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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리 씨가 제작한 배너들
 수잔 리 씨가 제작한 배너들
ⓒ 박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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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 4월 16일은 모두가 아팠다. / 사람이기에 울었다. / 그 아픔, 그 눈물 / 그 절규를 잊지 않기에 / 사람이다. / 사람은 잊지 않는다. / 사람이기에 잊지 않는다. / 지우려는 자 / 기억하는 자는 / 지우려는 자마저 기억한다. (박찬희의 시 '기억'의 전문)

세월호 참사 1000일이 지나간다. 박근혜 정부가 1000일 동안 한 일이라고는 은폐와 왜곡뿐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날 박근혜 씨는 전원구조 보고를 받고 안심하여 한가롭게 출근도 하지 않고 관저에 있었다고 말했다.

참, 그가 한 일은 한 가지 있다. 올림머리! 근무시간에 청와대 본관으로 출근도 하지 않고 올림머리나 하는 것도 공무담임권에 포함되는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아는 한 '사람'이라면 누군가 물에 빠졌으면 제 머리카락 가지런히 하는 것 따위는 생각할 겨를 없이 어떤 방법으로든 구조에 나선다. 더욱이 대통령에게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장하고 수호할 의무가 있다.

정부와 대통령이 제 몸치장하고 구조하지 않은 직무유기를 은폐하는 동안 국민은 진실을 규명하라고 외쳐왔다. 그렇게 1000일을. 이런 국민의 소리는 재외국민들에게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인인 호주의 Susan Lee(아래 수잔)씨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수잔 씨는 21년 전에 호주 시드니에 이민을 가서 정착했다. 21년의 이민 생활에서 가장 큰 아픔이 세월호 참사였다. 지난 2014년 9월 9일 자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기사(관련 기사 : "코리아 거버먼트는 왜 자기나라 애들 안 구해?")를 보면 그녀의 심정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남편과 손을 붙잡고 울었다. 딸과 같은 나잇대 아이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바닷속에 있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저며왔다."

호주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는 수잔 리 씨
 호주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는 수잔 리 씨
ⓒ 박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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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호주의 방송을 통해 한국 방송보도를 접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울면서 텔레비전을 보라며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했다. 수잔 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TV를 켜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하니까 '한국에서 자기네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배를 타고 어딘가로 가다가 배가 바다에 빠졌는데 나오지 못한다'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며칠 동안이나 계속된 호주방송의 관련 보도를 지켜보면서 딸들과 함께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가만있을 수 없다는 생각,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수를 통해 호주 현지인들과 이민사회에 알리는 일이었다.

"호주에서 세월호 활동을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아이들과 함께 손바느질 배너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희생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손바느질 배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수잔 씨는 생업과 손바느질을 병행했다. 어떤 날은 밤을 꼬박 새우며, 어떤 날은 이사를 한 날 밤에도 잔뜩 쌓아둔 짐들 옆에서 천을 오려 바느질하고, 단추 등으로 형체를 그리고, 글자를 수 놓으며 미수습자 아홉의 귀환을 위해 기도했다. 진상 규명의 염원을 자수에 담았다.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에 보낼 위로를 담았다. 수잔씨는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아 배너를 만들며, "나 자신 스스로가 치유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나도 아이의 엄마라서 엄마이기에...."

수잔 씨가 현재까지 만들어서 호주, 광화문, 런던 등지에 보낸 배너는 큰 작품만 해도 여덟 점이다. 대표적 배너 여덟 점을 소개하여 참사 1000일을 생각해 본다.

수잔 씨가 딸들과 함께 만든 첫 배너
 수잔 씨가 딸들과 함께 만든 첫 배너
ⓒ 박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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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씨가 첫 번째 배너를 완성한 것은 2014년 7월이었다. 딸들과 함께 만든 이 배너에는 침몰하는 세월호를 수놓았고, '잊지 마세요 4월 16일'이라고 새겼다.

이 배너는 호주의 지인들과 함께 했던 참사진상규명 요구집회에서 사용되었다. 

두번째 배너
 두번째 배너
ⓒ 박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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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제작을 시작하여 그해 7월에 배너를 만든 후 그 해가 다하기까지 힘든 마음으로 지냈다. 그리고 두 번째 배너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5년 작,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위하여"가 바로 그것이다.

이 배너는 호주에서의 서명운동 부스에 설치되었다가 광화문 세월호 광장으로 보내져서 사용되었다.

배너에는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가라앉은 세월호에서부터 진실의 단초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형상화했다.

세번째 배너
 세번째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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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세 번째 작업을 시작했다. 세 번째 배너는 하늘에 떠올라 별이 된 아이들, 가라앉은 세월호를 두 손으로 치켜 올리는 미수습자 아홉을 형상화했다.

이 배너는 광화문 광장의 노란리본공작소 옆에 1년 정도 게시되었다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는 영국의 한인 단체에 전달했다.

네번째 배너
 네번째 배너
ⓒ 박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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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잔 씨의 배너 작업은 계속되었다. 작업은 3월에 마무리되었다. 수잔 씨는 미수습자 아홉 명을 생각하며 단추와 실로 네 번째 배너를 제작했다.

"아이들아. 우리는 너희를 잊지 않아" 이 배너는 만발한 꽃길을 자유롭게 거니는 미수습자 아홉을 형상화했다.

이 배너는 호주에서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집회에서 사용되었고, 참사 2주기에 맞춰 시카고 세사모로 전달되었다.

다섯번째 배너
 다섯번째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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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씨는 2016년에도 배너를 지속적으로 제작했다. 그중 다섯 번째 배너는 세월호 참사 2주기에 맞춰 만든 것으로 미국 필라델피아로 전달되었다.

배너에는 봄의 꽃들과 새들 그리고 가방을 메고 그 길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형상화하고 이렇게 썼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참사의 진상규명과 미수습 아이들의 귀환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이 배너를 보면 아이들이 곧 돌아와 문을 박차고 "엄마 다녀왔습니다"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섯번째 배너
 여섯번째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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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수잔 씨가 제작한 배너 중 또 하나.

하늘에 별이 되어 떠 있는 희생자들, 그 날, 4월 16일을 기억하며 만들었다.

초록 바탕의 노란 리본이 넘실대는 파도 위로 떠오른다. 이 배너는 광화문광장의 천막카페에 전달되었다.

일곱번째 배너
 일곱번째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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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노란우산프로젝트'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미수습자 귀환 활동의 일환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호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잔 씨는 그에 맞춰 또 하나의 배너를 제작했다.

노란 우산은 침몰된 세월호를 수면으로 부양하는 열기구를 연상케 한다. 우산을 둘러싼 다양한 색깔, 마치 열기구가 빛과 열을 발산하며 하늘로 오르듯 세월호의 인양을 염원한다.

여덟번째 배너
 여덟번째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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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9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0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수잔 씨는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미수습자 아홉 명을 생각하며 물고기로 형상화하여 배너를 만들었다.

수잔 씨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표현하여 아홉 명이 부디 슬픔과 고통 없는 곳으로 큰 고래를 따라 유영하기를 빈다.

이 배너는 지금도 팽목항에서 가족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보내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서,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하는 해외동포들이 세월호 참사 1000일을 기하여 만든 공동 포스터에 삽입되었다.

9일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0일이 지났다. 아이들은 국내는 물론 국외의 동포들에게 진상규명이라는 숙제를 남겼다. 이 숙제를 푸는 공식은 침몰된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이다. 정답은 미수습자들의 귀환과 참사의 진상 규명이다.

수잔 씨는 이 숙제를 하기 위해 오늘도 천을 고르고, 자르고, 이어붙이면서 희생자 304인과 살아있는 이들이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서 어우러지는 큰 배너를 그리고 있다. 수잔 씨는 앞으로도 계속 배너를 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글을 작성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수잔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 작업이 저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힘을 얻어 계속할 것입니다. 다시 1000일을 더해야 한다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 일을 걸었다. / 천 일을 울었다. / 천 일을 불렀다.
○천 날을 더해야 한다 해도 / 천만 번이라도 / 함께.
○슬픔이 위로받지 못해도 / 주검이 생명으로 오지 못해도 / 천 개의 목숨으로 천만 번의 다짐으로.
○304인의 얼굴로 그 이름으로 / 선언한다. / 포기하지 않는다.(박찬희의 시 '세월호 참사 1000일에'의 전문)


태그:#세월호 1000일, #세월호 배너, #수잔 리-SUSAN LEE, #박찬희,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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