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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저자 모리카와 마치코 작가(왼쪽 두번째)가 안이정선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왼쪽, 송도자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오른쪽)와 함께 2017년 8월 5일 통영노인전문병원에 입원해 있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득(98) 할머니를 찾았다.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저자 모리카와 마치코 작가(왼쪽 두번째)가 안이정선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왼쪽, 송도자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오른쪽)와 함께 2017년 8월 5일 통영노인전문병원에 입원해 있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득(98) 할머니를 찾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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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도 필요 없다. 일본이 참말로 사죄만 한다쿠모 나는 편히 눈을 감고 갈 수 있것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수 있것다."

향년 101세로 7월 1일 눈을 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김 할머니는 이날 새벽 입원에 있었던 경남도립 통영노인전문병원에서 별세했다.

1918년 통영 태평동에서 태어났던 할머니는 1939년 일제강점기 때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취업사기'로 끌려갔다. 할머니는 통영 강구안항에서 배를 타고 부산을 거쳐 다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갔다. 할머니는 대련에서 3년, 다시 필리핀에서 4년간 '후미코'라는 이름으로 지옥과 같은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1945년 해방 이후, 할머니는 필리핀에서 군함을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항와 부산을 거쳐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통영에 살았던 김복득 할머니는 1994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를 하고 등록했다.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끈질기게 싸웠다. 할머니는 2003년 8월, 광복절을 기념해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특별수요시위'에 참가하고, 2006년 3월 '수요시위'에 이어 당시 금강산에서 열린 '인권캠프'에도 함께 했다.
진해여고 학생들이 이불을 만들어 2018년 1월 17일 통영 김복득 할머니를 찾아 전달했다.
 진해여고 학생들이 이불을 만들어 2018년 1월 17일 통영 김복득 할머니를 찾아 전달했다.
ⓒ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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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국내외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여러차례 증언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2007년 9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증언 집회'에 참가하고, 이듬해 11월 경남세계여성인권대회에 참석해 '전시성폭력분과 증언'을 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이같은 노력에 지역에서도 함께 했다. 2009년 8월 김 할머니는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대표 송도자) 등 단체와 함께, 통영시의회에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결의안 채택'을 촉구하기도 했다.

고인은 일본도 찾았다. 할머니는 2010년 11월 일본 동경 중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 서명전달 집회'에 참석했다. 통영거제시민모임은 시민들이 쓴 탄원엽서를 모아 일본 의회에 전달하고 의회결의문 채택을 요구했다. 이때 김 할머니도 함께 했다.

시흥시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정순옥 공동대표가 2016년 11월 22일 오후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에 기금을 전달하고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복득 할머니를 방문했다.
 시흥시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정순옥 공동대표가 2016년 11월 22일 오후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에 기금을 전달하고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복득 할머니를 방문했다.
ⓒ 송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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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김 할머니는 2010년 11월 일본 동경에서 열린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 간담회에 참석하고, 오사카 증언집회도 함께 했다.

고인은 2012년 6월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제2차 범국민 탄원 엽서보내기 운동'에 함께 하고, 그해 7월부터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비 건립 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할머니는 가지고 있던 돈을 사회를 위해 내놓기도 했다. 2012년 4월 근검절약으로 모은 재산 가운데 2000만 원을 통영여자고등학교에 장학 기금으로 기부했던 것이다.

또 할머니는 2013년 11월 '경남일본군 위안부 역사관'(가) 건립을 위해 그동안 아껴 모은 2000만원을 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경남도교육청은 김 할머니의 삶을 조명했다. 2012년 8월 고영진 당시 경남도교육감이 할머니를 위로 방문하고 '할머니 일대기의 역사교육자료' 제작과 활용을 제안해 동의를 했던 것이다.

경남도교육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일대기를 담은 교육자료집 <나를 잊지 마세요"를 펴내고, 2013년 3월 7일 오후 교육청 대강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사진은 고영진 전 교육감이 김복득 할머니한테 책과 성금을 전달하는 모습.
 경남도교육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일대기를 담은 교육자료집 <나를 잊지 마세요"를 펴내고, 2013년 3월 7일 오후 교육청 대강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사진은 고영진 전 교육감이 김복득 할머니한테 책과 성금을 전달하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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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교육청은 2013년 3월 김복득 할머니의 일대기를 담은 자료집 <나를 잊지 마세요>를 펴냈다. 당시 교육청은 이 자료집을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해 유엔과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보내기도 했다.

외국 인사들도 김 할머니를 찾기도 했다. 2012년 10월, 미국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건립한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셀리패이드팍시 추진단(셀리패이드팍시 시장 등)이 경남을 찾아 김 할머니를 만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고령 일본군 위안부 김복득 할머니가 2012년 10월 11일 오전 창원대 국제교류원에서 미국 최초로 '기림비'를 세운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펠리세이드팍시 제임스 로툰도 시장을 만나 포옹을 나누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령 일본군 위안부 김복득 할머니가 2012년 10월 11일 오전 창원대 국제교류원에서 미국 최초로 '기림비'를 세운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펠리세이드팍시 제임스 로툰도 시장을 만나 포옹을 나누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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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일본 포토 저널리스트 야마모토 작가가 할머니를 찾아 인터뷰와 촬영을 하기도 했고, 그해 8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박지훈 연구원이 세계학술대회 발표 프로젝트를 위해 찾아오기도 했다.

김복득 할머니는 박근혜 정부 때 일본이 낸 돈으로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 기금의 수령을 거부하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재단은 1억 원을 김 할머니의 조카한테 보냈다.

김복득 할머니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2016년 12월 28일)에 대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청구소송'와 '손해배상소송'에 원고로 참여하기도 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100세 생신 축하연'이 2017년 1월 14일 오후 통영노인전문병원 강당에서 열렸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100세 생신 축하연'이 2017년 1월 14일 오후 통영노인전문병원 강당에서 열렸다.
ⓒ 배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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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득 할머니는 건강 악화로 2013년 11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고, 2018년 7월 1일 새벽 101세 일기로 운명했다.

일본군위안부할머니를위한 통영거제시민모임 등 단체들은 경남도립통영노인전문병원에 장례식장, 충무실내체육관에 시민분향소를 차렸다.

영결식은 7월 3일 오전 10시 시민분향소에서 열린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가 통영노인병원에 입원해 계신 가운데, 통영여고와 충렬여고 학생들이 2015년 2월 7일 병실을 찾아 할머니 생일축하 모임을 가졌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가 통영노인병원에 입원해 계신 가운데, 통영여고와 충렬여고 학생들이 2015년 2월 7일 병실을 찾아 할머니 생일축하 모임을 가졌다.
ⓒ 송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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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복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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