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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에서 일명 '장충기 문자'를 공개한 후로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오랜 세월 정론직필을 자처하며 타인에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공정성을 부르짖던 이들이 기가 막히는 문자로 물욕을 채우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미 많은 사건으로 언론의 신뢰가 떨어진 상태였지만 '바닥 밑에는 지하실이 있다'는 주식계의 농담처럼 언론의 신뢰는 또 한 번 추락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선물(?)을 받았어도 공정하게 살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광고를 받고, 돈을 받고, 술도 얻어 먹지만 공정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주장인지 의문스럽다.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면 세상에 감옥에 갈 사람이 있을까. 이런 주장을 보고 기분이 나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읽으면 더 기분이 나빠지는 책이 있다. 언론이 사회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라면, 언론사에서 근무하는 기자들의 행태를 알아두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기사를 쓴다. 그러면 여론이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기분이 많이 나빠지더라도 기자들의 모습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름도 간단한 책 <촌지>는 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기자들이 '낑'을 '슈킹' 하고 '콜' 하는 이야기를 정리한 책이다. 책소개 글에 따르면, 90%가 실화란다. 저자 김영인은 연합통신과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했고, 문화일보와 아시아투데이에서 논설위원을 지냈다.

 촌지
 촌지
ⓒ 김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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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따르면 '낑'은 '촌지'를 뜻하는 말이고, '슈킹'은 '돈을 거둬 모은다'는 뜻의 일본어 '슈킨'에서 따온 말이란다. '콜'은 영어의 'call'에서 따온 은어다. 촌지도, 촌지를 챙기는 단어도 모두 은어였는데, 기자들이 봐도 뭔가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거에 언론계에서 어떻게 돈을 주고 받는 관행이 이루어졌는지 고발한다.

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레기'라는 가상의 기자를 등장시켜서 일화처럼 재구성했다. 현직에 남아있는 기자들의 이야기도 있기 때문에 익명을 썼다고 한다. 정황상 정치인이 된 사람의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기업과 공공기관으로부터 '낑'과 향응을 대접받는 이야기가 이 책의 핵심이다. 저자는 너무 더러운 이야기는 지워냈다고 한다. 그래도 읽으면 기분 나쁜 이야기가 많다.

지방 취재를 가면 '파트너'를 요구하고 '요정'을 방문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기자들의 이야기, 파트너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기자의 이야기, 갑자기 일정에 없는 기업을 방문해서 아무 물품이나 뜯어내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한국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이 기자들은 외국에 나가서도 하던 일을 그대로 한다. 취재차 필리핀에 가야하면 취재 계획이 없는 주변 동남아 여러 국가에 모두 방문해서 여러 곳에서 논다.

물론 술집에서 '파트너'를 부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돈은 다른 기업이나 유관기관이 대신 내준다. 기사는 이미 보도자료로 받은 것으로 미리 써놨기에 외국에 가서 취재를 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놀다 오는 것이다.

룸살롱 대신 골프접대를 받으면, 모든 골프 비용은 주최한 쪽이 부담하고, 골프를 치는 기자들은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주최 측은 지역 특산물을 제공하고, 교통편도 제공하고, 식사와 술자리도 제공한다. 대기업 계열회사들은 골프 접대에만 한 달에 수천이 넘게 쓰기도 했다고 한다.

기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골프접대를 받는 기자들 중 일부는 골프를 먼저 요구하거나 골프를 친 뒤 곧바로 '다음' 약속을 제의하기도 한다. A사 홍보 담당자는 "라운딩에서 내기골프에 진 일부 기자가 '다음에 날짜 한번 잡자'고 말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고 말했다. S사 홍보담당 임원은 "예상보다 많이 나온 내역서를 보고 부하 직원을 꾸짖었더니 일부 기자가 숍에서 파는 점퍼를 입고 갔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 219p

기자에게 까칠하게 굴면 찍히는 수가 있기 때문에 단체들은 기자를 알아서 받들어 모셔야 한다. '낑'은 주식, 현물, 거액 현물, 경조사비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제공된다. 저자는 기자는 '붓 든 깡패'라는 말을 책에 적어두었다.

이 붓 든 깡패들은 무서운 존재지만 국세청만은 건드리지 않는다. 세무조사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끗발이 대단한 기자들은 여기서 나아가, 출입처의 인사나 업무에 개입하고 봉투를 받기도 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제왕인 것이다.

책에는 며느리가 부동산 투기를 하다가 적발된 사람이, 기자에게 민원을 청탁해서 세무조사를 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자는 이를 국세청에 전달해서 민원을 해결했다. 이외에도 은행 대출을 알선해 달라고 부탁받는 기자도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낑' 받는 일이 만연했는지, '낑'을 꿀꺽하고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가 '낑'을 거부하고 비판하는 기자보다 낫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수백만 원짜리 골프 드라이버를 선물받고, 고급 요정에 드나드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겐 평생의 꿈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로 안일한 이들의 인식을 비판한다.

점심 약속이 이루어지면 정부 부처의 국장급과 대변인은 '운전기사' 노릇도 해야 했다. 기자들을 승용차에 모시고 음식점까지 운전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왕복운전이었다. 반주를 한 잔 걸치면 음주운전이기도 했다. 이렇게 매일 기자들 점심을 챙겨줬다. 기자들은 모르는 게 있었다. 또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 밥'은 없다는 철칙이다. -288p

이 책의 당초 목표는 지난 세기인 20세기의 과거사를 다루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사회가 변한 21세기에도 촌지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다룬 몇 가지 사건들은 21세기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때문에 저자는 김영란법을 계기로 기자들의 취재 관행이 달라지기를 기원한다. 김영란법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더라도, 기자들의 취재 관행은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쓴 기사, 기자들이 쓴 책은 있어도 기자들에 대한 책은 많지 않다. 기자들 자신의 치부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고 다른 직업군에 의해 간접적으로 묘사될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언론계에 종사했던 저자가 직접 내용을 정리한 것이기에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가치 있는 책이지만, 남에게 쉽게 권하기는 어렵다. 책 이야기를 하기도 쉽지 않다. 읽으면 화가 치밀어서 계속 읽기가 힘들어서다.

모든 기자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부 기자들이 남의 돈을 뜯어내는 것이 너무 막무가내고 타인의 희생도 당연하게 여긴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하는데 이 책은 참 쓰디 쓰다. 저자의 말마따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봉투나 향응이 오가지 않고 제대로 쓰인 기사만 읽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촌지 - 여론과 권력 사이 침묵의 대가로 행해진 촌지실화, 한국사회에서 촌지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김영인 지음, 지식공방(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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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은경의 그림책 편지'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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