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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서 출발한 직후 모습, 구름이 잔뜩 끼어 비가 올가봐 걱정인 상태
▲ 출발한 직후 알베르게에서 출발한 직후 모습, 구름이 잔뜩 끼어 비가 올가봐 걱정인 상태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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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3월 29일 까미노 2일차.
Guillena-> Castilblanco de los Arroyos 17.9km 약 5시간 10분.


오늘 걸을 거리는 17.9km로 어제보다 4km가량 짧다. 어제보다 거의 1시간 가까이 덜 걸어도 된다. 걷는 부담이 적어서 기분도 가벼워진다. 아침 출발을 늦췄다. 8시쯤 출발했다. 배낭도 좀 달리 쌌다. 배낭속의 물건 배치를 달리 해서 높이를 낮추어 목위로 올라오지 않게 했다. 먹거리 준비도 달리 했다.

오늘 가는 길에는 목적지까지의 18km 구간에 식료품점도 바(bar)도 없다. 중간에 물을 사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살 곳이 없단 얘기다. 간식이든 점심이든 물이든 스스로 준비해가야 한다. 18km 정도면 5시간~5시간 반 정도 걸을 생각하고 적어도 6시간 이내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물도 필요하지만 아침엔 좀 썰렁하고 추울 수 있을 것 같아 따뜻한 마실거리로 뭘 준비할까 생각하다가 간편국을 준비하기로 했다. 600ml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넣고 닭곰탕 블록 2개를 넣으면 바로 풀어진다. 건더기도 많지 않기 때문에 물처럼 마실 수 있다.

오뚜기에서 나온 1회용 버터 크기만한 블록 모양의 국이다. 사골우거지국, 미역국, 황태북엇국, 닭곰탕, 버섯해장국 등 5~6가지를 가져갔다. 블록 1개에 10g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것조차도 무거워서 짐에 넣지 않고 있었다. 짐 싸는 걸 보던 아들도, 동네에 사는 친구도 말하길, 많이 무겁지도 않고, 가끔 한국 음식 먹고 싶거나 아플 때 유용할테니 가져가라고 권하기에 16개 넣어서 160g정도로 최소화했다.

사용법도 간단하다. 블록 1개에 뜨거운 물 200ml 정도를 부으면 국이 된다. 그릇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아주 간편하다. 마실 물과 텀블러에 준비한 닭곰탕 정도만 간단히 준비해서 출발한다.
  
10g정도의 블록으로 되어 있어 휴대에 편리하고 뜨거운물 200ml에  이 블록 1개만 넣으면 간편한고 훌륭한 국이 됨. 그냥 이것만 음료처럼 마실수도 있고 밥과 같이 먹어도 됨. 이번 여행에 요긴하게 이용.
▲ 인스턴트 블록 국 10g정도의 블록으로 되어 있어 휴대에 편리하고 뜨거운물 200ml에 이 블록 1개만 넣으면 간편한고 훌륭한 국이 됨. 그냥 이것만 음료처럼 마실수도 있고 밥과 같이 먹어도 됨. 이번 여행에 요긴하게 이용.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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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길이 시작되고 길가에는 키큰 선인장들이 즐비하다.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중간중간 붉은색 양귀비꽃도 많다. 양귀비가 들꽃처럼 그림 속에 등장하는 클림트작품이나 모네의 작품이 떠올랐다. 양귀비가 마치 들꽃처럼 흔하게 피어 있다. 씨뿌려 재배하진 않은 것 같다. 양귀비를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빨간색 양귀비꽃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도 놀랍지만 그 강렬한 색이 아름다워 마음을 뺏기고,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찍기 바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쪼그리고 앉아 찍는 게 쉽진 않으나 그래도 여기 아니면, 지금 아니면 언제 보랴 싶어서 보일 때마다 열심히 찍었다.
 
들꽃들 속에 아무렇지 않게 피어난 양귀비꽃. 강렬한 빛깔과 가냘픈 꽃잎이 눈길을 끈다. 모네나 클림트의 작품이 연상되었다
▲ 들꽃 들꽃들 속에 아무렇지 않게 피어난 양귀비꽃. 강렬한 빛깔과 가냘픈 꽃잎이 눈길을 끈다. 모네나 클림트의 작품이 연상되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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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씨앗만은 불에 타지 않게 만들고 주변의 경쟁자는 물론이고 자기자신마저 불태워 재로 만든후 그 재로 후손이 성장하기 좋게 만든다는 이기적인 꽃, 자살하는 꽃으로도 불린다 한다.
▲ 시스투스꽃 자신의 씨앗만은 불에 타지 않게 만들고 주변의 경쟁자는 물론이고 자기자신마저 불태워 재로 만든후 그 재로 후손이 성장하기 좋게 만든다는 이기적인 꽃, 자살하는 꽃으로도 불린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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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상적인 건 해당화처럼 생긴 하얀꽃이다. 꽃은 제법 크나 꽃잎이 가냘프고 예뻐서 이 꽃에도 마음을 뺏겼으나 이 꽃에 무서운 꽃말이 있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시스투스(Cistus)라는 꽃인데 북아프리카나 지중해분지 등 햇빛이 내리쬐는 질이 나쁜 토양이나 바위에서도 잘 자라서 록 로즈(Rock Rose)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꽃말도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인기'이고 일본에서는 '나는 내일 죽습니다', 미국에서는 '임박한 죽음'이라고 한다. 자폭 하는 꽃으로도 유명해서 '자살하는 꽃'이라고도 불린다.

시스투스의 주변에 나무가 빽빽해져 공간적인 여유가 없어지고 온도가 35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시스투스가 휘발성 오일을 뿜어 스스로 불태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단다. 그때문에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서는 시스투스 때문에 산불이 자주 나기도 한다고.

자연발화 전에 이 식물이 하는 행동은, 불에 타지 않고 불에 잘 견디는 내화성 씨앗을 몸속에 숨기고 있다가 주변이 잿더미가 되고 난 다음 잿더미 속에서 싹을 틔워 재를 양분 삼아 성장한다고 한다.

이렇게 이기적으로 번식한 꽃이 하루밖에 피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기막히게 한다. 유럽에서는 이 휘발성오일을 채집해 유명한 향수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걷는 동안 이 시스투스꽃을 많이 보았다. 농장에서 집중적으로 키우는 듯 했다.    
출발한지 1시간쯤 지난 길은 붉은색 황톳길이다. 길가엔 선인장이 줄지어 서있는데 죽은 아이들도 많다. 이런 길에 비오면 걷기가 엄청 힘들 것 같다
▲ 황톳길 출발한지 1시간쯤 지난 길은 붉은색 황톳길이다. 길가엔 선인장이 줄지어 서있는데 죽은 아이들도 많다. 이런 길에 비오면 걷기가 엄청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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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투스와 그 외의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어 순례객들에 기쁨을 준다
▲ Guillena에서 Catilblanco로 가는 길 시스투스와 그 외의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어 순례객들에 기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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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며 걷느라 다리 아픈 것도 모르고, 지루한 줄을 몰랐다. 배낭을 내려놓고 따로 쉬지 않아도 사진 찍는 틈틈이 멈추는 것이 휴식이 되기도 한다. 틈틈이 목이 마를 때 텀블러의 닭곰탕을 마시니 연해서 심심하긴 하지만, 맹물 마시는 것보다 좋았다.

갈증해소와 에너지 충전 모두 가능했다. 친구에게도 나눠 줬더니 친구가 환상적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뜨거운 것을 마시니 속이 따뜻해지는 게 기분이 좋다. 무게 때문에 고민 끝에 가져온 텀블러인데 아주 유용했다. 가져오길 잘했단 생각이다.
 
찻길 옆에 나란히 걷는 길이 제법 있다. 스페인의 봄을 느끼게 해주는 들꽃들
▲ 길 찻길 옆에 나란히 걷는 길이 제법 있다. 스페인의 봄을 느끼게 해주는 들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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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꽃밭을 걸어온 느낌이다. 올리브 농장 사이로 걷는 기분이 색달랐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체험할 수 없는 풍경이다. 넓게 펼쳐진 올리브나무 밭만 보아도 평화로운 느낌이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때로는 흐드러지게 핀 들꽃 들판을 지나고 때로는 밀밭을 지난다. 출발한 지 2시간쯤 후부터는 오르막이다. 들판이었던 길이 둘레길처럼 변한다. 마치 야트막한 동네뒷산같은 길이다. 걷고 걷고 또 걸어 알베르게에 1시 10분쯤 도착했다.
 
Castilblanco입구에 있는 조형물
▲ Castilblanco입구 Castilblanco입구에 있는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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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비하면 5km 정도 덜 걸었는데도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피곤했다. 허리도 조금 아프고 골반도 어깨도 좀 뻐근했다. 가지고 온 안티푸라민을 종아리에도 발바닥에도 허리쪽에도 펴 발랐다. 근육통으로 가지 않길 바라면서.

씻고 빨래한 후, 식당에 가려면 알베르게가 마을 초입이기 때문에 중심가로 내려가야 한다. 'La Venta' 식당. 맥주와 엔살라다를 주문했다. 샐러드 비주얼이 훌륭하고 맛도 좋았다. 특히 샐러드에 함께 나온 참치가 한국에서 먹던 통조림과는 달랐다. 부서진 참치가 아니라 큰 덩어리로 나왔는데 아주 고소하고 맛있다.

샐러드에 있던 아스파라가스 통조림도 새로운 맛이었다. 발사믹 식초도 적당히 뿌려져  시지도 않고 먹기에 좋았다. 한끼 식사로 가능할 만큼 아주 푸짐했다. 맥주 2병도 같이 포함해서 15.6유로. 가격도 맘에 든다. 이제 2시 반밖에 안 되어 늦은 점심인 셈이다.

식사후 마트에 가서 물 1.5L, 작은 쥬스 2개 Yatecomo라는 스페인 컵라면, 도너츠 등을 사다가 저녁은 간단하게 먹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가져온 1회용커피 드립백으로 드립커피까지 마시니 완벽했다.

친구는 알베르게 봉사자한테 간절히 원하던 순례자 메뉴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물어서 먹고 오더니 너무 짜서 먹느라 고생했다고 했다. 알베르게 비용은 기부제였다. 얼마를 내야 할지 몰라서 친구에게 물으니(친구는 8년 전에 프랑스 길을 걸었다) 5유로쯤 내면 되지 않겠냐기에 나도 기부함에 5유로를 넣었다. 내일은 30km로 오늘보다 3시간 이상을 더 걸어야 하니 일찍 쉬어 두자. 내일도 잘 걷기를 바라면서.
 
샐러드-한끼의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맥주와 먹기에도 좋음.
▲ 엔살라다 샐러드-한끼의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맥주와 먹기에도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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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쓴 돈은 알베르게 기부 5유로, 점심 엔살라다+맥주(크루즈캄포) 2병 15.6유로 마트(물 컵라면,도너츠) 4.43유로, 총 25.03유로.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시스투스, #CASTILBLA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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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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