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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강연 중인 이마붑 씨
 8월 21일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강연 중인 이마붑 씨
ⓒ 송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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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7년째 매일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질문을 받고 있어요. 국적도 취득했고 17년째 방글라데시라고 말하는 것이 질려서 '저는 한국인이에요'라고 말했더니 한국 사람처럼 안 생겼대요. 그래서 아예 미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미국 사람처럼도 안 생겼대요. 미국 사람처럼 생긴 건 어떻게 생긴 거죠?"

12개 나라에서 온 40여 명의 이주민은 그의 말을 이해하고 있을까? 2016년 8월 21일 현재 한국에 거주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그들은 한국어라는 낯선 언어로 강연을 듣고 있다. 지난 21일 마이크를 잡은 이마붑씨(M&M인터내셔널 대표)나 40여 명의 이주민 모두 이날 처음 만났지만, 한국생활의 고충을 공감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주한 그들은 철저히 소극적이고 위축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김포시 외국인 주민 지원센터(소장 최영일)의 '외국인주민 리더십 양성 아카데미'에 참여했다.

1999년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와 2000년 전후 이주노동자 투쟁을 거쳐 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지금은 영화배급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마붑씨의 이야기는 그래서 외국인주민들에게 큰 울림이 될 수밖에 없다.

"저는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어요. 지금의 고용허가제는 이주민을 '근로자'로 인정하지만 산업연수생은 '학생'이었어요. 학생을 데려다 일은 엄청나게 많이 시켰고 월급은 내국인보다 훨씬 적게 줬어요. 잘못된 것을 바꿔야 하는데 누가 바꿀 수 있나요? 아무리 얘기해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이주노동자들과 같이 명동성당 농성 등 투쟁에 나섰고 한국 사회 공부를 시작했죠."

2000년을 전후로 한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동3권 확보 투쟁은 고용허가제 실시를 전후로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의 손에서 시작된 '이주노동자 콘텐츠'

피켓을 들고 길거리에 나섰던 이마붑씨는 MWTV(이주노동자TV) 개국과 이주노동자영화제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언론이 잘 보도해주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주민'이라는 취지의 기사만 나왔지요. 그래서 아예 우리가 방송국을 만들기로 했어요. RTV시민방송의 도움을 받아 6개 나라 언어로 MWTV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속이 시원했어요. 하고 싶은 말 다 했으니까..."

하지만 MWTV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로 눈을 돌렸다. 딱딱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영화로 만들면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6년에 시작된 이주노동자영화제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주민들이 10년 만에 10배로 늘어나 200만 명이 됐어요. 10년 뒤에 다시 10배가 늘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이주민들이 있을 테고 잘못된 것을 바꾸기 위해 이주민 스스로 노력해야 해요. 물론 우리가 하면 다양한 지적과 비난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가 무엇을 하던 그들은 우리를 비난할 거예요."

실제로 2009년에 '반두비'라는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마붑씨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주목을 받자 봉변을 당했다.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 프랑스 낭뜨3대륙영화제 등 다양한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자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외국인 주제에 한국에서 영화 찍고 시끄럽게 살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전화가 6개월 동안 이어졌다.

"이런 전화를 받으면 저도 일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영화를 더 만들어서 한국 사람들에게 질문하자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는 다국적 뮤지컬단을 만들었다가 문을 닫은 그는 콘텐츠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우리끼리만 좋으면 얼마 못가니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그는 영화를 수입·배급하고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이주민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주민을 위한 일이 바로 한국인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이주민이 200만 명을 넘어 섰는데 이주민과 한국인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한국에 큰 손해가 될 거예요. 이주민이 잘살아야 한국인도 잘살 수 있어요."

"조금씩 좋아지고 있지만... 사회 변화 노력은 필요하다"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의 외국인 주민 리더십 양성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듣는 이주민들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의 외국인 주민 리더십 양성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듣는 이주민들
ⓒ 송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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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에서는 이주민들이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상담일을 하는 몽골 출신 이주여성의 질문은 한국 이주노동자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담고 있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한국 사장님들이 너무 한다고 생각될 때도 있고 이주민들이 너무 한다고 생각될 때도 있어요. 마음이 좋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돼요?"

이에 대해 이마붑씨는 사회변화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과거에 길거리에서 투쟁할 때 이주민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사회 변화도 이뤄지지 않는 것을 보고 한국 사회가 싫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산업연수제가 고용허가제가 됐고 이주노동자 노조를 허용하는 법원 판결도 나왔어요.

아직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점차 좋아지고 있어요. 이제 우리 이주민들은 무조건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스스로 똑똑해지고 스스로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렇게 열심히 자조모임 등을 하면서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해나갑시다."

또 다른 이주민은 '음악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질문했고 이마붑씨는 스튜디오에서 비싼 돈 내고 녹음하는 방법 외에도 자신의 재능을 유튜브 등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고 답했다.

어떤 이들은 이주민이 한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보편타당한 사회는 내국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에 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옳고 바른 사회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날 강연은 한국에 거주하는 주류 이주민들이 기자를 포함한 비주류 내국인에게 드러낸 신선하고 따끔한(?) 충고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 #이마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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