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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고구마를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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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 고구마를 캐다 텃밭 고구마를 캐다
ⓒ 박도
음력 팔월 초하룻날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다. 그 전날인 오늘은 할아버지 제삿날이다. 아내에게 뭘 도와줄 게 없느냐고 물었더니 텃밭의 고구마를 캐 달라고 했다. 귀신도 장에서 사다가 차린 제수보다 손자가 직접 농사지은 걸로 올린 제수를 음복하시면 기분이 더 좋을 것이다.
바구니와 낫과 괭이, 호미를 들고 텃밭에 갔다. 올해는 고구마 줄기와 잎이 유난히 무성했다. 올봄에 옆집 노씨네 외양간 쇠똥을 경운기 한 대에 싣고 와 밑거름으로 넣었기 때문이다. 큰 기대를 하고서 고구마 줄기와 잎을 낫으로 걷고는 호미로 두둑을 팠다. 그런데 고구마 씨알 크기는 예년의 반도 안 되었다. 해마다 발전해야 할 농사솜씨가 오히려 거꾸로 퇴보한 셈이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크게 두 가지를 잘못한 것 같다. 그 첫째는 고구마는 밑거름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말을 거슬렸다. 고구마 농사를 여러 해 지어보지 않은 탓이다. 그 두 번째는 고구마 줄기가 한창 뻗을 때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자주 뒤집어줘야 한다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여름 내내 장마로 내버려둔 탓이다. 그러자 고구마 줄기가 제 맘대로 땅에 뿌리를 내려 줄기와 잎이 엄청 기름지고 무성했다. 씨알에 가야 할 영양분이 죄다 줄기와 잎이 다 나눠 가진 모양이었다.
아내는 씨알이 가늘어 전도 붙일 수 없는 고구마를 보고는 텃밭에 고구마 다 캐도 모종값도 안 되겠다고 얼치기 농사꾼의 어설픈 농사솜씨를 나무랐다. 나는 그때마다 '사람이 어찌 모든 걸 잘할 수 있느냐'는 말로 입막음을 하고는 내년에는 올해의 실패를 거울삼아 제대로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작정을 하지만 과연 그럴지는 내년에 가 봐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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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고구마 지난해 고구마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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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고구마
ⓒ 박도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살아보니까 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흔히들 농사를 땅 파먹고 산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농사일도 보통 힘든 게 아니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여간 손이 가지 않고 특히 농사는 하늘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비가 오지 않아도 탈이요, 많이 와도 탈이요, 날씨가 무더워도, 너무 선선해도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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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추밭 지난해 배추밭으로 배추값이 폭락하자 밭에서 썩고 있었다.
ⓒ 박도
하늘이 도와 풍년이 돼도 농사꾼에게는 탈이다. 모든 곳의 농산물이 풍년이라 값이 폭락하여 중간도매상인들이 찻삯도 나오지 않는다고 밭의 작물을 뽑아가지도 않는다. 그러면 농사꾼들은 봄부터 여름 내내 밤잠 설치며 애써 가꾼 작물을 두 눈을 멀거니 뜬 채 밭에 썩히고 있었다. 그걸 보는 농사꾼의 타는 가슴을 도시민들이 어찌 헤아리겠는가.
우리 내외는 시골로 내려온 뒤로는 농산물을 사 먹을 때 절대 비싸다고 하지 않을 뿐더러 농사꾼이나 장사꾼에게 더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특히 유기농을 하는 농사꾼의 노고는 파는 값의 두세 배를 더 줘도 비싸지 않다.
"당신 같이 농사지으면 굶어죽겠소."
"원래 내가 농사꾼인가? 우리는 농사꾼들이 지은 농산물을 사 먹는 게 그들을 도와주는 일이오."
아내의 말에 대꾸하고는 사람은 제 적성에 충실한 게 시대감에 맞는 생활임을 절감했다. 마침 올 학기부터 이웃 횡성고등학교에서 논술지도를 부탁했다. 시골학생들에게 직접 돈을 받지 않기에 쾌히 응했다. 알차게 수업준비를 하여 농촌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지금 내가 이 산골에 사는 가장 보람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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