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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일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붕괴사고가 2주기를 맞았습니다. 최근 참사 생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 조선소 노동자>(코난북스)가 출간됐습니다. 이에 출판사 허락을 받아 책에 실린 글 몇 편을 싣습니다. 이 글을 쓴 박희정님은 인권기록활동가입니다.[편집자말]
지난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 경남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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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일
7안벽, 마틴링게 프로젝트 P모듈


"아악!"

페인트칠을 하던 이정은(여, 54세, 물량팀 도장 작업)의 머리 위로 잿빛 가루가 사정없이 쏟아져내렸다.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정은은 가루가 날아온 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천장 가까이에서 그라인더로 철판을 갈아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쌓인 가루를 털어낸다고 에어호스로 바람을 불어댄 것이다.

이정은이 서있는 곳은 천장이 아주 높았다. 보통 건물의 두세 층을 합한 높이쯤은 되는 곳이다. 높은 데서 쏟아진 쇳가루는 연기처럼 퍼져 아래쪽에서 일하는 사람들 위로 내려앉았다. 모래알 같은 샌딩 가루는 이정은의 옷 속까지 파고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지만 이 작은 침입자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뿌리면 뿌린다고 얘기라도 해줘야지!"

이정은은 짜증이 확 밀려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사람 없는 데로 가서 작업복을 벗어 다 털어야 했다. 바빠 죽겠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가뜩이나 오늘따라 '은바가지'들이 올라온다고 아침부터 시달린 터였다.

 
지난 2017년 5월 2일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이 거제백병원 장례식장에 있는, 크레인 붕괴 참사 희생자 빈소를 찾았다가 조문 도중 항의를 받고 돌아갔다.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조화가 파손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5월 2일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이 거제백병원 장례식장에 있는, 크레인 붕괴 참사 희생자 빈소를 찾았다가 조문 도중 항의를 받고 돌아갔다.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조화가 파손되기도 했다.
ⓒ 김경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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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사급이고 관리자들이고 뭐고 다 은바가지라 그러거든. 은바가지(은색 안전모) 쓰고 올라온다고. 그날 공장장인가 뭔가가 온다고 평소에는 안 올라오던 하청업체 사장이며 관리자들이며 전부 나와서는 난리인 거야. 우리도 눈치껏 일을 하려는데 주위 청소부터 하래. 가서 청소하고 있으니까 또 한쪽에서는 일하라고 부르더라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몰라. 진짜 너무너무 번잡스럽더라고."

이정은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던 해양 플랜트 마틴링게(Martin Linge)의 상부 구조물을 칠하는 도장공이었다. 마틴링게 프로젝트는 노르웨이와 영국, 유럽 대륙으로 둘러싸인 북해에 설치되어 석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게 될 설비였다. 2012년 프랑스계 글로벌 에너지 기업 토털의 노르웨이 자회사(Total E&P Norge)가 삼성중공업에 발주해 2017년 6월 인도할 예정이었다.

거대한 해양 구조물은 모듈 단위로 제작해 이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마틴링게 프로젝트의 상부 구조물은 네 개의 모듈로 구성되었다. 삼성중공업이 건조를 맡은 것은 프로세스(process), 유틸리티(utility), 플레어(flare), 세 개의 모듈이었다(다른 하나는 주거용 모듈로 유럽 회사가 제작을 맡았다).

이정은이 있던 곳은 그중에서도 7안벽(선박이 안전하게 접안해 화물을 하역하고 승객을 승하선하도록 만들어진 구조물, 7안벽은 삼성중공업 사업장에서 가장 안쪽에 있다)에서 건조 중인 프로세스 모듈, 속칭 P모듈이었다.

은바가지들의 방문은 현장 노동자에게 늘 번잡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날따라 이정은의 마음이 더 뾰족해진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랬다니까. 노동절날 아침부터 이게 뭐냐고. 노동절은 쉬어야 되는데 쉬는 날 일한다고 위로는 못 해줄망정 뭐 때문에 은바가지들이 올라오고 공장장이 오느냐고 내내 투덜투덜거리면서 일을 했지. 어쨌거나 우린 돈 벌러 왔으니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잖아."

이정은의 말처럼 그날은 2017년 5월 1일, 노동절이었다. 법정기념일이자 근로기준법에서 인정하는 유급휴일 말이다. 그러나 그날 마틴링게 작업장은 멈추지 않았다. 출근 기록에 따르면 이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는 1623명이 평소처럼 출근해 평소처럼 일했다.

이날 출근한 이들은 대개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흔히 물량팀 혹은 돌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물량팀이란 하도급의 분화된 형태로서 '다단계 하도급'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다. 주로 단기간에 작업 물량을 처리하는 작업 팀을 물량팀이라고 부른다. 보통 물량팀장을 중심으로 10~30명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건설 현장의 고용 형태인 십장, 팀장이나 제조업 내의 소사장과 유사한 고용 형태다.

형식은 하수급 계약을 체결하지만, 실제 작업은 원청(발주사)와 도급 업체의 관리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불법파견 용역이다. 그래서 형식상으로는 발주사와 도급업체는 사용자로서 책임이 없다. 돌관(突貫)은 '갑자기 돌' 자와 '뚫을 관' 자가 결합한 단어다. 물량팀과 마찬가지로 장비와 인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서 휴식 없이 최대한 빨리 끝내는 공사, 또 이를 하는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정은과 마찬가지로 이 프로젝트에서 도장 작업을 맡았던 김오성(남, 38세, 물량팀 도장 작업)은 그날을 "빽 없고 정직원 아닌 사람들은 반강제로 다 출근한" 날로 기억한다.

"출근 안 한 하청업체는 없었을 거예요. 그때 우리 회사 직원은 백 퍼센트 다 출근했어요. 억울했죠. 휴일에는 쉬고 싶은데."

김오성은 노동절에 쉬겠다는 의사를 팀장에게 표명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해서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닦달뿐이었다. 납품 기한이 한 달 반가량 앞으로 다가와 있었지만 마틴링게 프로젝트의 공정률이 예정보다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량팀이 대거 투입된 이유이기도 했다. 김오성은 이날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출근했다. 하청 노동자가 팀장 눈 밖에 나서 좋은 일은 없었다.

김오성은 1층에서 작업 지시를 받고 새 페인트를 준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다가 시계를 보았다. 정확히 오후 2시 반. 30분 후면 휴식 시간이었다.

"시간이 애매한 거예요. 엘리베이터 타고 가면 작업 현장까지 빙 둘러 가게 되는데,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겠더라고요. 그렇다고 휴식하려니 너무 이르고. 그래서 일부러 3층까지 걸어 올라갔어요."

P모듈은 옆에서 보면 L자 모양으로, 높은 쪽은 6층, 낮은 쪽은 3층으로 되어 있었다. 6층까지의 높이는 65미터에 달했다. 3층 메인데크 쪽 일부 공간은 작업자들이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있는 10분의 휴식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휴게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몇 백 명이 같이 쉬는 곳에 있는 거라고는 간이화장실 하나와 정수기 하나, 재떨이뿐이었다. 단출하다는 말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식 시간이 되면 실제로 이 공간에서 '휴식'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화장실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정수기는 뜨거운 물을 데울 틈이 없어 찬물만 토해냈다.

"3층에 제가 담배 피우는 공간이 있었거든요. 방향을 말하자면 남쪽이에요. 걸어 올라가서 3층에 도착하니까 40분쯤 됐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그 자리에 가기가 싫은 거예요, 이상하게…."

김오성은 3층 데크에 멈춰선 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담배 피우자. 좀 쉬자. 일을 뭐 그리 힘들게 하노."

팀장은 볼일이 있다고 점심시간에 조퇴했으니 마침 눈치 볼 사람도 없었다. 잠시 후 친구가 김오성이 있는 곳으로 왔다. 공교롭게도 둘 다 담배가 없었다. 두 사람은 담배를 가진 동료가 오기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3시가 되려면 아직 10분 가량 더 지나야 했다. 김오성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휴게 공간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오후 2시 52분
P모듈 3층 메인데크


"그때 봤죠. 2시 52분, 그쯤에. 왜 시간을 기억하냐면 화장실 하나 있는 거, 남자 한 사람이 거기 대변기 쪽으로 들어가는 걸 봤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늘 담배 피우는 장소, 그러니까 맨 구석 그늘진 자리에 네다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때 크레인 신호수(안전을 위해 크레인 아래에서 작업하는 사람들과 크레인 조종사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사람.)가 올라온 거예요. 호루라기 불면서 물건 지나간다고, 커피 마시는 사람들 다 비키라고 해서 쳐다보니까 지브(jib) 크레인에 철제 수거함이 올려져 있어요. '수거함이네' 하면서 '요 녀석 왜 안 오지' 하고 있는데 쿵! 하는 거예요.

보니까 제가 늘 다니던 장소에… 수거함이 툭 떨어졌더라고요. 지브 크레인을 잡아주는 와이어가 있고, 와이어 중간에 샤클이라는 고리가 있거든요. 그 고리가 떨어진 거예요. 어어어 하면서 머리를 든 순간 뭔가가 휘이익 쾅쾅쾅! 다시 어어어 하는데 와이어 움직이는 소리가 또 휙휙휙! 났어요."

김오성이 사고를 목격한 바로 그 시각 이정은은 P모듈 6층에 있었다.

"작업 검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빨리 검사 마치고 가려고 2시 30분쯤부터 6층에 대기를 했지. 40분쯤인가 됐는데 반장이 검사 왔다고 우리보고 준비하래. 반원들이랑 대기하고 있는데 뒷사람이 '아, 저기!' 그래. 뒤를 보니까 골리앗 크레인이 우리 바로 앞 가까이에 있는 거야. 크레인 조종실 안까지 다 들여다볼 수 있더라고.

우리는 맨날 멀리서만 봤으니까 신기했지. '쪼끄만 줄 알았는데 안이 넓네.' '두 사람이 있으니까 한 사람 쉬고 한 사람이 일하고 그럼 되겠네?' 농담하고 그랬어. '야, 근데 오늘 바람 너무 많이 분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 골리앗 크레인도 일하나?' 그러다가 검사 왔다 그러길래 검사장으로 가려고 그러는데 뭔가 퍽! 소리가 크게 나는 거야.

우리가 6층 위쪽에 있었는데 지브 크레인 붐대가 6층 아래쪽 벽을 한 번 탁 치고 콱 뿌러져 3층으로 내려간 거야. '뭐지?' 하면서 밑을 내려다보니까, 아…  아… 완전히, 폭삭, 주저앉아버렸더라고…. 주황색 피스복 입은 노동자가 바로 내 밑에 있더라고. 그분이 압사돼서… 압사돼서…."

느닷없이 지브 크레인이 붕괴되면서 펼쳐진 참혹한 광경 앞에 이정은은 하얗게 얼어붙었다.

"애들이 가자 그러는데 다리가 안 떨어지는 거야, 안 떨어지더라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마음은 빨리 가야 되는데, 가야 되는데 그러는데 발걸음이 안 떨어지고…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울기 시작하니깐 같이 울게 되더라고…."

파워그라인더를 다루는 김재영(남, 41세, 물량팀 파워 작업)은 6층에서 지브 크레인이 떨어지기 직전의 상황을 목격했다.

"그날 아침에 야간조가 작업한 샌딩 가루가 바닥에 엄청 많이 쌓여 있어서 출근하자마자 청소를 했어요. 분진 백을 일곱 개는 채웠을 거예요. 그걸 채우면 내려야 되잖아요. 지브 크레인으로 분진 백을 들어서 밖으로 내린 거죠. 그것 다내려주고 나서 크레인이 뭐가 할 게 있었는지 붐대를 3층 데크 방향으로 세워놓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 바로 옆에 골리앗 크레인이 있었어요.

감독관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작업자 중에 한 명이 '어어어' 하는 거예요. 군중심리라는 게 있으니 같이 쳐다보게 되잖아요. 보니까 골리앗이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어요. 지브 크레인이 서 있는데 골리앗이 그쪽으로 계속 가는 거예요. 점점 가까워지는데… 와, 저거 칠 것 같은데. 서야 되는데, 서야 되는데 하는데도 계속 가더니 지긋이 밀어버리데요. 천둥 치는 소리 비슷하게 바바바박! 하더니 지브 크레인 붐대가 확 떨어져버리더라고요. 그 순간부터 비명 소리가…. 밖을 내다보니까 이미 난리가 난 거죠."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2일 오후 사고현장의 휜 크레인.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2일 오후 사고현장의 휜 크레인.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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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톤급 골리앗 크레인과 32톤급 지브 크레인이 충돌한 것은 조선소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게다가 무너진 지브 크레인 붐대와 끊어진 와이어가 덮친 곳은 하필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3층 휴게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전기 포설(전기 배선 등을 설비 내에 배관 등을 통해 설치하는 일) 작업을 하는 김종배(남, 43, 물량팀 포설 작업)는 3층 휴게 공간에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다가 사고를 목격했다.

"그날은 5시 퇴근이었으니까 3시 휴식 시간 이후에 마지막 한 타임이 남은 거잖아요. 저랑 제 부사수는 반장한테 그 마지막 한 타임 작업지시를 받으러 올라간 거였어요. 반장은 휴게 공간에 먼저 가 있었고 우리더러는 2시 50분까지 올라오라고 했어요. 부사수와 함께 반장을 만나기로 한 곳에 갔더니 사람들이 벌써 많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도착하니까 전화가 왔어요. 시끄러워서 바로 못 받고 전화기를 꺼내는데 끊겼어요.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죠. 그러고 신호가 두 번 울렸나?

그때 우루루루 두두두 뭐가 떨어진 거예요. 전화를 어떻게 끊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크레인이 바로 앞에 떨어지니까 피한다고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고, 사람들이 많으니까 사람들한테 부딪혀서 몇 번 넘어졌죠…. 크레인이 저한테서 한 2, 3미터 앞에 넘어져서, 그러니까 진짜… 갈 뻔했어요. 예… 예…. 그 순간에는 진짜 도망갈 생각을 못 했어요…. 크레인이 떨어지는 건 봤는데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확인할 정신이 없었어요. 정신없었어요, 진짜. 근데 마지막에 제 부사수가 저기 반장님 깔려 있다고, 못 일어난다고, 죽은 거 같다고 하는 거예요.

가보니까 복수가 막 차 있더라고요…. 저랑 체형이 똑같은데… 남자들끼리 같이 사니까 빨래 돌리면 지 옷을 내가 입고 내 옷을 지가 입는 사이인데… 복수가 차 있으니까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어요. 저는 아니라고, 반장 아니라고 했어요. 저마이 배가 나올 리가 없다고. 물이 찬 걸 모르고. 크레인에 완전 깔려 있어서 얼굴이 확인이 안 되는 거예요. 바닥을 보고 깔려 있어서…. 모자라도 쓰고 있으면 거기 이름이 있으니까 알 텐데 모자도 어디 날아가고 없고. 나중에 보니 맞더라고요…."

도장공 김명진(남, 38세, 물량팀 특수도장 작업)은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형제처럼 자랐고 조선소 입사 동기인 규성이 형과 함께 3층에 있다가 사고를 당했다. 작업자들이 몰리기 전에 작업에 필요한 도료를 미리 챙겨두고 막 동료들과 앉은 참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쿵 하는 엄청 큰소리가 났어요. 조선소에서는 소음과 진동이 워낙에 빈번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그때 더 커다란 쾅 소리가 났어요. 무슨 일이 났다 싶어 마주 보고 있던 규성이 형에게 '피해!'라고 소리치고 형이랑 동시에 뒤로 뛰었어요. 뛰고 난 후 바로 또 쿵 소리가 났어요.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저희가 앉아 있던 그 자리로 크레인 붐대가 무너져 있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저는 다치지는 않아서 규성이 형을 찾았죠.

형이 한쪽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급히 다가갔어요. 규성이 형을 보니 다리가 부러져서 움직이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본 순간 눈물이 났어요. 추가 사고가 우려돼서 형을 부축해서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는데 저와 같은 팀인 막내가 쓰러져 죽어 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미동도 없이 머리 쪽에 피를 많이 흘리며 누워 있더라고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규성이 형만 부축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겼어요.

한쪽에서 멍한 얼굴로 얼굴에 피를 흘리며 앉아 있는 낯모르는 작업자가 '팔에 감각이 없어요… 제 팔 괜찮은가요… 살려주세요…'라고 하는데도 외면할 수밖에 없었어요. 규성이 형을 옮기고 부축하는 것만도 벅찼으니까요…. 조금 시간이 지나 구급대원들이 오고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평소 같은 직종에서 일하던 한 작업자가 크레인에 깔려 팔다리가 절단된 채 있더라고요."

6층에서 크레인의 충돌을 목격했던 김재영은 아수라장의 현장을 확인하고 동료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전화 버튼을 눌러댔다.

"다들 전화기 꺼내서 정신없이 전화했죠. 저희는 면(파워그라인더 작업 중 쇠를 깎으면 다량의 분진이 발생하는데 분진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상체 전체를 가려 착용하는 장비)을 뒤집어쓰고 작업하니까 전화가 와도 몰라요. 진동으로 해놓으면 좀 느낄까, 그라인더 작업하면 전화 암만 해도 모르거든요. 쉬는 시간은 다 가는데, 이 시간이면 면 벗었을 시간인데도 전화를 안 받으니까 저희도 초조해지기 시작했죠. 옆에 있던 도장부 이모들도 사람들이 전화 안 받는다고 울면서 발 동동 구르는데 너무 혼란스럽더라고요.

이게 웬일인가, 이게 진짜 현실인가, 겁이 나서 밑을 더 이상 못 보겠는 거예요.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감독관들이 빨리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더라고요. 무슨 정신으로 내려왔는지 모르겠어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내려와서 인원 파악하는데, 뭔 얘기를 하는데도 하나도 모르겠고. '인원 파악 다 됐으니까 일단은 귀가를 해라, 당분간 일이 안 될 수 있다, 일하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 일단 가라' 그런 말만 기억나요. 멍하니 나와 숙소까지 걸어가는데 앰뷸런스가 끝도 없이 막 들어와요. 아, 이거 진짜구나…."


 
지난 2017년 5월 1일 오후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져 사상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지난 2017년 5월 1일 오후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져 사상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 김경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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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부상자, 목격자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일하러 나온 곳에서, 누군가는 크게 다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언론들은 일제히 이날의 참사를 보도했다. 요약된 사건 정황은 이러했다. 마틴링게 프로젝트 조립장에서 골리앗 크레인이 프로세스 모듈 동편에 배치된 엘리베이터를 철거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에 모듈 서편에 있는 지브 크레인과 충돌하여 지브 크레인의 붐대가 프로세스 모듈 상부로 넘어졌다.

그 결과는 이렇게 요약된다. 여섯 명 사망. 스물다섯 명 부상. 최악의 크레인 참사.

이전에는 일어난 적 없다는 크레인 간의 충돌 사고는 왜 하필 이날 일어난 것일까. 그 일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인가. 여섯 명 사망. 스물다섯 명 부상. 이 숫자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날 '다친' 사람은 정말 스물다섯 명뿐인가.

부상자 스물다섯 명 중 한 사람인 박철희는 이 사고의 부상자이면서 유가족이다. 사망자 여섯 명 중 한 명인 고 박성우는 박철희의 동생이다. 그리고 박철희는 이 사고로 인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산재로 인정받은 첫 번째 사람이다. 박철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 사고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 중 트라우마로 산재 인정을 받은 노동자는 모두 열한 명이다(총 열네 명을 지원하고 있으며 두 명은 신청이 진행 중이다).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관련 기관을 스스로 찾아 빠르게 산재를 신청한 박철희를 제외한 나머지 열 명은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의 지원을 통해서 뒤늦게 산재 신청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그날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고 호소한 사람이 이 열한 명만은 아니다. 노동시민사회단체 등에서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제기하자 고용노동부는 사고 발생 후 42일 만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위험군을 조사했다. 당시 유효 응답자 859명 중 161명이 사고 현장을 목격한 후 불면증과 심리적 불안 증세를 보여 PTSD 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이 응답자에는 사고가 일어난 날 출근했던 노동자 중 9백 명 가량이 누락되었다. 이들은 사고 후 삼성중공업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고 당일 출근한 사람은 1623명이었고, 그중 최소한 5백 명이 사고의 목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용노동부는 2017년 6월 12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정신적 피해 정도에 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날 총 847명이 참석했다. 이 중에서 사고 당일 출근한 노동자는 686명이었다. 사고 당일 출근한 노동자가 1623명이었으므로 900명 정도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같은 해 9월 재직자 350명, 퇴직자 중 321명을 대상으로 2차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들 중 417명이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그들은 왜 정신적 외상을 입고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사라져야만 했을까. 그들은 지금 어떤 마음과 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해 펴낸 책 <나, 조선소 노동자> 표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해 펴낸 책 <나, 조선소 노동자> 표지.
ⓒ 마창거제산추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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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조선소 노동자 - 배 만들던 사람들의 인생, 노동, 상처에 관한 이야기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코난북스(2019)


태그:#삼성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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