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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청와대 앞 노숙농성장 입구에 초록색 테이프를 붙여 통행로를 만들었다.
 경찰은 청와대 앞 노숙농성장 입구에 초록색 테이프를 붙여 통행로를 만들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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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 길바닥에 화살표 모양으로 초록색 테이프가 붙었다. 바로 옆엔 노동자들이 걸어놓은 팻말이 있다.

"시민여러분 통행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희는 억울하게 해고되고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탄압을 받아 온 노동자들입니다."

지난 4일 오후, 청와대 정문에서 직선거리로 100m 떨어진 인도에서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차헌호 지회장을 만났다. 차 지회장은 '주최자' 신분으로 6월 19일부터 7월 17일까지 청와대 앞에 집회 신고를 냈다.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막'과 비를 막아주는 '비닐'도 집회 물품으로 등록했다. 집회 첫날, 경찰은 청와대로 향하는 도로 한편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시민들의 통행을 도왔다.

한여름 태양도, 불편 겪는 시민들의 눈초리도 따갑다

청와대 앞 농성장을 지나는 시민들
 청와대 앞 농성장을 지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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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농성장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노숙농성을 시작한 노동자들은 뜨거운 태양을 잠시나마 피해볼 요량으로 그늘막을 쳤다. 종로구청과 경찰은 여지가 없었다. '도로교통법'에 저촉된다며 강제로 그늘막을 철거했다.

그런데 압수당한 그늘막이 오후에 다시 돌아왔다. 종로구청은 사유물인 그늘막을 보관할 수 없다며 농성자들에게 돌려줬다. 노동자들은 그늘막을 다시 쳤다. 종로구청은 또 그늘막을 걷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농성자들을 막아섰다. 뺏았다 돌려주고 설치했다 해체하기를 수차례, 결국 찢어진 비닐막 한 장이 남을 때까지 농성자들과 구청의 공방은 계속됐다.

시민들의 통행로 확보를 위해 도로에 설치됐던 폴리스라인이 치워졌다. 경찰은 대신 길거리 농성장 1/3 지점에 초록색 테이프로 좁은 통행로를 만들었다. 폭 40~50cm 가량의 길로 통행하란 것이다. 불편을 느끼는 시민들이 농성자들을 탓하기 좋은 모양새다. 통행하는 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그늘막 없이 견뎌야 하는 한여름 태양보다 더 따갑다.

청와대가 지난달 26일 반세기만에 청와대 앞을 24시간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해고노동자들이 청와대 앞 농성을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해고노동자를 향한 집요한 공격이 시작됐다. 특히 "청와대가 앞길을 여니 민노총 농성 천막부터 들어섰다"면서 언론의 공격이 집중됐다. 인터넷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권에 누가 되는 행동을 한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통령이 직접 밥을 푼다거나 옷을 벗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잖아요. 그사이 저희는 여기(청와대 앞에)서 계속 농성을 했어요. 그런데 만약에, 청와대 관계자가 누구든 한명만 나와서 '신경쓰겠다' 한마디만 했다면 어땠을까요? 굳이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경찰들은 매일 와서 비닐이다 뭐다 해서 다 뺏어갔는데."

"1년만 기다려달라" 말한 대통령... 현실은 너무나 비참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20여 명의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지난달 19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갔다. '청와대 앞에 한 번 서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20여 명의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지난달 19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갔다. '청와대 앞에 한 번 서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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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지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일자리위원회에서 노동계에 '적어도 1년은 지켜보며 기다려 달라'고 말한 사실을 언급했다. 그는 "청와대가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들에게 1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차 지회장은 지난 2005년 경북 구미공단에 입주한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GTS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용 유리 기판을 만드는 아사히글라스에서 물류관리 업무를 맡았다. 9년을 넘게 일했지만 임금은 언제나 최저수준이었다. 숙련자와 신입의 급여가 최저임금으로 동일했다. 점심도 2500원짜리 도시락을 20분 안에 해결해야 했다. 작업복 또한 불량해 땀을 전혀 흡수하지 못했다.

차 지회장이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게 된 주된 이유다. 노조는 임금을 8000원으로 올려달라 했다. 점심시간을 늘려달라고, 도시락과 작업복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다. 노조가 만들어진 지 2주 만에 138명의 조합원이 생겼다.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받은 해고통보 문자.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받은 해고통보 문자.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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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글라스는 비정규직 노조가 생긴 지 한달만인 지난 2015년 6월 30일 정오에 문자로 해고통보를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들의 하청업체와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해버렸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노조원들을 포함해 노동자 170여 명이 문자 한 통으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지난 2016년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업체인 아사히글라스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아사히글라스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관련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뒤집고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는 22명의 해고노동자들만 남아서 원청인 아사히글라스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 앞 농성 끝낸 노동자들 "비난 때문 아니다"

초록색 테이프로 분리된 청와대 앞 농성장.
 초록색 테이프로 분리된 청와대 앞 농성장.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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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 노숙농성장은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을 비롯해 동양시멘트지부, 전국자동차 판매연대, 하이텍 민주노조사수를 위한 투쟁위원회, 현대자동차 울산비정규직 지회, 콜트콜텍 등 6군데 사업장 노동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투쟁사업장 문제해결과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요구를 담은 요구서를 청와대에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문서 전달이 제한됐다. 차 지회장에게 '그렇다면 조끼를 벗고 요구서를 전달하면 되는 것 아니었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요구와 정신이 이 조끼에 담겨있다"고 강조했다.

애초에 차 지회장은 지난해 11월 1일부터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9개월째 조끼를 입은 채 거리 생활을 하고 있다. 그사이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집회에 동참했다.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도 지켜봤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지만 차 지회장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농성장을 철거하려는 위협이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 폭우가 몰아치는 날에도 비닐 한 장 펼치지 못했다. '목소리 한 번 들어달라'는 요구서 들고 청와대 앞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끝내 전달하지 못했다.

16일째인 6일 오전 농성은 끝났다. 하지만 또 조끼 때문에 마무리가 쉽지 않았다. 조끼를 입은 상태로는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없다는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노동자들은 기자회견에서 농성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장, 종로경찰서장, 종로구청장 등 6명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여론 때문에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차 지회장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더 준비해서 또 다른 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에 전달하지 못한 '요구서'
 청와대에 전달하지 못한 '요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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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문재인, #청와대,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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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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