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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천막 기자실(프레스 다방)을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천막 기자실(프레스 다방)을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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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해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공간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중세 도시의 모습과 자본주의 도시의 모습이 다른 이유는 중세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자본주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도시나 집이라는 공간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사항이 반영되어 형성되지만, 그런 이유로 만들어진 공간은 동시에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중세 도시의 성당을 중심으로 살았던 사람들, 조선의 4대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자본주의 축적 시스템에 적합한 메트로폴리스의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사고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말은 일단 옳다. 대통령 집무실을 재배치해서 대통령과 대통령의 사람들의 사고를 일신하겠다는 의욕에 대해 뭐라 할 사람은 없다. 그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결정하고 발표하는 절차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3월 14일 "국방부 본관동을 비울 수 있는 계획 수립"을 국방부에 요구했고, 15일에는 "3월 31일까지 이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한다.

윤석열 당선인은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이사를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4인 가구가 새로운 집을 얻어서 이사를 하는데도 날을 잡고 이삿짐센터와 계약을 하고 이것저것 처리하려면 적어도 2~3주가 걸린다. 새로 들어갈 집에 '도배장판'이라도 제대로 할라치면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그런데 국방부 청사 이전과 대통령 집무실 마련을 위해 제시한 시한이 고작 2~3주라니,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봄꽃이 지기 전에 국민들에게 청와대를 돌려드리겠다"는 선언을 해놓고 그에 맞추어 이전을 하려다 보니 무리수가 된 것인데, 백년대계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번에 이전하는 '대통령 집무실'이나 '대통령 관저'가 5년 동안만 사용할 시설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이번 사태는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결정 방식에 관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사다. '용산 이전'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반대'가 58%, 53%이고 '찬성'은 33%, 44% 정도에 그친다. 불과 보름 전 선거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얻었던 지지율 48.56%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다. '용산 이전'에 소요되는 비용에 관한 자료가 정확히 제시된다면 찬반 비율의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 국방부 앞 삼각지역 교차로는 출퇴근시 잦은 교통 체증을 빚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 국방부 앞 삼각지역 교차로는 출퇴근시 잦은 교통 체증을 빚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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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과 그의 사람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한다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맞지만, '공간'보다 더 소중한 것, '공간'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공감(共感)'이라는 사실이다. 국민의 공감이 반영되어 수치로 나타난 것을 선거에서는 '지지율'이라 하고 평상시에는 '여론'이라 부른다. 국민과 공감하는 정부는 성공하지만 그렇지 못한 정부는 실패한다. 

'공감'은 왕이 백성들에게 베풀었던 '동정심'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수동적인 입장을 의미하는 동정과 달리, 공감은 적극적인 참여를 의미하며, 관찰자가 기꺼이 다른 사람의 경험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경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공감'과 '동정'의 차이를 가장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아메리카 인디언 수족(Sioux)이었던 듯싶다. 수족의 기도문에는 "아! 위대한 영혼이여, 상대방의 모카신(moccasins)을 신고 여러 날을 걸어보지 않았다면 내가 그를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도록 하소서"라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모카신'은 인디언들이 신었던 뒤축이 없는 사슴가죽 신발인데, 아마도 딱딱하고 거친 가죽으로 만든 것이라 모카신을 신으면 몹시 발이 아팠던 것 같다. '공감'이란 어떤 사람의 모카신을 신고 한참을 걸어보는 것이고, '동정'은 모카신을 신은 사람들을 보고 그저 그들의 발이 아픈 것을 딱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디언들은 삶의 지식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윤석열 당선인과 그의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뿐만 아니라 5년 동안 시행할 모든 정책의 최종 결정 권한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인디언 수족의 기도처럼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직접 모카신을 신고 걸어보겠다는 마음, 다시 말해 공감 능력이 없다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명제나 다른 어떤 수사도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말한다. "공간이 아니라, 공감이 의식을 지배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태그:#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공감의 시대 , #청와대 이전, #인디언 수족, #국민의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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