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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기사 수정 :  13일 오후 5시 30분]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사망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부인과 매일 아침 함께 출근하다 지금은 혼자 출근할 수밖에 없다'는 유족의 말에 2014년 과로사한 여동생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 지사의 여동생도 청소노동자였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사망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부인과 매일 아침 함께 출근하다 지금은 혼자 출근할 수밖에 없다"는 유족의 말에 2014년 과로사한 여동생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 지사의 여동생도 청소노동자였다.
ⓒ 이재명캠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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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 등의 표현으로 논란을 빚은 구민교 서울대 교수가 12일 학생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구 교수는 사의 표명 뒤 SNS에 올린 글에서도 "외부 정치 세력이 우리 학내 문제에 간섭할 빌미를 줬다"며 "외부에 계신 분들도 저와 같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달라"고 말했다. 유족과 함께 과도한 노동, 직장 내 갑질 문제 등을 폭로한 서울대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아래 노조) 등을 '외부 세력'으로 치부한 것이다.

문제는 숨진 청소노동자 이씨는 물론 서울대 기계정비노동자로 근무하는 남편 모두 노조원이었다. 구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이들 모두 외부 세력이 되는 셈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11일 서울대를 방문, 유족과 학교 측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학교 측이 (노조도)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게 기회를 주면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많은 분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서울대는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조사단을 만들자는 유족과 노조의 요구를 거부한 채 독자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가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려는 인상 주는 서울대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청소노동자 이아무개(59)씨의 사인은 급성심근경색 파열. 노조는 "이씨가 서울대 측의 군대식 업무지시와 과도한 노동 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씨는 학생 정원 196명의 엘리베이터 없는 4층 건물 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며 대형 100ℓ 쓰레기봉투 6~7개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등을 날라야 했다.

지난달 초 안전관리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는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직장 내 갑질'까지 더해졌다고 한다. 노조는 새 팀장이 매주 수요일 청소노동자 회의를 열고 노동자들에게 정장과 구두 등 최대한 멋진 모습을 갖추도록 요구하고, 제대로 된 복장을 하지 않으면 모욕을 줬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조 등의 주장에 따르면, 새 팀장은 회의에 참석한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매주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와 한자로 쓰게 하거나 기숙사 개관연도 및 각 건물의 준공연도를 묻는 문제였다. 시험이 끝나면 채점을 해 나눠주고 누가 몇 점을 맞았는지 공개하는 등 노동자들에게 모욕감과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 고인의 남편(모자이크)이 참석해 "제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환경에서 근로를 이어가선 안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서 섰다"며 "강압적 태도로 근로자를 대우해주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 고인의 남편(모자이크)이 참석해 "제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환경에서 근로를 이어가선 안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서 섰다"며 "강압적 태도로 근로자를 대우해주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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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남편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제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환경에서 근로를 이어가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서 섰다. 근로자는 적이 아니다"라며 "근로자는 근로하러 온 것이지 죽으러 출근한 게 아니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고려해 꼭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소식을 접한 이재명 지사는 SNS에 고인 관련 기사를 공유하면서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삐뚤삐뚤 쓰신 답안지 사진을 보며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온다"고 분노했다. 그는 또 "정치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도 서럽지 않은 세상을 꼭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이재명 지사는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보며 7년 전 세상을 떠난 여동생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지사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대를 방문해 유족을 만나 위로하면서도 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다. 이 지사의 여동생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가 2014년 8월 새벽청소 중 화장실에서 과로에 의한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 지사는 경기도지사 취임 이후 경비원·청소노동자 등의 삶을 개선하는 정책을 특히 공들여 추진해왔다.

학생처장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 발언까지... 2년 전엔 이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노조와 이재명 지사에 대한 서울대의 반응은 상식을 넘어섰다. 서울대 학생처장인 구민교 교수는 SNS에 올린 글에서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역겹다"며 "언론과 정치권과 노조의 눈치만 봐야 한다는 사실에 서울대 구성원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노조와 이재명 지사가 고인이 갑질을 당한 것처럼 왜곡했다는 취지였다.

노조는 즉각 비판 성명을 내고 "기득권에 안주해 차별에 길든 나머지, 공동체와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 채 내뱉는 이러한 발언은 독버섯처럼 번지고, 다시 차별을 영속시키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또 "서울대는 폭로되어 일이 커지는 것에 분노하지 말고, 그렇게 폭로될 사실이 있음에 분노하고 부끄러워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고인이 숨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제2공학관 지하 1층에 위치한 청소노동자 휴게실의 모습이다. 냉난방조차 되지 않아, 겨울 냉기를 막기위해 천장 틈새를 막은 모습도 사진에 찍혔다.
 고인이 숨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제2공학관 지하 1층에 위치한 청소노동자 휴게실의 모습이다. 냉난방조차 되지 않아, 겨울 냉기를 막기위해 천장 틈새를 막은 모습도 사진에 찍혔다.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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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망한 것은 이씨가 처음이 아니다. 불과 2년 전인 2019년 8월 9일 청소노동자 A(67)씨가 서울대 공과대학 제2공학관(302동) 직원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다 숨졌다. 지하 1층 계단 밑에 있는 1평 남짓(3.52㎡) 비좁은 직원 휴게실은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없는 작은 창고였다.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인한 끈적끈적한 열기와 퀴퀴한 곰팡내가 가득했다. 그나마 주먹만 한 환풍기가 휴게실의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고인의 동료들은 차마 '휴게실'이라고 할 수 없는 그곳에서 "건강한 사람도 아파서 나간다"고 증언했다.

당시에도 정치권과 노동단체, 서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을 방치한 서울대 측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적어도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 "외부 세력 간섭" 등 혐오에 기반한 공격적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SNS를 통해 "서울대 노동자들의 환경과 공간 부족은 어디서 올까? 솔직한 내 대답은 기본적으로 대학 본부나 집행부가 아니라 교수 갑질에 의한다"면서 "그저 자기 혼자 힘으로 얻은 위치와 환경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이 서울대 교수 중에 너무 많은 탓"이라고 일갈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청소노동자들을 학교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잘못된 '인식'을 꼬집은 것이다.

서울대는 2년 전 35도 폭염 속 창문도 에어컨도 없는 휴게실에서 사망한 청소노동자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책임 회피에 연연하며 권위적이고 천박한 인식만 드러냈다. 학교 공동체 구성원인 노동자와의 공감과 소통은 커녕, 스스로 만든 철의 장막에 갇혀버린 것이다. 서울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이러다간 서울대가 국민의 '외부 세력'으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태그:#이재명, #서울대청소노동자, #이재명여동생, #서울대학생처장, #직장내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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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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