보자기에 싼 예단을 들고 있다. 주변 지인들은 폭죽을 터트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 김희선

관문을 통과한 신랑이 드디어 신부와 만났다. 부케를 바치며 가벼운 키스를 건넨다. 익숙지 않은 카메라 앞이라 그런지 영 어색한 입맞춤이다. 하지만 행복한 미소는 입가를 떠날 줄 모른다. 여기저기 플래시가 축복처럼 터진다.

서로의 팔목에 흰색과 붉은색의 실타래를 두르고, 허리에는 빨간 띠를 정성스레 맨다. 자리를 옮겨 잘 차려진 상으로 옮겨 빤냥, 빤랑과 함께 만두를 나누어 먹으면 이 곳의 일정은 끝이 난다. 이제 빨간 보자기에 싼 신부가 준비한 예물을 들고 신혼집에 갈 차례다.

호텔을 나오자 장식이 된 고급 외제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이날을 위해 빌린 차다. 곳곳에서 호화로운 분위기가 흐른다. 신랑 신부가 문을 나서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폭죽을 터트린다. 꽃가루가 그들을 에워싸며 하늘로 올라간다.

가장 중국다운 색은? 붉은색과 금색의 조합!

 신혼집 침실. 온통 붉은색이다.
신혼집 침실. 온통 붉은색이다. ⓒ 김희선

모든 사람이 외제차에 몸을 싣고 신혼집으로 이동했다. 집 앞에는 남자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 신부가 가져온 예물을 남자의 부모님께 건네면 다시 한 번 폭죽이 터진다. 이어 신혼집으로 들어선다. 현관문부터 화려한 빨간 색 장식물이 시선을 끈다.

신랑 신부는 침실에 자리를 잡는다. 침대에는 빨간색 침대보가 덮여있고, 머리맡에는 금색의 '쌍희 희'자가 새겨진 새빨간 종이 장식이 붙어있다. 이 글자는 '기쁠 희'자가 두 개 붙어있다. 기쁨이 두 배니 경사를 축하할 때 쓰기 안성맞춤이다. 집안 곳곳에서 '중국다움'이 물씬 흘러나왔다.

부부는 파와 팥밥, 면 등을 나눠 먹는데, 이는 자손을 빨리 보고 집안의 번창과 평안을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행위다. 결혼풍속은 지역뿐 아니라 심지어 집집마다 다를 수 있다. 대추나 땅콩, 사과를 먹는 곳도 있으니 말이다.

중국인의 숫자 8사랑, 재물 원한다면 8을 믿어라

 중국 웨딩홀 전경. 신랑신부와 양가 부모님이 무대에 나와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중국 웨딩홀 전경. 신랑신부와 양가 부모님이 무대에 나와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김희선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참석했던 결혼식이 생각난다. 전문 웨딩홀이 아닌 일반 음식점이어서 초라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꽃처럼 예뻤던 신부의 모습이 온 식장을 화사함으로 물들였다. 오늘처럼 전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처음 경험했던 중국 결혼식이었기에 유난히 기억에 많이 남았던 날이다.

이번 선생님의 결혼식은 다른 의미로 특별하다. 좋아했던 선생님의 결혼이기도 하지만 중국인의 결혼문화를 직접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혼집에서 기념사진을 남긴 후 피날레를 위해 결혼식장으로 이동했다. 여전히 교통수단은 타고 왔던 고급 외제 승용차다. 이제 결혼식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식장에서 진행과정은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다. 주례사는 없고 사회자가 결혼식을 이끌어 나간다. 피로연 형식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하객 대부분의 옷차림이 편하다는 것이다.  마치 다들 동네잔치를 즐기러 온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왠지 한국의 결혼식보다 가벼운 분위기다.

 결혼식이 시작하기 전 제공되는 간단한 주전부리와 시탕상자.
결혼식이 시작하기 전 제공되는 간단한 주전부리와 시탕상자. ⓒ 김희선

식장은 가운데를 가로질러 전면 무대까지 신랑 신부가 입장하는 길이 있고, 양옆으로 중국식 원형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마다 간단한 주전부리와 담배, 술은 물론이고 손님들에게 주는 시탕(喜糖)이라는 사탕, 초콜릿 따위가 담긴 작은 상자가 사람 수 만큼 놓여있다. 결혼식을 올릴 때 신랑 신부가 하객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시탕상자는 예쁘고 아기자기하다. 그래서 항상 결혼식에서 다 먹은 상자를 챙겨 액세서리 보관용으로 사용하곤 했다.

무대 옆에 설치된 스크린에선 결혼 화보가 상영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주인공들이 입장한다. 아버지가 딸을 새신랑에게 손을 넘겨주는 장면은 언제나 뭉클하다. 양가 부모님과 신랑 신부가 무대에 서면 사회자가 여러 이벤트를 진행한다. 부모님의 축사로 시작해서 샴페인 폭포로 끝을 맺었다.

식이 끝나면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진다. 옷을 갈아입은 부부가 한 테이블씩 돌며 인사를 하는데 이때 축의금을 전해줬다. 금액은 보통 자신의 경제 상황에 맞춘다. 딱히 제한은 없으나 최소 100위안(1만8000원) 이상은 건네야 예의라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을 제외하면 실제 100위안만 부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액수가 올라간다.

중국에서 8은 재물을 모은다는 뜻의 파차이(发财)와 발음이 비슷해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숫자다. 아침 8시 8분에 맞춰 결혼식을 시작하고 심지어 축의금까지 숫자 8에 맞추는 경우도 있다. 부끄럽지만 우리는 학생이라 많은 액수를 하지 못했다. 대신 노래를 결혼식 선물로 바쳤다. 많은 사람이 한국인의 합창에 즐거워했으니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추억을 선물했다고 위안 삼았다. 선생님에겐 약간 미안하지만 말이다. 그녀의 결혼생활이 늘 행복하기를 바란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중국#중국유학#중국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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