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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어벤저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1920년대로 시간여행을 한 주인공이 피카소, 달리, 헤밍웨이, 피츠제럴드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 후에는 1890년대로 시간여행을 한 주인공 일행이 로트렉, 드가, 고갱 등 인상주의 화가들을 만난다. 1890년으로 시간여행을 한 이유는, 등장인물 한 명이 인상파 화가들이 지배한 1890년을 황금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800년대 후반에 갑자기 나타나 미술을 바꿔버린 인상주의 화가들은 미술계의 어벤저스인가? 1800년대 후반, 그리고 파리라는 공간을 공유한 이들이 미술계에 끼친 영향은 비교할 데가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역사에 나타난 천재 집단은 예상 외로 많다.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해서 그리스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라인업을 비롯해서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나타났고, 같은 시간 중국에는 제자백가가 세상의 모든 사상을 설파했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라는 작은 도시에는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차례로 나타났다.

 
 역사 최강의 물리학자 어벤저스였던 솔베이 학회 기념 사진. 아인슈타인, 보어, 디랙, 슈뢰딩거, 퀴리, 파울리, 플랑크, 로렌츠... 상상도 안 되는 라인업이다.
 역사 최강의 물리학자 어벤저스였던 솔베이 학회 기념 사진. 아인슈타인, 보어, 디랙, 슈뢰딩거, 퀴리, 파울리, 플랑크, 로렌츠... 상상도 안 되는 라인업이다.
ⓒ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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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가 주도하고 케인스와 포스터가 있었던 20세기 초 런던의 블룸스베리 그룹도 만만치 않다. 1927년 솔베이 학회에 참석한 물리학자들은 또 어떤가? 퀴리 부인과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모여서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중 17명이 18개의 노벨상을 받았다.

우주에서 신비한 광석이라도 낙하한 것일까? '어벤저스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천재란 무엇인가

김동인의 단편 <광염 소나타>는 한 천재 음악가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광기를 억누를 방법이 없어 방화, 시체 훼손, 시간과 같은 엽기적 범죄를 저지르지만,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역사에 남을 명곡을 작곡한다. 그를 곁에서 지켜보던 화자는 묻는다. 인류에게 유산으로 남을 불멸의 음악을 위해서라면, 그의 범죄를 용인할 수 있을까?

<광염 소나타>의 주인공 백성수에 비견할 만한 범죄자 예술가라면 카라바조 정도밖에 없다. 카라바조가 대단한 화가인 건 맞지만, 그의 그림 정도로는 그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모차르트나 뉴턴이 <교향곡 40번>이나 <프린키피아>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저런 범죄를 저질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년기의 피카소가 카페에서 냅킨에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카페를 나가면서 그걸 휴지통에 버리려는 그에게 한 숙녀가 물었다. 그 냅킨을 팔지 않겠느냐고. 피카소는 물론 팔 수 있다면서 값으로 수십만 프랑을 불렀다. 숙녀가 따져 물었다. 겨우 몇 분만에 끄적인 것 아니냐고. 그 말에 피카소가 답했다.

"아니요. 40년 걸렸습니다."

특히 현대 미술에 있어서, 저런 그림이라면 나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경우는 흔하다. 하지만 피카소의 경우만 보더라도 사진과 같은 그림을 그리지 못해서 그렇게 그린 것이 아니다. 청색 시대나 장미 시대의 그림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어린 시절에 그린 그림이 전 세계 미술관에 널려 있으니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피카소, <과학과 자비>. 그가 15살 때 그린 그림이다.
 피카소, <과학과 자비>. 그가 15살 때 그린 그림이다.
ⓒ Successio Pic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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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자신만의 예술을 확립하는 데 4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천재란 방화에 의한 불꽃을 보고 폭발하는 영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의 노력에 의해 숙성되는 어떤 것이다. 모차르트 역시 아버지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인 영재교육의 결과라는 것이 정설 아닌가.

영국 낭만주의 3대 시인 중 하나인 퍼시 셸리는 아내와의 결혼에 대해 이렇게 썼다. '너무 싫지만, 미국 땅에서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여자와 결혼한다.' 이 여인이 <프랑켄슈타인>으로 유명한 메리 셸리다. 지금 우리 시대에 누가 더 유명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메리 셸리는 그렇다면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인가?

아니다. 유명한 철학자이자 여권운동가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그녀의 어머니다. 훌륭한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시대를 앞질러버린 메리 셸리와 같은 천재 여성작가를 우리는 알지 못할 것이다.

천재는 시대가 만든다. 하지만 하늘에서 위대한 영혼들이 쏟아지는 특정한 시기가 있어서는 아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는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만든다. 많은 유전적 특질은 후천적 경험에 의해 활성화되어야만 기능하게 된다는 것이 현대 후성유전학의 발견이다.

노벨상에 아직도 목매는 우리나라가 어벤저스의 출현을 보고 싶다면, 어디부터 개혁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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