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거 엄마가 난소암이란다. 우야노?"

시어머니, 우리 곁에 오래 계셔 주세요

등록 2007.09.09 11:50수정 2007.09.12 16:1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미가 울고 바람이 건들대는 한낮이다. 저 멀리 찻길로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고 간다. 아무 일도 없이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온다.


별 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평화로운 삶이란 그런 것이리라. 아무 일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밋밋한 하루가 오히려 다행한 일인 것이다. 잔잔한 일상이 바로 평화로운 나날이고 또 행복한 삶인 것이다.

근 스무 날을 근심 속에서 보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동거리며 보낸 나날이었다. 잔잔한 호수 같던 우리 집에 커다란 바위가 굴러온 것이다. 평소에 잔병치레 한 번 없이 건강하셨던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거였다. 어머니 배 속에 암 덩어리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거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일상이 평화고 행복이다

어머니의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게 지난 8월 17일이었다. 그 날 저녁답에 아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의 아랫배에 뭔가가 만져져서 병원에 갔는데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진단을 받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이 주는 무게는 실로 컸다. 작은 병이었으면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은 안 할 거 같았다. 예사 병이 아니란 걸 우리는 단박에 직감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바로 대구의 큰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았다. MRI 촬영을 하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기만 했다. 사진을 판독한 결과 '난소암'이라고 했다. 수술을 해도 길어야 2년 정도 밖에 살 수 없을 거라고 했다.


a

어머니는 슬하에 5남매를 두셨습니다. 모두 이 사회에 한 몫을 하는 사람으로 훌륭하게 자랐습니다. ⓒ 이승숙


그 날부터 우리 집은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암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던 우리 형제들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우왕좌왕하며 난소암에 대한 것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난소암은 주로 완경기 이후의 여성들이 잘 걸리는 암인데 이상 징후가 잘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명 '소리 없는 살인자'라고 불려진다고 하였다.

난소암은 초기 발견이 쉽지 않다. 이상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헛배가 부르고 아랫배가 더부룩하며 오줌이 자주 마렵다거나 하는 이상 신호가 오지만 경미하고 또 모호하기 때문에 거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간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랫배에 뭔가가 만져져서 병원을 찾으면 이미 암이 많이 진행한 상태여서 손을 쓸 틈이 없게 된다.

소리없는 살인자, 난소암...이상 징후 없어서 알아채기 힘들어

난소암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완치율이 매우 높다. 난소 이외의 다른 곳에 퍼지지 않은 상태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수술 후 5년 생존율, 즉 완치율이 85~95%나 된다. 그러므로 매년 정기적인 부인암 검진을 받아 초기 증상이 모호한 난소암을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자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암은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졌다. 초기도 아니고 거의 말기라는 말을 듣고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2년도 못 살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전혀 현실감이 들지가 않았다. 어떻게 어머니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잔병치레 한 번 없이 건강하셨던 분이 앞으로 2년도 못 산다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우리도 다른 암 환자들의 집과 똑같은 길을 걸어갔다. 불안해하고 안타까워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에 절망하면서 암과의 결전을 치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a

새댁 시절의 어머니. ⓒ 이승숙


암 환자가 있는 집이 걸어가는 길은 대동소이할 거 같다. 처음엔 절망해서 울고 그 다음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낀다. 말기 암의 경우 할 수 있는 거는 아무 것도 없다. 해볼 건 다 해보겠지만 이미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수술 밖에 없다. 수술을 하면 암을 다 떼어내고 다시 살 수 있을 거 같은 그런 기대를 안고 수술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말기 암의 경우 수술을 해도 생명을 연장할 방법은 미약하지만 그렇다고 수술을 안 할 수도 없다. 특히 환자가 연로하실 경우, 수술을 하면 힘을 소모하게 되고 그래서 더 안 좋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수술 밖에는 길이 없다. 환자는 수술에 온 기대를 걸게 되고 가족들 역시 수술이 꼭 좋은 길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

수술을 해도 별 소용없지만 그래도...

수술을 해도 오래 못 살고 안 해도 오래 못 살 경우 그렇다면 수술을 하는 게 낫다. 그래야 환자도 가족도 여한이 없게 되는 것이다. 할 거 다 했다는 그런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병원에 입원하자 어머니는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벌써 목소리가 달랐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그 자체가 어머니에겐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고 싶어했다. 몸에 있는 암 덩어리를 한시라도 빨리 떼어내고 싶어했다.

한시라도 빨리 치료받고 싶어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대구에 있는 병원에 모셨다. 어머니를 그 곳에 입원시켜 놓고도 걱정했다. 서울의 큰 병원으로 모시고 와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했다. 주위 분들도 다 그러는 거였다. 왜 서울을 놔두고 지방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하느냐고 하나같이 말하는 거였다.

하지만 서울로 모시고 오는 것만이 대수가 아닐 거 같았다. 우선 대구의 그 병원에는 우리 시매양반, 즉 어머니의 사위가 근무하는 병원이라서 어머니는 마음적으로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수술날도 빨리 잡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암 덩어리를 몸에 지니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끔찍하고 징그럽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면 족히 한 달은 기다려야 될 거 같았다. 병실이 나기를 기다리고 수술 날짜를 잡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기다리는 동안을 어머니는 못 견딜 것 같았다.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암이 더 크게 자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회의 끝에 어머니를 집에서 멀지 않은 대구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도록 했다.

a

친정 나들이를 한 어머니, 바로 밑의 여동생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곱디 고우셨던 두 분, 지금은 일흔을 바라보는 연세들이십니다. ⓒ 이승숙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난소암 수술은 크게 어려운 수술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의사와 상담한 후에 그 병원에서 수술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머니가 심리적으로 편안해 하시는 곳에서 수술을 받은 후에 항암 치료는 서울로 모셔 와서 하기로 했다.

수술날짜를 잡아놓고 각종 검사에 들어갔다. 대장 내시경을 비롯해서 위내시경 등등 해서 각종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우리를 고무케 했다. 처음에 받은 진단과는 달리 어머니의 상태는 양호했던 것이다.

검사를 해보니 다른 부위로의 전이가 거의 없었다. 위장도 괜찮고 대장으로도 전이가 안 되었다 했다. 복막과 임파선이 의심스럽지만 그것은 개복을 해서 상태를 봐야 알 수가 있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배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봤더니 뭔가가 불룩한 게 느껴졌다. 아랫배는 대개 물렁물렁하기 마련인데 어머니의 뱃속에는 단단한 덩어리가 있었다. 그 덩어리가 바로 암덩어리였던 것이다.

손가락으로 눌러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종양 덩어리는 컸지만 다른 부위로 전이가 안 되었으니 수술로 암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환호를 했다. 마치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시는 것처럼 기운이 났다.

내 손을 꼭 잡은 어머니,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으면...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자마자 대구로 내려갔다. 병실에 들어서자 환자복을 입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우리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날 듯이 큰 몸짓으로 반겼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부여잡았다.

어머니의 손은 뜨거웠다. 마치 화롯불을 쬐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꼭 어루만지는 거였다. 어머니 자신도 못 느끼는 상태로 계속 내 손을 힘있게 부여잡았다.

달리 말씀을 하지 않아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가슴 속으로 뜨거운 게 올라왔다. 어머니의 두려움이 그리고 외로움이 느껴졌다. 암 앞에서 떨고 있는 어머니가 느껴졌다. 어머니는 온 몸으로 말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어머니는 의연했다. 의사가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스스로 속짐작을 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삶에 매달리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의연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a

50여 년을 함께 하신 두 분, 앞으로도 오래도록 함께 하실 겁니다. ⓒ 이승숙



드디어 수술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수술이 잡혀 있었다. 병실을 떠날 때까지도 아무런 내색을 안 하던 어머니가 수술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아무 말씀도 없이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시는 거였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말씀 드렸다.

"어머니, 수술실에 들어가면 어머니 혼자라서 무섭겠지만 의사들을 믿으세요. 한 숨 푹 자고나면 어머니 몸에 있던 암 덩어리 다 떼어내고 괜찮을 거예요. 마음을 편안히 가지시고 한 숨 푹 주무신다 생각하세요. 무섭고 외롭겠지만 밖에 우리가 있어요. 어머니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들이 있으니까 어머니 힘 내시고 이겨내세요."

평소에 자잘한 감정을 잘 보이시지 않던 어머니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어머니는 내 손을 놓지를 않았다. 어머니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느껴졌다. 강건하시고 담대하신 분이시지만 수술을 앞에 두고는 두려워졌던 것이다. 내가 다시 살아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온갖 생각이 다 드실 거였다.

다시 찾은 행복, 오래오래 영원하길...

의사는 어머니의 자궁과 난소 그리고 복막과 임파선을 절제할 거라고 했다. 수술 시간은 6시간 가까이 걸릴 거라고 했다. 다른 부위로는 암이 퍼지지 않았지만 복막과 임파선은 개복해봐야 알 수 있다며 그게 조금 염려스럽다고 했다.

어머니를 홀로 수술실로 보내 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5시간이 지나고 6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수술종료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나왔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난소암은 조기 발견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환자들이 3기가 지나서 병원에 온다고 했다. 그 때쯤이면 이미 다른 장기로도 암이 퍼져서 손 쓰기에는 많이 늦어버린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다른 장기로의 전이도 없는 데다가 개복을 하고보니 복막과 임파선도 비교적 깨끗하다고 했다. 이렇게 조기발견된 경우가 별로 없다면서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는 거였다.

의사의 설명을 들으니 또 다시 환호가 나왔다. 큰 수술을 막 끝낸 상태였지만 워낙에 큰 병이라고 초진을 받았기 때문인지 우리는 그 정도만 해도 정말 행운으로 여겼다. 정말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사지에서 살아 돌아오신 거다.

이제 우리 집에는 다시 웃음이 찾아왔다. 태풍을 몰고 올 듯이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지만 다행히 태양이 다시 찾아왔다. 어머니의 암 발병으로 인해서 우리 가족은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어머니가 우리 곁에 계시다는 그것 자체가 자식에겐 더할 수 없는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힘든 수술을 잘 이겨내신 어머니는 지금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서 몸을 보하고 계신다. 수술보다 더 힘든 게 항암치료라고 한다. 난소암은 약물요법으로 치료가 잘 된다고 한다. 어머니의 경우 방사선 치료는 하지 않아도 될 거 같고 약물 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많이 매쓰껍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한다. 구토 증상으로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수술로 생명은 연장했지만 산다고 사는 게 아닌 삶을 사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어머니는 잘 이겨내시리라고 본다. 우리 어머니니까, 어머니는 강하시니까 반드시 이겨내시리라고 본다.

어머니의 빠른 쾌유를 빈다.
#어머니 #난소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3. 3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4. 4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5. 5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