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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회에 이어서)
공책을 준비하지 못해서 자료집 뒷면에 쪽글을 적어 드렸다. 내 쪽지를 보시고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시면 나는 다음 말씀을 적어 드리는 식이었다.
'마음을 비워라' '남을 칭찬해라' '뭐든지 감사하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라' 등등 스님이 인생의 5대 행복원리를 설명하실 때마다 내가 글을 써보이면 어머니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는데 점점 어머니가 가벼운 촌평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촌평이 시작되면서 마치 나는 중계하는 아나운서고 어머니는 해설위원처럼 되어버렸는데 이것이 부처님 생일잔치를 한결 흥겹게 했다.
"잘해 봐봐. 칭찬하지 말락케도 칭찬하지. 하는 짓은 목딱 같이 함스로 칭찬해 달락카믄 그기 말이되나?"하고 어머니가 큰 소리를 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와르르르 웃었다. 어머니도 따라 웃으셨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웃음소리에 휩싸인 나는 가슴이 울컥했다. 완전한 성공이었다. 이 얼마나 가슴 졸이던 나들이였던가? 이날 첫나들이의 성공은 이후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정령치 계곡과 운봉시장까지 진출하는 원동력이 됐다.
스님 법문이나 옆 사람 웃는 소리는 안 들리다 보니 어머님은 오로지 내가 써 드리는 쪽지하고만 얘기를 하는 셈이다. 이번에는 '어머니 제 칭찬 한 가지 해 보세요'라고 적었더니 "찌랄하고 있네. 지 새끼 안 조탁카는 사람 어딧노. 고슴도치도 지 새끼 품는닥카는데"라고 팩 쏘아 붙이신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스님 말씀에 대한 반발처럼 들리겠다 싶어 놀란 나는 얼른 어머니 입을 막았다. "와? 머락카는데?"하고 어머니도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셨다. 바로 앞에 서서 말씀을 하시던 스님이 활짝 웃으면서 마이크를 내리더니 눈짓을 해 가며 "조용조용. 우리 휴강님 어머님이 법문하시는데 조용조용" 하셨다. 휴강(休康)은 내 법명이다. 모든 사람들이 우하하하 웃었다.
안되겠다 싶은 나는 쪽지 전달을 멈췄다. 어머니는 궁금한지 자꾸 내 옆구리를 찌르면서 속삭이듯이 "머락카노? 스님이 지금 머락카노?"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 평생 소원인 '걷게 해 달라고 기도하세요'라고 적어 드렸다. '옷에 오줌 안 누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도 썼다.
"기도하믄 다 된닥카나?"
어머니는 귀가 솔깃하신지 진지하게 내게 물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뭐든지 다 이루어진다고 써 드렸다. 짧은 순간이지만 어머니 얼굴에 광채가 스치는 것 같았다. 나는 놓치지 않고 그것을 봤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농어민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9.15 19:34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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