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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2015년 기준 44.7%다. 노인 자살율은 10만 명당 81.9명으로, 한국인 평균 자살률의 2.5배 정도다. 어느 쪽도 당장 손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위기 상황이다. 게다가 한국은 급격히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다. 정부에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더 빠른 속도로 노인 문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노인의 소득 수준은 점점 줄어들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심지어 가족에게 공격당하거나 재산을 빼앗기는 경우마저 있다. 그렇다고 연금이 소득을 다 대체하지도 못한다. 노인들은 나이를 먹으며 세상 바깥으로 쫓겨나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노력해서 입시지옥, 취업지옥, 주택대출지옥을 겪은 후 노인지옥을 마주하는 지옥의 연속이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책을 준비했다. 하지만 선진국인 일본도 노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노인 문제는 우리에게는 가까운 미래다.

노인지옥
 노인지옥
ⓒ 아사히신문경제부,율리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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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지옥>은 일본의 아사히 신문 기자들이 14개월 동안 노인 문제에 관해 취재한 내용이다. 이 책은 노인이 평생을 살아온 나라에서 보답받지 못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지 못하며 처절하게 고통받는 내용이 가감없이 담았다. 기자들의 르포 기사인 만큼 내용이 생생하다. 고통을 절절하게 묘사했다.

우리나라보다는 선진국인 일본이지만, 이 책이 말하는 일본의 노인 문제 현황은 처참하다. 일본 노인들의 생활 수준은 빠른 속도로 하류화되고 있다. 돈 없고 집 없고 일손도 없는 것이 책이 말하는 일본의 노인 복지다. 연금으로 노년의 질병을 대처하지 못하고 있고, 적절한 시설에 입소하기에는 시설이 부족하며, 많은 시설에 일손이 부족한 실정이다.

책은 현재 일본의 공적의료보험 제도만으로는 고령자의 질병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일본의 의료제도는 공적의료보험 덕택에 병이나 부상을 당할 경우 부담이 적다. 하지만 고령자의 질병은 장기적인 요양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예기치 못한 추가부담으로 노후가 고액의 의료비로 붕괴하는 경우가 많다.

큰 병을 앓지 않고 시설에 입주하여 지낸다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고령에 접어든 노인들 상당수는 노인시설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가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노인을 도울 돌봄 도우미의 일손은 항상 부족하다. 직원 양성이나 대우 개선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시설은 점점 확대된다.

그런데 시설이 확대되지만 여전히 일손은 부족하다. 일손이 부족해서 직원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이 폭증한다. 돌봄 서비스의 질은 저하되고 직원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요코하마 시의 유료 노인시설에서 3년 전까지 고령자들을 돌봤던 남성은 필요한 돌봄 서비스조차 내팽개쳐진 현장을 목격했다. 산소 흡입이 필요한 사람의 코에서 호스가 빠져 알람이 울리는 데도 방치해두거나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 모하는 사람을 혼자 욕실에 밀어넣는다. 이런 사례는 시에 보고되지도 않았다. 이 배경에도 일손 부족과 과중한 노동이 있었다. 야간 근무가 시작되면 다음날 아침까지 24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고 한다.' -51P

일본의 후생노동성(한국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부서)은 시설에서 지내는 고령자의 자택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시설에 지급되는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이다. 노인보건시설에서의 퇴소를 장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설 바깥으로 나와도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문제이다.

게다가 가족들이 노인을 모시고 간병과 돌봄에 집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노인 간병은 쉬운 일이 아니며, 직장과 함께 양립하기에는 더욱 그렇다. 어려운 노력을 통해서 열심히 간병하더라도 인간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정해진 시간을 근무하면서 돌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다른 가족마저 직장을 잃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간병으로 직장을 잃고 부모도 자식도 생활고에 빠지는 '동반 무너짐'의 위험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이바라키 현에서 사는 아츠시 씨(50세)는 30대 후반부터 파킨슨병인 아버지, 암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는 어머니를 돌봤다. 기계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 (중략) 공장에서 일하려고 일자리를 찾았지만 쉰이 되어버린 사람을 채용해줄 곳은 없었다. 서류심사 단계에서 떨어져 면접조차 볼 기회가 없었다.' -110~111P

책에 따르면, 노인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에 이권을 노린 이들이 달려들기도 한다. 사회복지법인을 통한 이권 창출이 떠오르는 시장이 되었다. 특정 인물과 관련된 사회복지법인에 대한 보조금이 급격히 증가하고, 심지어는 사회복지법인이 매매되기까지 한다.

당연히 이권을 위해서 법인을 노린 것이기 때문에 이런 법인이 청렴하고 공정하게 운영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를 탄탄한 연금 제도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좋지만, 일본의 연금 역시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게 되었다고.

저출산이 진행되고 고령자가 증가함으로써 의료나 연금을 지지할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파탄은 필연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일자리를 잃거나 급여가 줄어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중장년이 속출하고 있다. 한편 재정난에 몸부림치는 국가나 지자체는 보험료의 징수에 힘을 쏟는다. -185P

책은 올림픽을 준비할 정도의 풍요로운 나라이면서도 그에 걸맞지 않는 복지를 제공하는 일본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늙으면 노인이 되는 세상이다. 고령자의 생활 수준이 하류화하는 현실은 젊은 세대의 불안도 재생산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책은 끝이 난다.

읽으면서 참담함과 동시에 부러움이 느껴졌다. 이 책은 일본의 노인 복지 제도가 가진 허점을 비판하고 제도가 지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기록한 글이다. 그런데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일본의 노인 빈곤율의 두 배가 넘는다. 책에는 일본의 빈부격차 문제를 지적하는 구절이 있는데, 그 역시 일본인들로서는 심각한 문제겠지만 40% 중반인 한국의 노인 빈곤율을 생각하면 우리나라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보다 더 열악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일본의 정책보다 더 세심한 노인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의 긴 근로시간을 감안할 때, 간병 과정에서 가정의 다른 근로자가 직장을 잃는 악순환을 대비한 제도가 절실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보다 앞서 급속한 노령화를 겪은 일본의 사례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 뺄 것은 빼가며 노인 복지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노인 문제는 그 자체로도 해결이 시급한 문제다. 게다가 노인 문제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책이 말하듯, 모든 사람은 나이를 먹고, 노인의 생활수준 악화는 젊은이들의 불안을 고조시킨다. 노년도 안정되게 보낼 수 있는 노인 복지가 절실한 이유다.


노인지옥 - 세상 밖으로 쫓겨나는 노인들의 절규

<아사히 신문> 경제부 지음, 박재현 옮김, 율리시즈(2017)


태그:#노인, #노년, #고령화, #저출산,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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