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대 교수
이정환
하지만 채 반년도 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설마는 기어이 다시 찾아오고야 말았다.
간에 두 군데, 뼈에 한 군데, 다발성 전이암. 졸지에 4기 암 환자가 됐고, 고지들은 아스라히 멀어졌다. 그토록 "능동태로 살아왔다고 자신했는데…."
갑자기 그의 인생은 "하나부터 열까지 의사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환자, 수동태"로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나마 '의사'였기에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은 단 하나.
"그만 하자."
"동료들과는 그냥 눈빛으로 통해요. 생존율·생존 기간이 어떻고, 다 서로 아는데 뭘 따져 얘기하겠어요. 개복해서 간 잘라내고, 방사선 치료하고, 항암제 맞고, 그렇게 1년 정도 버텼는데…. 자꾸 (암) 덩어리는 커지고, 또 생겨나고, 항암제도 잘 안 듣고…. 의학적으로 가망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동료에게 얘기했죠, '그만 하자' '그래? 그래, 그만하자…."대장암 진단을 받고 1년만이었다. 그리고 기도원에 들어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교회에 잘 다니지 않았던 이 교수는 "어차피 죽을 테니까, 봉사라도 하고 싶어" 들어간 그 곳에서 뜻밖의 '나'와 마주친다. "담요 하나 깔고 앉아 기도하는 저들과 나는 다르다"고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죽는다는데, 잡아야 될 무엇"을 자신은 필요로 하고 있었다. "교만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은 그렇게 다가왔다.
"암 환자들은 우울하고 고독해요.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기 때문이죠. 식구들한테는 괜찮다고 하지만, 특히 밤이 되면은요, 조용해지잖아요. 어떤 때는 침대가 푹 꺼지는 것 같기도 하고, 울렁거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막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나서 이게 뭐 꼭 저승사자가 나를 데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럴 때는 엄청난 외로움, 고독감, 그 다음에 절망감이 밀려와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잖아요? 암으로부터 오는 공포가 아니라, 암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 그 절망감이 나를 죽이게 만드는 거예요. 더구나 나는 암 전문의잖아요. 더 잘 알죠. 그럼 내가 죽는다고 하는데, 내가 잡아야 될 것은 뭐냐. 그래서 하나님을 받아들였어요. 의학적인 방법 더하기 하나님 에너지, 그걸로 내가 극복해 가는 것 같아요."
"4기 환자를 말기 환자라 부르지 말라"이 교수는 하나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스스로 얼마나 많이 다짐했을 '희망의 얼굴'이겠는가. 당연한 일이다. 하나 더 분명한 것은, 그의 몸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