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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여전히 알 지 못하는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큰애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울러 제 마음을 큰애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기자말

4주 방학, 무슨 수를 써서라도 큰애를 귀국시켜야 했다

1학기를 무사히 마친 안도감이 채 식기도 전에 큰애에게 두 번째 위기가 찾아 왔다. '남들 다 가는 학교, 겨우 1학기 마친 것 가지고 뭘 그러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자식을 키워 본 부모라면 내 입장을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 부모는 자식이 생각보다 조금만 더 잘하면 바로 감격하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당초 큰애는 1학기와 2학기 사이의 방학이 일주인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방학은 4주였다. 명색이 그래도 방학인데 그 기간이 일주일에 불과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봤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1학기를 무사히 마친 큰애에 대해 약간 방심했었던 것 같다. 방학 기간이 4주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귀국시켜야 했는데 말이다.

 ? 그림에서 멜버른 왕복 비행기표 최저가는 83만원 정도인데 지금 바로 예약하려면 120만원이 필요하다.
▲ 내가 주로 이용하는 국제선 예약 사이트 ? 그림에서 멜버른 왕복 비행기표 최저가는 83만원 정도인데 지금 바로 예약하려면 120만원이 필요하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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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 비행기는 타이밍을 잘 잡을 때와 급하게 티켓을 구할 때의 가격 차이가 제법 있다. 그러나 내가 큰애의 두 번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치른 비용에 비하면 적은 돈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적은 돈을 아끼다가 문제가 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지금 비행기 티켓을 끊으면 너무 비싸다고 큰애가 이야기했을 때, 그래서 겨울방학 때 한국에 가겠다고 이야기 했을 때, 나는 적은 비용을 아끼는 실수를 범했다. 방심한 상태에서 그러라고 한 것이다.

스티브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에서 두 번째가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서 가라'는 것이다. 여행 중에 지친 몸에 기력을 충전하고,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도 가지고, 무엇보다 다른 여행자들과 교류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큰애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벌써 3년이 지났다. 한국에 돌아와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했던 것이다. 할머님을 비롯한 친지들도 만나고, 엄마가 해주는 음식도 먹고, 그랬어야 했는데, 적은 돈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안이한 판단을 한 것이다. 큰애는 아직까지 스스로 뭘 찾아서 하는 수준이 아니다.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며 보낸 여름 방학 4주 동안 큰애의 몸 상태는 극도로 악화됐다.

외국인 학생들의 의료보험, 납부액에 따라 달라지는 레벨

아토피를 극복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음식'과 '체력'이라고 들었다. 음식 측면에서는 패스트푸드가 최악인데, 밥 해먹기 귀찮으니까 대충 햄버거 같은 것으로 식사를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체력 측면에서 보면 패스트푸드로 비대해진 몸으로, 게임을 평소보다 많이 하면서 별로 움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같다. 학교에도 가지 않으니까 그나마 하던 기본적인 활동도 중단된 것이다.

-검은 딱지가 눈, 입술 주변에 붙어 있고, 진물이 흘러 내리던 참혹한 얼굴 사진은 차마 공개하지 못하겠다.
▲ 아토피로 붉게 변한 팔목 -검은 딱지가 눈, 입술 주변에 붙어 있고, 진물이 흘러 내리던 참혹한 얼굴 사진은 차마 공개하지 못하겠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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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점이 2학기 개학 첫날이었다. 아토피가 급격하게 심해졌고, 체력 저하로 인해 얼굴 피부에 바이러스까지 침투했다. 큰애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을 보니 얼굴에 검은 딱지가 잔뜩 붙어 있어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외출도 곤란할 지경이었다. 병원에 다녀서 조금 나아졌다고 하는데도 도저히 눈 뜨고 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어떻게 이 상태가 될 때까지 참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병원비도 문제였다. 호주의 의료보험 체계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큰애가 학생 의료보험에 가입했을 때, 그 비용이 생각보다 싼 것을 두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호주에 유학한 외국학생들의 의료보험의 보장수준은 납부액에 따라 레벨이 달라지는데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젊기 때문에 병원에 갈 일이 별로 없어서 최소한의 의료보험에 가입한다. 우리로 치면 가정의학과에 해당하는 GP(General Practitioner)에서 감기약을 받는데 필요한 비용을 보조해주는 수준이다. 아토피가 심한 큰애는 비용을 더 내더라도 피부계통의 보다 수준 높은 진료가 가능한 의료보험을 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런 보험이 있다는 것을 일이 벌어진 다음에 알았다.

GP에서의 진료비는 워킹 홀리데이 학생과 같이 의료보험이 아예 없는 경우에는 우리 돈으로 5만 원 정도가 들고, 큰애의 학생보험으로는 1만5000원 정도가 든다. 우리의 피부과와 같이, 전문의가 있는 2차 병원의 진료비는 20만 원 정도로 껑충 뛴다. 여기에 주사나 약을 추가하면 비용은 40만 원 정도까지 올라간다.

비용보다 더 난감한 것이 환자를 치료하는 프로세스다. 한국에서는 큰애와 같이 상태가 심한 환자는 주사를 놓아주는 등 바로 강한 처치로 들어가는데 호주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치료는 낮은 수단에서 점차적으로 그 수위가 높아진다. 몸에 부담이 적은 약을 먼저 먹고 경과를 지켜 보다가 그래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으면 호르몬제를 처방하거나 주사를 놓아주는 게다.

큰애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상태에서 병원에 갔는데, 일단 약을 먹으면서 2~3일 경과를 보자는 의사의 말에 속된 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피부과에 다닐 때 주사를 맞고, 호르몬제를 먹어서 바로 좋아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큰애는 여기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응급실도 진료비가 비싸지만 호주에 비하면 속된 말로 ‘새발의 피’ 수준이다.
▲ 로열 멜버른 병원 -큰애는 여기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응급실도 진료비가 비싸지만 호주에 비하면 속된 말로 ‘새발의 피’ 수준이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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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큰애는 도저히 못 견디고 대형병원의 응급실을 찾았다. 여기에서 링거 등 응급처방을 받고 겨우 견딜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한다. 응급실은 접수하는 데에만 40만 원 정도가 들고, 응급실에서 보낸 시간은 네 시간까지는 120만 원, 24시간 있으면 450만 원 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큰애는 여기에서 150만 원을 썼다.

잽싸게 링거 한 대 맞고, 기본적인 처치 후 응급실을 나왔기 때문에 그나마 비용이 적게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의사의 권유에 따라 그 병원에 이틀간 입원을 했는데 비용은 하루에 100만 원 정도 들었다. 입원 후 기력을 차린 후에는 아토피 후유증 치료를 위해 안과에도 갔는데, 한 번 갈 때 마다 40만 원 정도 들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의료비이다.

아내의 호주행에 동의했다

과도한 병원비를 걱정한 큰애는 휴학을 하겠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치료를 받고 가겠다는 게다. 이는 병원비보다 더 큰 문제다. 큰애 나이도 문제고, 휴학 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바로 후퇴하는 모습이 나는 싫었다.

일단 내가 우겨서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휴학하지 않고 치료와 공부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됐다. 학교에는 2주일 쉬고 다시 가는 것으로 양해를 받았다.

사람이 습관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렵다. 습관은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기 어려운 것은, 금단 증상도 문제이지만, 흡연이 일상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일 터. 일을 하다가 쉴 때, 또는 뭔가 잘 안 풀릴 때 한숨 돌리는 시간을 늘 담배와 같이 했기 때문에 끊기 어렵다.

아토피에도 생활 습관이 녹아 있다고 한다. 아토피는 약을 먹는 것보다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보다 지속 가능한 치료수단이다. 지금 큰애는 아토피가 얼마나 심한 상태를 만들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나는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충격이 사라지기 전에 큰애의 생활습관을 바꿔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려운 결심을 했다. 큰애의 변화를 도와주기 위해, 다시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아내의 호주행에 동의했다.

그러나 우리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비행기표를 구매하고, 멜버른에 방도 알아 보고 했지만 모두 헛수고가 됐다. 이미 정신적으로도 한계 상황에 이른 큰애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기 때문이다. 내 기대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계속 학교에 다니려고 했지만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몰아 붙이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학교를 자퇴하고 귀국하는 큰애의 비행기표값을 송금했다.


태그:#호주, #멜버른, #쉐프,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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