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나라 많은 아이들처럼 초등학생 때는 책을 참 많이 읽었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학교 공부 때문에 읽지 못하기도 하고, 읽지 않기도 하더니 스마트폰을 쥐면서 아예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언젠가부터 책에 빠져들기 시작한 20대 초반의 딸이 이제는 거의 매일 책을 읽고 먼저 책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아이들이 책과 함께 삶을 꾸려나갔으면 좋겠다 늘 바라던 터라 고마움이 큽니다. 그 딸과 읽은 책 이야기를 이어 보겠습니다. - 기자말

"어젯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RHK펴냄) 첫 번째 소설 읽고 잤거든. 알지? 단편집인 거? 딸이 열다섯 살에 사고로 죽은 후 부부가 괴로워하며 살아가. 그렇게 5년이 지났지. 딸이 살아 있으면 성인이 되는 그런 나이가 된 거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성인식 관련 홍보 책자들이 배달돼. 초대장도 받게 되고. 고민하던 엄마는 결국 죽은 딸 대신 성인식에 참가하게 되는데..."(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책표지.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책표지.
ⓒ RHK

관련사진보기

지난주 토요일 아침. 모처럼 쉬는 날을 이용해 친구와 하루 여행을 가기로 한 딸이 전날 밤 읽고 잤다는 책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쩌다 마음 내킬 때 한두 권 읽고 몇 달간 책을 놓고 살기를 되풀이하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재작년(2015년) 8월 어느 날 온종일 500쪽에 가까운 소설 한 권을 읽은 이후 책을 붙잡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지난 봄부터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기도 하고, 눈에 띄도록 책 욕심도 많아졌습니다.

"엄마도 좀 읽어보고 이야기했으면 싶어서. 세월호 부모들도 이 사람들처럼 힘들겠지? 내가 죽으면 우리 엄마·아빠도 이렇게 많이 힘들겠지. 누구든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수도 있으니 스즈네 아버지처럼 두고두고 후회하지 말고 가족들에게 잘하자. 뭐 이런 생각도 들고.

딸이 사고 나던 날 그 아버지가 지각하지 말고 빨리 서둘러 가라고 잔소리했거든. 근데 하필 그날 등굣길에 트럭에 치어 죽은 거야. 그래서 그 아빠는 5년 내내 자책하지. '나도 종종 지각하곤 했단다.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마라. 차 조심 하라고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날 출근길에 그곳까지 왜 함께 가지 못했을까'라고."(딸)

딸은 이처럼 말하며 화장하던 얼굴을 돌려 제게 찡긋 웃었습니다. 책을 즐겨 읽게 되면서  딸은 그 소설처럼 이해기 쉽지 않은 경우 엄마도 함께 읽고 어떤 이야길 해주길 바라기도 하고, 인상 깊은 부분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읽고 싶은 책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그런 딸과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이참에 일본의 성인식에 대해 좀 알아보는 건 어때? 엄마가 5년 전에 죽은 딸의 성인식에 대신 참석해야만 하는 이유? 상징하는 거? 그런 것들이 있을 거야. 일본에도 우리나라 영혼결혼식처럼 결혼하지 않고 죽으면 성인식을 해줘야 하는 그런 풍습이 있지 않을까?"

"그럴까? 소설 제목으로 정할 만큼 의미 있는 그 무언가가 있겠지? 초대장까지 보내고 입을 옷 고민하고 그러는 것 보면 일본에선 성인식 비중이 높은 것 같기도 해. 그래서 궁금하긴 해!"(딸)

"우리도 옛날에 일정 나이가 되면 마을에서 정한 돌을 들어 올리게 해 성인임을 인정하는 풍습 그런 게 있었대. 하지만 사라져버렸잖아. 다른 나라들도 나름 다 있었을 거야. 그런데 우리처럼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비중 높은 축제로 이어지기도 하고. 끊겼든, 이어졌든 그 이유나 계기? 그런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걸 아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은데?"

"그렇겠네. 일본의 성인식에 대해 알면 소설이 훨씬 이해되겠네! 하필 첫 번째 소설로 실은 분명한 이유도 있겠지? 첫 번째 작품이 별로면 나머지 작품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니 말이야. '성인식'만 읽어서 잘은 모르겠는데 음…, 확 와 닿는 것은 없지만 여운이 깊은 그런 묵묵한 무언가? 은근히 파고드는 감동? 같은 것이 이 작가의 특징 아닐까?"(딸)

며칠 전 딸과 나눈 책 이야기를 쓰자니 몇 년 전 일들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살기를 바라며 책에서 읽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인상 깊은 부분을 읽어주곤 했습니다. 예전에 책을 좋아했던 아이들이니 그러면 책에 관심을 보이려나 싶었거든요. 기대와 달리 아이들은 귀찮아하거나 핸드폰에 눈을 박고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딸에게 책 이야길 들려줄 때가 많았는데요. 그랬던 딸이 이제는 며칠 전처럼, 아니 틈만 나면 먼저 책 이야길 하곤 합니다. 그래서 딸이 책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하던 일을 놓고 눈을 맞추곤 합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소중한 것 중 하나가 평생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란 생각에서 입니다.

"제목을 까먹어서 몇 번 째 나오는 소설인지 모르겠는데, 가족이란 관계,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소설집이라고 내가 팔로우하는 사람이 추천해서 읽어보고 싶었거든. 그 사람이 엄마에 대한 나쁜 기억만 가지고 있는 어떤 여자가, 그래서 십년 넘게 소식 끊고 사는 여자가 엄마가 얼마 살지 못할 어떤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고 줄거리를 썼지.

여러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는데, 자기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엄마를 치매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꼭 찾아가야 하나? 그래도 엄만데 당연히 가야한다! 인생 어긋난 것이 어떻게 순전히 엄마 때문이냐. 자기 책임도 있지! 이런 댓글들이 달렸지. 만약 엄마가 그 여자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찾아갈 거야? 아님?"(딸)

책 읽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딸은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작성해 놓고 구입해 읽곤 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됐는지 전혀 모르는 책을 언급하며 줄거리까지 꿰고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딸 덕분에 그 존재를 알게 된 책도, 언젠가 읽어야 할 책도 늘었습니다.

지난 토요일처럼 이해가 쉽지 않거나 내 생각이 궁금한 경우 함께 읽고 이야기 하기를 원하거나, 지난날 제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개 그러는 것처럼 자기가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설렌 눈빛으로 이야기하며 권했기 때문입니다. "엄마 취향이라 엄마 생각이 났다"며 권하는 책도 있었고요. 딸이 나간 후 딸이 읽고 잤다는 '성인식'과 페이스북 어떤 사람이 추천했다는 '언젠가 왔던 길'을 읽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13년 전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엄마를 만난 것은 그 장례식 때였다. (…)왜 이 집에 온 것일까. 이 사람과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다짐하고 또 생각해왔는데. 온 이상 무슨 말인가 하고 싶고, 하고 싶은 말도 아주 많을 텐데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 16년 동안, 마음속으로는 무수한 말을 했다.

몇 번이나 직장을 옮겨 다녔지만, 새 일을 시작할 때마다 '보라고, 나, 잘 하고 있잖아' 하고 말했고, 새 애인이 생기면 '여자로서 내가 한결 낫지, 훨씬 행복하고'라고 말했다. 누가 옷차림을 칭찬해주면 '당신도 이런 옷을 입으면 좋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고, 마음이 너덜너덜할 때에는 '미안해, 엄마 말이 맞았어' 하고 말했다. - 70~71쪽.

딸이 다시 말합니다.

"잠깐 알아봤는데, 일본에선 성인식이 6개월 전부터 준비할 정도로 비중 높은 축제래. 성인식에서 엄청나게 비싼 옷을 입고 머리치장을 하는데, 몇 달 전부터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거나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그럴 정도라네. 옷값 때문에 몇 달 동안 일을 해 모으기도 하고. 그런데 단지 축제가 아니래.

부모는 성인식과 함께 자식을 품안에서 완전히 떠나보내고,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대. 스즈네 부모가 죽은 스즈네가 되어 성인식에 참여한 것은 5년 동안 떠나보내지 못한 죽은 자식을 비로소 떠나보내게 되는, 말하자면 자식의 죽음으로 인한 불행을 이젠 끝낸다고 삶과 화해한다는 거지. 일본 성인식에 대해 좀 아니 소설이 훨씬 의미 있네!"(딸) 

엄마는 어떻게 읽었는가가 궁금했었나 봅니다. 집에 오자마자 "읽었어?"라고 묻는 걸 보면. 그런 딸에게 두 작품을 읽은 느낌을 이야기 해줬습니다.

"줄거리보다 표현이나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중점 두고 읽으면 훨씬 인상 깊을 것 같아. 죽은 딸 때문에 몇 년이나 불행하게 사는 부모 이야기인 '성인식', 자신의 사회적인 자존심과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키우려 했으나 자식들에게 트라우마만 심은 엄마, 그 엄마를 증오하면서도 끈을 놓지 못하는 딸의 애증을 다룬  '언젠가 왔던 길', 둘 다 주변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지. 소설로 어쩌면 너무 식상하기도 하고.

그런데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감동을 주고 가족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한다는 거지. 나머지 4편은 또 어떤 가족이야기인가 궁금해. 점점 갈수록 가족 관계가 사라지고 있대. 일본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가 적극 추천하고 나오키상(2016년, 제155회)까지 탄 것 아닐까? 어떤 이유로든 가족문제로 마음이 편치 못하거나, 슬픈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화해하는데 많이 도움 되겠다 싶어!"

덧붙이는 글 |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오기와라 히로시) |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05-19 | 정가: 13,000원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2017)


태그:#책읽기, #딸과 엄마, #제155회 나오키상, #오기와라 히로시, #성인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