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녹동서원 전경. 역시 서원은 흑백사진으로 볼 때 가장 서원답다.
 녹동서원 전경. 역시 서원은 흑백사진으로 볼 때 가장 서원답다.
ⓒ 추연창

관련사진보기


녹동(鹿洞)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길 218, 구주소로는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友鹿里) 585번지에 있다. 우록리는 사슴(鹿)을 벗(友)하며 사는 마을(里)이라는 뜻이고, 녹동서원은 우록동에 있는 서원이라는 의미이다.

우록마을 사람들은 평상시에 사슴과 함께 살고 있을까? 물론 우록리라는 이름은 문학적 표현이다. 실제로 사슴과 어울려 산다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자연친화적인 산촌이라는 뜻이다. 사람과 사슴이 한데 어울려 벗처럼 생활하고 있어도 전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는 마을, 우록리는 그런 산촌이다.

이 마을이 우록리라는 이름을 얻은 데에는 만만하지 않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일본군 선봉장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가 곧장 조선에 귀화하여 큰 무공을 세우는 김충선이 거주하기 전까지는 마을 이름이 우륵리(牛勒里)였다. 마을 지형이 소(牛) 굴레(勒)를 닮았다고 하여 그렇게 불렸다. 그런데 김충선이 "사슴과 더불어 살 만한 마을"이라며 우륵리라는 새 이름을 붙였고, 그것이 그 후 정착되었다.

김충선이 붙인 마을 이름 '우록리'

한일우호관의 김충선 초상
 한일우호관의 김충선 초상
ⓒ 추연창

관련사진보기

우록리 일원에는 사슴 이야기 전설도 남아 있다. 우록마을 뒤편 최정산 중턱의 남지장사 앞길에 흰 사슴이 나타났다는 설화이다. 때는 사명대사가 이 절에서 승려들을 군사 훈련을 시켰던 임진왜란 7년전쟁 중으로, 하루는 대사가 승병들과 함께 무예를 수련하느라 여념이 없는 중에 하얀(白) 사슴(鹿)이 나타났다. 그 이후 우록리에서 남지장사 사이에 있는 동네에는 백록(白鹿)마을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하얀 사슴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김충선이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1600년,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였다. 그 이전까지 김충선은 전쟁터에서 살았다. 녹동서원 옆에 설립되어 있는 '한일 우호관'의 게시물을 보면 김충선은 경주, 울산 등지의 전투에 참가하여 왜군을 물리치는 데 특출한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특히 조총 제작 기술과 사용법을 조선에 전수했다. 그는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에도 일급 장수로 활약했다. 이렇게 두루 무공을 세운 그를 사람들은 왜란, 이괄의 난, 호란에 모두 공을 세운 공신이라는 뜻에서 "삼란공신(三亂功臣)"이라 불렀다.

"삼란공신" 칭호를 얻은 김충선

도원수 권율 등이 김충선, 아니 당시까지는 사야가(沙也加)였던 그에게 큰 상을 주어야 한다고 선조에게 주청했다. 선조는 사야가가 조선군 장수로 큰 공을 세운 것은 "바다를 건너온 모래(沙)를 걸러 금(金)을 얻은 격"이라면서 '김해 김(金)씨'를 성으로 삼고, 충성스럽고 착한 인물이니 이름은 '충선(忠善)'으로 하라고 분부했다.

그 이후 김충선의 후손들은 임금으로부터 받은(賜) 김씨 성(姓)이라 하여 스스로를 "사성김씨(賜姓金氏)"라 부르고 있다. 김충선은 임금으로부터 높은 벼슬과 성씨, 이름을 받은 감동을 "자헌계(姿憲階) 사성명(賜姓名)이 일시에 특강(特降)하니 / 어와 성은(聖恩)니야 깁기도 망극다. / 이 몸 가리된들 이 은혜 갑플소냐!" 하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자헌대부라는 높은 품계와 성명을 한꺼번에 특별히 하사하시니 / 아, 임금의 은혜는 깊고도 끝이 없도다. / 이 몸이 가루가 되도록 애쓴들 어찌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으랴! " 라는 뜻이다.

김충선의 시조는 문학 작품으로서의 수준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자신의 감동만은 잘 나타내고 있다. 김수로왕과 김유신으로 대표되는 오랜 전통의 명문 거족인 김해김씨의 성을 쓰게 하고, 높은 벼슬까지 주었으니 사야가로서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을 터이다.

녹동서원 강당
 녹동서원 강당
ⓒ 추연창

관련사진보기


특히 김충선이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우는 장면은 선조와 광해군, 그리고 조선의 고관들이 그를 특별히 좋아한 까닭을 짐작하게 해준다. 1623년(광해 15) 인조반정이 일어난다. 그 이듬해인 1624년(인조 1) 공신 중의 한 명인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킨다. 논공행상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외아들 전(栴)이 모반 누명을 덮어쓰는 상황이 벌어졌던 까닭이다.

이괄은 임진왜란 때 전투 경험이 있는 항왜 출신들을 선동하여 자기 세력으로 삼았다. 일본 본토에서 통일 전쟁을 치른 경력을 가진 항왜들은 본래 왜군이었는데 귀화하여 조선 군인이 되었으므로 전투에 능했다. 이괄의 공세를 감당하지 못한 인조는 멀리 충청도 공주까지 도망가는 궁지에 몰렸다. 이때 54세의 노장 김충선이 이괄의 부장(副將)인 항왜 서아지(徐牙之)를 김해에서 참수하는 큰 공을 세웠다.

54세 노장 김충선, 이괄의 반란 제압에 큰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에도 김충선은 큰 공을 세운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김충선은 자원하여 싸움터로 출전한다. 뿐만 아니라 김충선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도 66세나 되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명령이 없었는데도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한성으로 출발한다. 그는 경기도 광주 쌍령(雙嶺)에서 청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둔다. 인조는 "김충선의 자손에게 대대로 벼슬을 주고 조세와 부역을 면제해주라!"고 지시했다.

사당
 사당
ⓒ 추연창

관련사진보기


선비들도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영조(1724∼1776) 말기에 이르러 선비들은 김충선을 기리는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주청했다. 1789년(정조 13)에도 선비들은 서원 건립을 또 다시 청원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1794년(정조 18) 우록동에 녹동서원이 건립되었다.

물론 녹동서원도 1864년(고종 1) 대원군의 전국 서원 훼철 때 화를 당한다. 하지만 1885년(고종 22) 영남 유림과 문중의 합심에 힘입어 재건된다. 원래 일본인인데도 조선의 서원에 제향되고 있는 인물, 그가 김충선인 것이다.

녹동서원 정문의 이름이 향양문(向陽門)이다. 조선의 장수가 되어 큰 공을 세우고, 높은 벼쓸까지 한 김충선이지만 그래도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향양문이라는 이름은 그의 향수를 나타내고 있는 듯 여겨진다.

한일우호관의 전신격인 충절관
 한일우호관의 전신격인 충절관
ⓒ 추연창

관련사진보기


2012년 5월, 녹동서원 옆에 '달성 한일 우호관'(아래 우호관)이 건립되었다. 우호관은 '우호'는 김충선의 평화 정신을 되살려 한일 두 나라 사이의 우호를 더욱 돈독히 하자는 뜻이다. 우호관에 들어가면 김충선이 쓴 '남풍유감', '술회가' 등의 시를 볼 수 있다. 그외 각종 해설문, 유품 등 볼거리들도 즐비하다.

우호관 내부에는 김충선이 조선에 귀화한 까닭을 말해주는 게시물들도 상당수 걸려 있다. 서원을 찾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특별히 궁금해하는 부분인 까닭이다. 게시물들을 요약하면 김충선은 '문화국 조선에서 살고 싶은 염원, 자식들을 예의 나라에서 예를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한 교육정신, 일본의 조선 침략에 아무 명분이 없다고 생각한 평화주의 사상' 때문에 일본군 선봉장이라는 직책을 버리고 스스로 조선의 장수가 되었다.

남지장사 뒤의 솔숲
 남지장사 뒤의 솔숲
ⓒ 추연창

관련사진보기


녹동서원 일원을 찾았을 때에는 우호관부터 관람하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는 기념관이자 박물관 역할을 해주는 곳이 바로 우호관이다. 우호관에서 김충선과 녹동서원에 대한 배경지식을 습득한 후 이윽고 서원의 강당 등 유적들을 둘러본다. 문화해설사도 근무 중이므로 우호관 안팎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요청할 수도 있다.

서원의 강당은 한일우호관 바로 옆에 있다. 강당과 우호관 사이에 신도비와 사당(녹동사)이 있다. 강당을 지나면 충절관이라는 현대식 건물도 있는데, 이는 대략 우호관의 전신이라 할 만하다. 우호관과 사당 사이로 난 산책로에 올라 300미터 산길을 걸으면 김충선 장군 묘소도 참배할 수 있다.

녹동서원 일원을 두루 둘러본 다음에는 남지장사로 올라간다. 남지장사라는 사찰명은 어디엔가 북지장사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실제로 팔공산에 가면 북지장사가 있다. 아무튼 나는 요즘 같이 무더운 날, 녹동서원을 거쳐 남지장사로 가는 일을 즐긴다. 남지장사 뒤편의 솔숲이 아주 좋다. 시원한 솔바람을 맞으며, 나는 하얀 사슴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태그:#김충선, #사야가, #녹동서원, #남장사, #사명대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