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을 함께 하신 두 분, 앞으로도 오래도록 함께 하실 겁니다.
이승숙
드디어 수술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수술이 잡혀 있었다. 병실을 떠날 때까지도 아무런 내색을 안 하던 어머니가 수술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아무 말씀도 없이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시는 거였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말씀 드렸다.
"어머니, 수술실에 들어가면 어머니 혼자라서 무섭겠지만 의사들을 믿으세요. 한 숨 푹 자고나면 어머니 몸에 있던 암 덩어리 다 떼어내고 괜찮을 거예요. 마음을 편안히 가지시고 한 숨 푹 주무신다 생각하세요. 무섭고 외롭겠지만 밖에 우리가 있어요. 어머니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들이 있으니까 어머니 힘 내시고 이겨내세요."평소에 자잘한 감정을 잘 보이시지 않던 어머니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어머니는 내 손을 놓지를 않았다. 어머니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느껴졌다. 강건하시고 담대하신 분이시지만 수술을 앞에 두고는 두려워졌던 것이다. 내가 다시 살아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온갖 생각이 다 드실 거였다.
다시 찾은 행복, 오래오래 영원하길...의사는 어머니의 자궁과 난소 그리고 복막과 임파선을 절제할 거라고 했다. 수술 시간은 6시간 가까이 걸릴 거라고 했다. 다른 부위로는 암이 퍼지지 않았지만 복막과 임파선은 개복해봐야 알 수 있다며 그게 조금 염려스럽다고 했다.
어머니를 홀로 수술실로 보내 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5시간이 지나고 6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수술종료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나왔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난소암은 조기 발견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환자들이 3기가 지나서 병원에 온다고 했다. 그 때쯤이면 이미 다른 장기로도 암이 퍼져서 손 쓰기에는 많이 늦어버린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다른 장기로의 전이도 없는 데다가 개복을 하고보니 복막과 임파선도 비교적 깨끗하다고 했다. 이렇게 조기발견된 경우가 별로 없다면서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는 거였다.
의사의 설명을 들으니 또 다시 환호가 나왔다. 큰 수술을 막 끝낸 상태였지만 워낙에 큰 병이라고 초진을 받았기 때문인지 우리는 그 정도만 해도 정말 행운으로 여겼다. 정말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사지에서 살아 돌아오신 거다.
이제 우리 집에는 다시 웃음이 찾아왔다. 태풍을 몰고 올 듯이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지만 다행히 태양이 다시 찾아왔다. 어머니의 암 발병으로 인해서 우리 가족은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어머니가 우리 곁에 계시다는 그것 자체가 자식에겐 더할 수 없는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힘든 수술을 잘 이겨내신 어머니는 지금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서 몸을 보하고 계신다. 수술보다 더 힘든 게 항암치료라고 한다. 난소암은 약물요법으로 치료가 잘 된다고 한다. 어머니의 경우 방사선 치료는 하지 않아도 될 거 같고 약물 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많이 매쓰껍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한다. 구토 증상으로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수술로 생명은 연장했지만 산다고 사는 게 아닌 삶을 사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어머니는 잘 이겨내시리라고 본다. 우리 어머니니까, 어머니는 강하시니까 반드시 이겨내시리라고 본다.
어머니의 빠른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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