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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보수 진영의 공격이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28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가리켜 "판문점 폭파 때 뇌사 상태에 빠졌고 ICBM 발사로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국민의힘 조태용 의원)는 질타까지 쏟아졌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섣불리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게 과연 온당한가? 그러나 이는 아직 소생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연명치료를 서둘러 중단해버리는 '살인 행위'와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의 대북정책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에서 교착 상태인 북미 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9년 7월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 앞에서 대화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에서 교착 상태인 북미 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9년 7월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 앞에서 대화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
ⓒ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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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공들였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당시 북한 대표단의 참석을 계기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고, 이는 그해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졌다. 그리고 5월과 9월 잇달아 남북 정상이 만나는 등 남북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자 노력했다. 역사상 최초로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내는 성과도 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2019년 2월 베트남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 노딜'로 끝나면서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2월의 마지막날 회담이 결렬되면서 바로 다음날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표정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두웠음을 분명히 기억한다(그때 나는 기념식 현장에 있었다).

2020년 6월 16일 개성에 설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북한이 일방적으로 폭파했을 때는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9년 3월1일 서울 광화문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진관사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9년 3월1일 서울 광화문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진관사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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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5년, 천안함·연평도와 같은 비극은 없었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틀렸다고 단정할 순 없다. 문재인 정부는 불안정한 남북관계를 안정화하기 위해 임기 초부터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얼어붙은 것은 미국과 북한의 동상이몽 때문이지, 결코 그 책임을 문재인 정부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북미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양자 간의 화해를 위해 '운전자'로서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

나는 오히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전쟁 위기로 비화할 수준의 군사적 도발이 없었던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3월 26일은 천안함 폭침 12주기였다. 그렇게 '안보'를 강조했지만 정작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DMZ 목함지뢰 사건 등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얼마나 끊임없이 이어졌던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에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며 거의 전쟁 직전까지 몰리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2015년 8월에 벌어진 DMZ 목함 지뢰 사건의 충격과 공포는 더욱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나는 한창 군 복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쉴새 없이 흘러나오는 속보에 병사들은 모두 긴장한 채 생활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015년 8월 10일 안영호 당시 국방부 조사단장(국방전비태세검열단 부단장)이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에 살상용 목함지뢰를 매설한 행위와 관련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목함지뢰 조사결과 발표하는 안영호 조사단장 2015년 8월 10일 안영호 당시 국방부 조사단장(국방전비태세검열단 부단장)이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에 살상용 목함지뢰를 매설한 행위와 관련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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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나는 비전투병(유해발굴병)이었음에도, 행정반에 긴급 무전기가 배치되면서 혹시 모를 '전시 준비 모드'에 돌입했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전쟁 나면 어디로 배치되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인 우리는 전사자들 시신을 수습하러 간다더라"하는 카더라 통신이 떠돌았다. 전쟁이 나면 당장 나가서 싸워야 하는 군인이었기에, 전쟁의 공포는 더욱 뼈저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문재인 정부 5년 간 그런 전쟁의 공포를 느낄 만한 수준의 도발은 없지 않았나. 이는 남북관계가 지금보다 더 악화되는 것만큼은 막고자 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물론 북한은 마치 떼쓰는 아이처럼, 시시때때로 아슬아슬한 수위의 도발을 자행하며 한국 정부를 조롱하고 국민들을 분노케했다. 그 태도가 매우 괘씸한 것은 사실이다. 감정적으로는 나 역시 북한에 '선제 타격'을 해서 '도발 원점'까지 박살내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 국민들은 술자리에서 북한의 반민족적·반인륜적 행보에 비난을 쏟아낼 수 있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을 보호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국가에는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잘된 정책 계승"... 대북정책도 포함돼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 마련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들어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 마련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들어서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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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

평화통일은 대한민국 헌법에서부터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책무다.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원회는 벌써부터 'MB 2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명박 정부 출신 인사들로 계속 채워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리고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MB 정부의 그것과 비슷한 기조로 나아가려는 듯하다.

한 달여 뒤면 집권 여당이 될 야당은, 벌써부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사망 선고를 내리면서 시종일관 강경 드라이브로 나아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한반도에 또 다시 제2의 천안함 폭침, 제2의 연평도 포격전이 되풀이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딨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무조건 옳았다고 옹호할 생각은 없다.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엔 그저 덮어놓고 쉬쉬하기에만 급했던 기억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이끌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일부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부가 비굴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를 낼 때는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쌓아올린 남북간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수준의 강경한 태도는 위험하다. 비굴한 평화를 바라지는 않지만 젊은 국군 장병들이 단 한 명이라도, 손톱만큼이라도 다치는 것은 더더욱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반도에 다시는 군사적 충돌이 없기를 바라면서 '종전선언'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만큼은 분명 옳았다고 믿는다.

윤석열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 MB 시절로 회귀할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지난 3월 28일 청와대 회동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잘된 정책은 계승하겠다"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약속했다. 그 잘된 정책 중에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도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곧 들어설 윤석열 정부에 이러한 의지가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지만, 그래도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며 다시 한 번 간언하고자 한다.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죽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먼 훗날 이 땅 위에서 살아갈 후손들의 미래를 먼저 생각해달라."

태그:#문재인, #윤석열, #김정은, #대북관계, #평화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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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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