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눈물'

[서평] 중국의 대표 작가 쑤퉁의 <눈물>

등록 2007.09.20 11:29수정 2007.09.2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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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눈물>

책 <눈물> ⓒ 문학동네


최근 들어 몇몇 출판사에서 중국 문학을 번역해 출판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관심만큼 그들 문학에 대한 관심도 지대해졌는데 아직도 일본 소설의 판매량과 비교하면 힘이 미약하다. 그나마 알려진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일본과는 또 다른 중국만의 독특한 사고를 느낄 수 있다.

올해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눈물>은 중국 대학생들에게 '가장 잠재력 있는 작가'로 손꼽히는 쑤퉁의 작품이다. 쑤퉁은 중국의 다양한 문학상을 휩쓸었을 뿐만아니라 많은 작품들이 영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 소개되는 등 세계적으로도 꽤나 알려진 작가다. <처첩성군> <홍분> 등의 작품은 장이모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더욱 유명하다.


'가장 잠재력 있는 작가' 쑤퉁의 <눈물>

만리장성과 관련한 맹강녀 설화를 바탕으로 하여 소설로 창작된 이 작품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여자, 비누를 주인공으로 한다. 신도군이 왕위를 노린 것과 관련하여 그의 죽음을 슬퍼했던 그 동네 사람들은 모두 반역자로 처벌되고 만다. 그 이후 도촌이라는 마을은 눈물 금지령이 내려진다.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울면 안 되는 현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만의 눈물 흘리는 법을 개발한다. 어떤 사람은 발로 울고 어떤 사람은 귀로 운다. 또 어떤 이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린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비누는 머리카락으로 우는 여자다.

비누는 만리장성에 노역으로 끌려간 남편 완치량을 찾아 머나먼 길을 떠난다. 청개구리가 길을 안내하고 자신의 운명인 조롱박을 품에 안은 채 남편의 겨울옷을 가져다주러 만 리 길을 여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그녀가 미쳤다고 비웃는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눈물을 떨어뜨리는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반역자로 몰리지 않나 죽은 자객의 가짜 마누라 역할을 강요당하지 않나, 여자 혼자서 남편을 찾아 떠나는 길은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비누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고대 중국의 신화 속으로 빠져들다

길을 걷는 와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옛 중국의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 재물의 축재가 만연했던 관리들, 그 밑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평민들. 관리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다양한 맛의 눈물을 탕약의 재료로 써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자객이 난무하며 왕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한 꿈틀거림이 지속되는 세계.


마치 무협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쑤퉁의 문체는 신비로운 고대 중국의 신화 속으로 독자를 빠져들게 만든다. 사냥에 쓸 말이 부족해서 사람이 말이 되는 현실, 보다 빨리 뛰는 아이들은 사슴이 되어 사냥 대상이 되어야 하는 상황, 청개구리가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비누와 함께 여행을 하는 모습 등은 비현실적인 판타지와 같다.

"비누가 말하는 동안 눈물이 쉬지 않고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 내려 관 위에 떨어졌다. 눈물방울이 커다란 관 옆을 타고 흘러내리며 관 전체를 눈물로 목욕시켰다. 처음에는 미동도 안하던 관이 서서히 불안한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비누는 관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관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다.

귀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요동치는 관을 두드렸지만 귀리의 힘으로 잠잠해질 리 없었다. 비누는 관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남자의 흐느낌을 들었다. 진쑤의 혼이 회한에 사로잡혀 울면서도 고집스럽게 비누를 향해 반복해서 슬픔에 찬 명령을 내렸다."

현실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런 묘사들이 이 소설에서는 설득력 있게 전개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아마도 이 작품의 주제인 '인간의 가슴 속에 담긴 깊은 슬픔과 눈물'이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로는 설명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마음의 회한, 눈물, 슬픔을 어찌 논리적인 말과 설명으로 그려낼 수 있으랴.

결국 눈물 흘리는 여자 비누는 만리장성에 도착하지만 남편이 죽고 없다는 소식만 접하고 만다. 그녀의 눈물은 만리장성의 돌 틈을 파고들어 모든 돌들을 흔들리게 하고 결국 성곽을 무너뜨리는 위력을 발휘한다. 인간의 슬픔이란 이처럼 커다란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신화라는 환상의 세계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우리의 작가 황석영이 바리데기 설화를 재창조하여 출판했다고 하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쑤퉁의 이 작품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깊은 슬픔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설화와 그것을 재창조한 작품이 존재한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신화의 창조자들이 있는 그곳에서 세상은 간결하고도 따뜻한 곳이 되고, 삶과 죽음은 솔직하고 소박한 해답을 얻는다'고 말한다. 신화라는 환상의 세계를 통해 우리는 냉혹한 현실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얻고 이 현실을 이겨낼 만한 힘을 가질 수 있다.

눈물을 통해 자신 앞에 놓인 어려움과 고난을 헤쳐 나가는 비누의 삶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그것과 별다를 바가 없다. 깊은 슬픔에 눈물 한 번 흘려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랴. 인생이란 결국 우리의 눈물과 웃음을 씨실과 날실로 해 엮어진 커다란 천이 아니던가.

고전 문학이 가진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시대와 사상을 초월하여 우리네의 정신세계를 이어주는 끈. 그 안에서 우리는 원천적 삶의 의미와 본질을 발견하며 사색에 잠길 수 있다. 쑤퉁의 풍부한 상상력은 고통을 닦아내는 눈물이 되어 한국 독자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남긴다.

눈물 1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문학동네, 2007


#눈물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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