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미지 산책 11]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 1

등록 2007.09.14 08:52수정 2007.09.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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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a '참회하는 베드로' 귀도 레니, 1637년,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참회하는 베드로' 귀도 레니, 1637년,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베드로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자신만만했던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위기의 순간에 나약했던 시간을 후회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따르던 예수를 세 번 부인합니다. 예수는 이미 붙잡혀 갔고, 누군가가 “이 사람은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하는 말에 순간 두려움이 생겨 자신은 예수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그렇게 세 번 부인하고 나자 닭이 웁니다. 예수의 예언이 맞았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누구보다도 열성으로 따랐습니다. 예수를 잡으러 온 당시 대사제들의 종에게 칼로 덤볐던 용감한 제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순순히 잡혀가자 멀찌감치서 상황을 알아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당시 대사제들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거짓 증거를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자 겁이 났던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베드로보다 나약합니다. 상황이 좋을 때는 용감하고 열심히 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원망도 하고 후회도 합니다.

저는 베드로의 눈물에 주목했습니다. 진실된 눈물입니다. 눈물을 흘리게 하는 요인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가슴을 치게 하는 슬픔과 후회 말입니다. 예수는 베드로의 약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장담하는 말을 했을 때 그런 모습을 측은히 여겼습니다.

그 전에 예수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나는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신약성서, 루가 22장 32절)  


이 전시회 중에는 예수의 또 다른 제자, 의심 많은 제자 토마가 예수님의 상처 자국을 직접 만지면서 다시 살아난 예수를 확인하는 그림(마티아 프레티의 ‘의심하는 도마(토마)’)도 있습니다. 예수는 베드로의 부인도, 토마의 의심도 용납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위안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아주 보잘 것 없거나, 한심해 보이거나 할 때도 그런 것을 용납 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또는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을 때 그걸 헤쳐나가지 못하는 자신이 있는 그대로 용인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런 위안을 받을 때도 있지만,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가 있어 그 소리에 위안을 받고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신앙에 관한 것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그건 정말 나 자신으로 하여금 다시 살게, 희망을 가지게, 자신을 괴롭히지 않게, 너그러워지게 하는 힘이 됩니다. 그건 정말 사람마다 다릅니다. 위의 베드로의 눈물을 그런 관점에서도 바라보면 위안이 될 것입니다.   

‘참회하는 베드로’는 17세기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의 뛰어난 화가였던 귀도 레니의 작품입니다. 교황청 인사들의 신임을 얻어 로마에서도 오래 활동을 했습니다. 고전미에도 뛰어났지만, 격정을 묘사하는 능력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화가에게도 눈물 흘릴 만한 경험이 있네요. 훌륭한 화가였지만, 도박벽 때문에 재정 압박에 시달렸답니다. 그래서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작품 제작 연도를 보니 위의 그림도 그런 시절에 그려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화가 자신의 심정이 이 그림에 담겨져 있을 겁니다.

동방박사

a '동방박사의 경배' 야코포 바사노, 1563 또는 1564년,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동방박사의 경배' 야코포 바사노, 1563 또는 1564년,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린 야코포 바사노는 16세기 이탈리아 바사노에서 공방을 차리고 개인 주문과 공공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린 재능있는 초상화가였습니다. 바사노가 가장 성공하고 싶어했던 것은 성서의 소재를 전원의 배경과 결합하여 그리는 그림인데, 이것은 그가 발명한 완전히 새로운 모티프였답니다.

위 그림도 배경이 아주 남다릅니다. 다 허물어져 가는 마굿간에서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낭만적이고 고요한, 정상적인 구조의 마굿간 이 아닙니다.

“유다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신약성서, 마태오 2장 2절)

먼 길을 떠난 동방박사들이 새로 태어난 왕(아기 예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별의 인도에 의해서인데, 그 별이 아기가 있는 곳에서 멈춥니다. 그림을 보면 하늘에서 한 가닥 빛줄기가 아기에게 비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그 뒤에 요셉이 보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기뻐하고 이 집에 들어가 아기를 보고 경배합니다. 그리고 보물 상자를 열어 예물로 바칩니다. 황금, 유향, 몰약이 그것입니다. 각각의 예물은 그 실물의 가치와 더불어 상징을 지닙니다.

황금은 임금에게만 바칠 수 있는 보물입니다. 이것을 바치는 것은 예수가 임금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유향은 성전에서 예물을 바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치는 것은 장차 예수가 희생 제물이 됨을 상징합니다. 몰약은 시신을 썩지 않게 하는 귀한 예물입니다. 이것을 바치는 것은 예수가 사람으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무릎을 꿇고 있는 녹색 복장의 동방박사 왼쪽 바닥에 황금이 있습니다. 말 옆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 역시 비슷한 녹색 복장의 동방박사가 들고 있는 것이 유향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핑크색 복장을 하고 있는 동방박사가 들고 있는 것이 몰약입니다.

이들은 시종을 거느리고, 물건을 실을 말을 이끌고 왔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오른쪽에 그려져 있습니다. 성서에는 이런 것들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먼길을 떠나는 그리고 상당히 높은 신분에 있는 이들이니 당연히 이런 것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복장도 이국적입니다.

“고대의 전승에 의하면 이들(동방박사들)은 현인(Magi)들로서 성 발타사르(Balthasar), 성 가스파르 그리고 성 멜키오르(Melchior)라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그들이 바빌로니아(Babylonia)나 아라비아(Arabia)에서 온 점성가들로 믿고 있다.”(<한국가톨릭대사전>에서)


a '동방박사의 경배' 일부분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동방박사의 경배' 일부분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 박태신



위 그림을 좀더 잘 확인하기 위해 밝게 찍힌 제 사진을 덧붙입니다. 물론 허락받고 찍은 사진입니다. 가운데 동방박사가 들고 있는 몰약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 동방박사의 복장을 보면 확실히 동방에서 온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그림은 16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매너리즘(mannerism)을 나타내는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이 단어 ‘매너리즘’은 우리 통상 생각하는 ‘현상 유지 경향’의 매너리즘이 아닙니다. 간단히 말하면 당시 지배적이었던, 질서와 조화를 중시한 고전적 경향에 반대되는 경향을 통칭합니다. 그래서 반고전적, 비고전적 경향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당시 ‘모던’이라는 말이 처음 쓰여졌다고 합니다. 즉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위 그림에서 그런 요소가 나타나는데 인물들의 형상이 길게 늘어져 있고, 연한 핑크빛과 황금색을 띤 녹색 등의 독특한 색채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다 허물어가는 마굿간의 모습, 시종들의 모습, 석재 기둥 등의 모습도 그런 것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유럽 역사에서는 정통과 질서를 추구하는 ‘고전주의’와 그에 반대되는 비고전주의, 예를 들면 '바로크', '낭만주의' 등이 서로 긴장된 상태에서 공존 또는 교체해 왔습니다. 그래서 주도권을 쥐고 있을 때 그것만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세계에서 피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그림, 조금은 낯선 풍경의 그림도 그래서 가능한 것입니다.

유디트

a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있는 유디트' 파올로 베로네세, 1580년경,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있는 유디트' 파올로 베로네세, 1580년경,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유디트의 얼굴은 평화롭고 우아합니다. 아시리아(Assyria)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죽이고 조국을 구한 사람답지 않게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같은 소재를 그린, 다른 화가의 그림을 책에서 보았는데 아주 끔찍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속하는 46권 책 중의 한 권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고 해서 구약성서로 인정하지 않지만, 가톨릭에서는 이 외경을 제2 경전이라 해서 정식 구약성서의 일부로 인정합니다. 정확히는 ‘유딧’인데, 번역상에서 ‘유디트’로 번역되곤 합니다. 유딧서는 16장에 해당하는 아주 짧은 성서책입니다. 

유디트는 부유하고 아름다운 과부입니다. 그녀는 적군의 사령관 홀로페르네스의 막사로 들어가 술에 취한 그의 머리를 검으로 베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이 전리품을 적군에게 내보여 적군을 물리칠 수 있었고, 민족의 영웅으로 칭송됩니다.

그림 속 장면은 유디트가 막 잘라낸 머리를 손으로 쥐고 있고, 하녀가 그것을 자루에 담기 위해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디트의 얼굴은 평온합니다. 그리고 유디트의 모습만이 조명을 받은 듯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파올로 베로네세는 16세기 이탈리아 베로나 출신의 화가입니다. 삶의 대부분을 베네치아에서 삽니다. 그러고 보니 위 세 그림의 화가들이 전부 이탈리아 출신이군요.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로마제국 멸망 후, 지금의 이탈리아 영토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중세를 거쳐 19세기 전반까지 존속했습니다. 귀도 레니의 볼로냐는 교황령의 도시였습니다. 베로나는 화화 중심의 도시였습니다. 다른 예로 베네치아 같은 경우는 막강한 힘을 지닌 도시국가였습니다.

지금의 이탈리아 공화국 즉 이탈리아로 불리는 국가는 1861년에서야 설립됩니다. 다만 위치상으로 편의상 ‘이탈리아의 베로나’ 식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미하엘

                 
a '악마를 심연으로 떨어뜨리는 대천사장 미하엘'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65 또는 1666년경,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악마를 심연으로 떨어뜨리는 대천사장 미하엘'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65 또는 1666년경,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그림 속엔 날개를 단 대천사 미하엘(미카엘)이 칼을 들고 악마를 응징하고 있습니다. 미하엘은 천사 중에서도 용맹한 역할을 담당하는 천사입니다. 선두에 서서 직접 악의 화신과 싸우는 천사이기에, 보통 젊고 강건하며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천사의 얼굴을 보면 미소년과 같습니다. 역할에 어울리는 매서운 눈빛과 카리스마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 그림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라는 17세기 스페인 세비야 출신의 신앙심 돈독한 화가의 그림입니다. 무리요의 다른 그림들을 보면 모두 이렇게 부드러움이 넘치는 얼굴과 모습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성적이고 우아합니다.

무리요는 스페인 국왕의 소장품들을 통해 선배 거장 화가들의 작품을 접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소화하고서, 감각적이고 다감하며 동시에 인상적으로 여유 있는 표현의 언어를 이끌어냈습니다.

자료를 찾다가 무리요의 그림들을 접했는데 정말 반했습니다. 그렇게 평온하고 부드럽고 천진난만할 수가 없습니다. 그 중에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이라는 책을 보면 무리요의 ‘어린 그리스도와 아기 요한’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성서에는 예수와 요한의 어린 시절, 그것도 같이 어울리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상상으로 그려진 그림입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물을 떠다 먹이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순진한 양도 그려져 있고요. 그런데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지은이 웬디 수녀는 다소 부정적으로 이 그림을 해석하고 있지만요.

무리요는 또한 다른 화가와 달리 스페인 거리의 가난한 아이들 그림도 그렸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받아들인 거죠. 그걸 어느 책에서는 '19세기적'이라고 표현합니다. 시대를 앞선 그림이었다는 말이지요.

미하엘(미카엘) 천사는 가브리엘 천사와 라파엘 천사와 같이 3대 천사로 알려져 있고,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 천사들의 축일을 같은 날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례명을 지닌 신자들은 이날 동시에 축하를 받습니다. 9월 29일이 그날이니 얼마 안 남았네요.

이번 기사의 제목은 마태오 복음(마태복음)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사명을 전달하며 덧붙인 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자들을 떠나기 전에(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이 안심을 하도록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고 있을 때에도 그 마음속에는 예수가 함께 하고서 위안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신앙적인 고민과 상황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힘들고 고단할 때,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할 때 위의 약속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개인적인 고민과 번뇌가 있습니다. 그걸 올바로 풀어가려고 하려는 마음을 가지려 할 때, 마음을 비우려 할 때 위의 약속은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위 마지막 그림의 미하엘처럼, 옳은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수호천사가 곁에 있어 줍니다. 특히 미하엘 대천사는 병사들의 수호성인으로, 가브리엘 대천사는 영상매체의 수호성인으로(아마도 예수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연유해서), 라파엘 대천사는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천사의 존재를 믿든 안 믿든 나를 지켜주거나 안내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힘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은 믿음일지라도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 덕수궁 내 덕수궁미술관, 9월 30일까지, 02-368-1414, 월요일 휴관, 저녁 8시 반까지.


덧붙이는 글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 덕수궁 내 덕수궁미술관, 9월 30일까지, 02-368-1414, 월요일 휴관, 저녁 8시 반까지.
#비엔나전 #브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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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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