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제는 말 할 수 있을까? 무덤까지 가져가자 굳게 맹세했던 어린 날의 비밀 하나. 이제 공소시효도 한참 지났으니 봉인을 풀어 볼까 한다.

1980년대 초, 그 시절 우리 대부분은 가난했다. 낡은 축구공 하나로 종일 운동장을 뛰어다녔고, 그러다 허기가 지면 수돗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단돈 오십 원이면 손가락 한마디만 한 소시지가 들어 있는 핫도그를 살 수 있던 그 시절, 풍요와는 거리가 멀었던 어린 좀도둑들의 이야기다.

어린 좀도둑들의 이야기

국민학교 3학년쯤이지 싶다. 그리 멀지 않은 외갓집에는 또래의 외사촌들이 살고 있었다. 주말이면 외갓집으로 놀러 가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고, 그곳에서 우리는 우물물을 길러 등물을 하고, 밤이면 외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잠에 들곤 했다. 온종일 산과 들을 헤매며 먹거리를 찾고, 팔베개를 하고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그런 수채화 같은 이야기... 였으면 참 좋으련만, 아쉽게도 어두운 흑백 사진 같은 이야기임을 미리 양해 구한다.

어머니께서는 외갓집에 갈 때마다 큰아들인 내게만 천원을 쥐어주셨다. 사촌들과 간식거리를 사 먹으며 사이좋게 지내리란 믿음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돈은 군것질과는 상관 없이 고스란히 '형제오락실(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 이름이 또렷하게 기억난다)'의 칠 형제 쯤 대수롭지 않게 길러 냈을 법한 강렬한 인상의 주인아주머니에게로 들어갔다.

우리를 유혹했던 게임, 보글보글
 우리를 유혹했던 게임, 보글보글
ⓒ freeimages

관련사진보기

그 당시 '보글보글'이라는 혁명적 게임에 눈을 뜨게 해준 건, 세 살 많은 사촌형이었다. 악당들 사이를 누비며, 연신 방울을 뿜어대는 사촌형의 옆모습은 집중과 몰입의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노랑, 파랑, 보라색의 사탕이라도 먹는 날이면, 사촌형은 전설 속의 용 한 마리가 되어 거침없이 화면 위를 누볐다.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워 나를 비롯한 동생들 둘은 너나 없이 '보글보글'에 빠져들고 말았다.

오십 원에 2인용이었던 그 게임은, 도대체가 싫증이나 지겨움 따위 느낄 틈을 주지 않았고, 그 중독성에 비해 천원이라는 자금은 애초부터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오락실의 시계는 국방부의 그것과는 태엽의 성분부터 달랐다. 총알처럼 두 시간이 지나면 허탈함과 상실감을 씹으며 오락실 문을 나서야 했다. 매섭다 못해 표독스런 얼굴을 가진 아주머니에게 개평이나 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제 다시는 오지 말자며 오락실 문을 세차게 닫고 나왔다. 패잔병의 발걸음으로 외갓집 쪽으로 걸어가던 그 때, 길가에 잠시 주차해 놓은 그 세발 자전거를 우리는 그냥 지나쳤어야 했다. 하지만, 게임 속 악당들에게 갇힌 아이들을 구출해야한다는 의무감이 세발자전거를 훔쳐서는 안 된다는 도덕과 정의감을 앞지르고 말았다. 그렇게 4인조 강도의 좀도둑질은 시작되었다.

평상 시 빈 병이나 버려진 고철 따위를 주워 고물상에 팔아서 뻥튀기로 바꿔먹던 경험이 있던 터라, 우리는 한눈에 그 세발 자전거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떼강도에게 필수인 팀워크는 이미 튼튼히 다져진 터였다. 우리는 흩어져 망볼 사람과 자전거를 들고 뛸 행동대장을 순식간에 지정하고, 독립군보다 비장한 표정으로 거사에 들어갔다.

정신없이 달렸던 기억, 쥔 주먹에 배었던 땀의 촉감,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듯한 환청, 뒤쫓는 이가 없음을 확인했을 때의 안도감, 이 모든 것들은 어렴풋한 기억들로만 남는다. 오히려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것들은 거사에 성공하고 난 후의 후미진 골목에서 어린 녀석들이 나눈 대화들이다.

치밀한 전략부터 지분 정리까지

단골 고물상에 가져가면 훔친 물건인 줄 알아차리고 신고 할지 모르니, 다른 고물상을 찾아가자는 치밀한 전략부터, 세발 자전거의 중고 시세가 대략 천원 쯤 될 터이니, 그 돈을 다 오락실에서 쓰지 말고, 목도 마른데 냉차 한 잔 사 먹자는 현실적인 문제 제기를 거쳐, 받은 돈은 정확히 4등분을 해야 한다는 지분 정리 문제까지 제법 심각한 대화들이 오갔다.

물론, 동을 하나 넘어 발견한 고물상에서 그러한 우리의 대화는 부질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첫눈에 장물임을 알아 본 이웃 동네 고물상 주인은 굉장히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고물 값 이백 원과 뻥튀기 한 봉지를 제안했고, 그러한 협상에 익숙하지 못했던 사촌형은 덜컥 미끼를 물었던 것이다.

그렇게 훔친 세발자전거를 판돈 이백 원을 정확히 오십 원씩 나누어 '보글보글'에 바치고 나서 한동안 좀도둑들의 행보는 주춤했다. 왠지 주인이 우리를 알아볼 것 같아 자전거가 놓여 있던 그 골목은 빙 둘러다녔고, 대문이 갑자기 열리며 경찰이 들이닥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나쁜 습관은 자기 절제가 어려운 법, 우리는 새로운 한 탕을 위해 다시 뭉쳤다.

결국 잡혔다.
 결국 잡혔다.
ⓒ freeimages

관련사진보기


우리 집에 놀러온 사촌들과 단골 문방구에 갔다가 외부에 진열되어 경비가 소홀한 조립식(프라모델)을 발견한 것이다. 늘 문방구 안에서 TV를 보며 졸고 있던 사람 좋은 문방구 아저씨가 여러 각도에 거울을 설치해서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 많던 조립식이 모두 우리 것인 양 기세등등하게 하나씩 집어 들고는 옆 골목으로 내달렸다.

얼마쯤 달리다가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멈춰 섰다. 조립식이 도난당한 것도 모르고 졸고 있을 아저씨를 비웃으며 전리품들을 비교하고 신나게 웃고 있던 그때, 누군가 뒷덜미를 확 잡아채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이 생쥐 같은 도둑놈들아!" 우리는 절도 3분 만에 범죄 현장에서 겨우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문방구 아저씨에게 검거되었다.

그 뒤의 기억들은 조각조각 이어진다. 몇 시간 동안 문방구 앞에 무릎 꿇고 손들고 벌서던 기억, 저금통을 털어 부족하나마 조립식의 비용을 치르고 알밤 몇 대 맞고서 눈물을 글썽 거리던 기억, 텅 빈 저금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락방에 숨겨두고는 시치미 떼던 기억들이 스쳐 간다.

다만 한 가지, 여전히 또렷이 남아 그 후로 절도에서 깨끗이 손을 씻게 한 그 무엇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문방구 아저씨의 실망스런 표정이었다. 사실, 그 문방구는 외상도 가끔 받아줄 정도로 오래 알고 지낸 문방구였다. 엄마 손 잡고 학교 준비물을 사러가던 단골 문방구 아저씨의 슬픈 듯 공허한 눈빛은 어린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죄의식의 촉수를 헤집기 충분한 것이었다.

최근 들어 근처에 갈 일이 있어 문방구가 있던 곳에 가보았다. 지금은 사라진 '태양문방구'의 아저씨는 지금쯤 칠순을 훨씬 넘긴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생사 여부조차 알 길이 없지만, 잘못된 일을 저질렀을 때, 그가 보여준 절망의 눈빛은 지금껏 나를 타락에서 구출해준 힘이 되었다. 4인조 떼강도의 멤버들은 이제 훌쩍 중년을 넘겨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가 되었다. 가난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한다던데, 적당한 탈선의 경험이 아이들을 착하게 길들이는 건 아닐까?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보글보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