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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쯤, 5년가량 쓴 조리 주걱(숟가락)을 버린 이후 그처럼 편하게 쓸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해 아쉽다.

적당한 깊이에 굴곡이 완만해서인지 재료나 양념이 거의 들러붙지 않았다. 단단한 소재이나 스테인리스로 된 것처럼 코팅 팬 바닥을 손상시킬 염려도 없어 어떤 재질의 팬이나 냄비 구분 없이 쓸 수 있었다. 한 번에 뜰 수 있는 양이 우리에게 맞는 데다가 일체형이라 씻기 편했다. 내게 딱 맞는 도구였던 것이다.

버리기 전 실리콘 소재로 된 것을 미리 사뒀었다. 그런데 좀체 손에 익숙해지지 않고 있다. 머리 부분이 너무 작아 자주 뒤적거려야 한다. 그렇다 보니 부서지거나 일부가 너무 익는 경우도 있다. 뭣보다 불편한 것은 예전 것보다 자루가 짧다 보니 좀 큰 궁중 팬으로 음식을 하다 아차 하는 순간 손목 부근을 데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불편하며 안전하지 못한 도구인 것이다. 그래서 자주 이용하는 오픈 마켓을 뒤져 쓰던 것과 비슷한 것 두 개를 발견해 찜했었다. 그러나 몸에 좋은 소재라는 이유만으로 모양을 크게 따지지 않고 선택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좀 더 알아보자.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들어보거나 주걱의 깊이를 보는 등 실용성을 따져본 후 구입하자 미루고 있다.

'아마도 조리 주걱 하나 사는데 뭘 그리 고민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요리에 조금이라도 애정을 가져본 사람들이라면 아무 거나 선택하지 못하는 고민을 이해할 것이다. 직접 써봐야만 알 수 있는 미세한 차이, 흔히 말하는 '한 끗' 차이로 요리가 즐거운, 즉 가성비 갑인 조리도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괜찮은 것 같아 구입했는데 몇 번 쓰지 못하거나, 유용하게 자주 쓸 것 같아 큰맘 먹고 샀는데 부엌의 토템처럼 모셔두게 되는 조리도구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쓰지 않고 쉽게 버려지는 물건에 대한 책임도 당연하다. 여하간 조리도구 선택은 요리에 대한 즐거움은 물론 안전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만큼 신경 써야 한다.

그런데 뭘 알아야 신경 쓸 수 있을 것이다. <조리 도구의 세계>(반비 펴냄)는 조리도구 선택의 중요함과 어려움을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할 책이다.

칼의 상태 확인하고 싶다면, 무를 잘라보라
 
 <조리 도구의 세계> 책표지.
 <조리 도구의 세계> 책표지.
ⓒ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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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에 비하면 빈도가 한참 밑도는 가정에서는 그야말로 먹고 치우기 바빠 칼의 가격이나 품질 및 유지 관리 등에 관심을 기울이기가 어렵다. 쓰는 칼의 상태를 적절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일단 손톱 위에 칼날을 사선으로 올려놓아 보자. 미끄러지지 않고 고정되어 있으면 날이 잘 선 것이다.

날의 상태가 좋다면 무를 썰어보자. 일단 가로든 세로든 무를 가르기 위해 두 손을 칼등에 얹어 힘주어 누른다면 칼 상태가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식재료를 잡는 가장 일반적인 칼 다루기 자세로 무리 없이, 영어 표현을 빌리자면 '버터처럼' 썰 수 있어야 효율을 따지기 이전에 안전하다. 또한 한 손으로 칼을 다루더라도 힘을 지나치게 들일 필요 없이 자른 면이 최대한 직각에 가까워야 한다.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지금 손에 쥔 칼의 상태에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부엌에서 내 손의 일부로 화하는 칼이니만큼, 고를 때는 반드시 쥐어봐야 한다. 이때 가장 먼저 따져보아야 할 요소가 무게와 그로 인한 균형이다. 무거워도 손목에 무리가 금방 와서 좋지 않고, 또 가벼워도 날이 빨리 움직여 다스리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칼이 좋다. 엄지와 검지로 손잡이와 날이 연결되는 부분을 감싼다는 느낌으로 쥐고, 도마에 날을 대고 흔들의자처럼 앞뒤로 움직여 확인한다. 다음은 날 길이다. 주연으로 한 자루만 갖춘다면 20센티미터(8인치) 안팎이 좋다. (56~58쪽)

"잘 모르면 무조건 비싼 것을 사면 실패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비싼 칼이 정확하게 좋은 칼은 아니다. 모든 쓸만한 칼이 비싸지는 않으며, 되레 너무 비싼 칼은 가정에서 쓸만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재료에 따른 특징, 사용할 때나 관리할 때의 장단점 등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모든 음식은 손으로 시작한다. 다듬거나, 씻거나, 데치는 등과 같은 준비 과정을 거친 후 무치거나, 삶거나, 볶거나로 완성된다. 그리고 설거지로 끝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요리 과정에 따라 분류, 그에 해당하는 조리도구들을 묶어 다룬다. 그런데 조리 과정 순서대로 다루고 있어 일목요연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떤 칼이 좋을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실패를 막을 수 있을까. 우리 부엌엔 어떤 칼들이 유용할까. 칼은 'C: 자르기/썰기' 편에서 다룬다. 쓰임이 가장 많은 식칼을 시작으로 과도나 빵칼, 가위, 채칼 등 자르는 데 쓰는 여러 가지 도구들과 관련된 도구인 도마까지, 11가지 조리도구들의 쓰임새와 활용, 관리 요령, 선택할 때 참고해야 할 것 등을 들려준다.

책의 내용상 특징 중 하나는 음식을 그다지 자주 해 먹지 않는다거나, 주방이 좁아 한두 개만 갖춰야 할 때를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단 하나만 갖출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면 어떤 제품이 최선일까?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는 팔방미인 같은 조리도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힌트를 얻고 싶거나 좁은 부엌 사정을 염두에 두지 않고 여러 개로 구성된 세트 상품을 구입한 후회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유용할 것 같다.

책이 다루는 조리도구는 60여 가지. 일회용 비닐장갑이나 지퍼백, 수세미 등처럼 아주 사소한 도구들부터 냄비나 팬, 에어프라이어 등처럼 중량감 있는 것들까지, 아마도 대부분 가정에서 쓸 도구들의 전반적인 것들을 다룬다. 그래서 오랫동안 써왔음에도 실은 아는 것이 별로 없던 조리도구들에 대해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집에 스테이크 칼 하나쯤 있으면 좋은 이유
 
알루미늄(냄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냄비의 세계는 스테인리스를 차출한다. 알루미늄을 가운데, 즉 '코어'에 두고 안팎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한 겹씩 감싸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부각시켰다. 따라서 이 지점, 즉 알루미늄을 감싼 스테인리스가 새로운 냄비의 출발점인데 다만 유사품을 경계해야 한다.

요즘도 인터넷 오픈 마켓을 뒤지면 심심찮게 나오는 '통삼중 바닥'말이다. 정말 센티미터 단위로 헤아려야 할 정도로 두툼한 바닥을 자랑하는 냄비가 눈에 심심찮게 들어오지만 결코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열효율도 차이가 나지만 사실 바닥만 통인 냄비 또한 가벼워서 엎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닥뿐만이 아니라 전체가 통으로 삼중처리가 되었는지 반드시 확인하자. (212~213쪽)

책에서 알게 된, 올여름 유용할 팁. 토마토나 복숭아처럼 무른 과일들은 껍질 벗기는 것은 물론 모양 나게 써는 것도 만만찮다. 과도나 일반 식칼로 껍질을 벗기자면 매끄럽게 벗겨지지 않는 데다가 뭉개지거나 즙이 떨어지기 일쑤라 어떻게 잡아야 할지부터 여간 고민스러운 것이 아니다. 감자껍질 필러처럼 생겼으나 날이 깔쭉깔쭉한 필러로 껍질을 벗겨보자. 전용 필러라니 말이다.

그리고 빵칼이나 스테이크 칼로 썰어보자. "빵에 버터를 바를 때 쓰는 '버터나이프'의 업그레이드 버전인데다가, 토마토나 복숭아 등 일반 식깔로 썰면 눌려 뭉개지는 섬세한 식재료를 무리 없이 썰어준다.(63쪽)"니 말이다. 참고로 책은 빵을 통째로 썰어 먹는 일이 그리 잦지 않다면 작은 스테이크 칼 하나만 갖출 것을 권한다.

조만간 달걀 썰개를 장만할 예정이다. 샐러드용 삶은 달걀이나 써는 정도로 생각했던 이 도구가 키위나 양송이버섯 같은 것들을 균일하고 깔끔하게, 그리고 한 번에 썰 수 있다니 말이다. 달걀 썰개 편을 다시 읽어야겠다. '팁'을 얻으려면 말이다. 모든 도구 편에 표지 속 그림들이 있어서 보는 즐거움도 만만찮다.

조리 도구의 세계 - 행복하고 효율적인 요리 생활을 위한 콤팩트 가이드

이용재 (지은이), 정이용 (그림), 반비(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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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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