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개봉 '디워'의 영문 타이틀 'Dragon Wars'
영구아트무비
이 글은 강인규 기자의
"<디워>, 할리우드 '승천'의 꿈은 깨지나" 기사에 대한 보론일 수도 있고, 반론일 수도 있다. 나는 강인규 기자가 쓴 기사에 나타난 한국인들의 미국진출 강박관념에 대한 우려와 각종 미국 매체에 드러난 <디워>에 대한 혹평,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국내 매체의 실수와 온정주의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하나 동의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는 강인규 기자가 1주일의 성적만 놓고 <디워>의 흥행 결과를 실패라고 규정지은 점이다. 강인규 기자는 박스오피스모조에 나타난 통계적 지표를 성실하게 분석해내서 기사의 신뢰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디워>가 미국시장에서 흥행에 실패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그 통계수치를 해석하는 데에는 더 다양한 맥락을 파악해야 하는데 강인규 기자의 기사에는 그런 맥락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충분하지 않다.
즉, <디워>가 1주일 동안 약 58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을 흥행 성공이라고 보도한 국내 매체들이 성급했던 것만큼 강인규 기자가 그것을 흥행 실패라고 규정하는 것도 성급한 구석이 있다. 기본적으로 흥행수익이라는 통계수치만을 해석하려고 했지 미국의 영화문화라는 맥락과 특성을 고려하지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성급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인지도 차이, 시기적 요인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그럼 <디워>가 평단에서 졸작이라고 평가받음에도 어떻게 첫 주에 58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는지와 흥행실패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따져보자.
우선, 강인규 기자는 <디워>와 비교되는 다른 작품들이 <디워>에 비해 미국 관객에게 훨씬 인지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가 인용한 첫 도표에는 <디워>와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개봉작들의 극장당 평균수익을 비교하고 있다. 이때<본 얼티메이텀>, <트랜스포머>, <해리 포터>의 평균수익도 집어넣었는데 이 작품들은 전작이 이미 흥행에 성공해서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시리즈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본 얼티메이텀>은 '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고, <해리 포터>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린이용 판타지영화다. <트랜스포머> 역시 그 원작 애니메이션이 있었고, <할로윈>은 자주 거론되고 리메이크되는 유명한 공포영화라서 고정 관객층을 비교적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다. <용감한 자>와 <유마로의 3:10>은 각각 조디 포스터와 러셀 크로우라는 할리우드의 빅스타가 등장하는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디워>가 얼마나 선전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두 번째, 강인규 기자는 영화 개봉 당시의 계절적·시기적 요인을 거론하지 않았다. 9월은 영화흥행에서 비수기로 간주되는 시기다. 이 시기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이 여름 흥행 성수기에 전국의 극장에서 벌인 흥행 전쟁이 끝난 바로 다음 시기다. 이 시기에 할리우드 배급사들도 블록버스터가 아니지만 특색있거나 작품성이 있는 비교적 예산 규모가 적은 작품들을 개봉한다. <유마로의 3:10>이나 <용감한 자>가 바로 그런 영화들이다.
<용감한 자>의 경우 조디 포스터가 나오긴 하지만 주요한 여성스타 단 한 사람이 전체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인데, 이런 류의 작품이 여름 흥행 성수기에 개봉되는 경우는 없고, 주간 흥행수익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무척 드물다. 최근에 그런 경우로는 사라 미셸 겔러가 주연했던 <주온>이라는 공포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도 여름이 아니라 가을에 개봉했었다. 장이모의 <영웅>도 9월 중순에 개봉해서 주간 흥행수익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따라서 흥행 비수기에 <디워>를 개봉한 것은 여름 블록버스터와의 흥행전쟁에서 어차피 상대가 되지않을 것이니 미리 피해간 현실적으로 좋은 전략이었다. 여름 흥행 성수기에 미국에서 <디워>을 개봉하지도 못했겠지만 만약 개봉했더라도 지금만큼의 홍보비를 들였다면 아마 흥행참패를 면하지 못했거나 지금 올린 만큼의 수익을 올렸더라도 순위 10등 안에도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9월에 개봉했기 때문에 비교적 수익은 적지만 5등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장르 차이에 더 주목했어야셋째, 강인규 기자는 <디워>와 다른 영화의 장르상 차이를 간과하고 있으며 영화 흥행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경향을 <디워>에만 적용하고 있다. 강인규 기자는 주중 관람객의 수가 주말에 비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적고 있다. <디워>뿐만 아니라 어느 영화든 주중에는 관객수가 주말에 비해 떨어지게 마련이다. 즉, 낙차의 폭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주말과 주중에 관객수에 차이가 있는 것은 모든 영화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경향이다.
게다가 <디워>와 다른 영화의 장르상의 차이와 인지도의 차이를 감안하면 <디워>의 낙차 폭이 큰 것도 설명할 수 있다. <디워>는 어린이영화·가족영화 장르이고 <용감한 자>와 <유마로의 3:10>은 각각 스릴러, 서부영화로 청소년 이상의 관객들에게 소구하는 영화다. 즉, 관람행태의 차이를 보면 어린이영화는 직장을 다니는 부모들이 주말에 자녀들을 데리고 가서 보고 주중에는 다른 일을 하게 마련이니 주중에 관람객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스릴러나 서부영화는 어린이를 동반하지 않고 청소년 이상의 관객들이 친구들끼리 보러가거나 혼자 보러 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비교적 주중에 <디워>에 비해 높은 관객동원률을 보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과 주중을 뭉뚱그린 하루 평균 수입과 매회 평균 관람객 수를 계산해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주말 매회 평균 관람객수와 주중 평균관람객수를 나눠서 고려해야 한다.
'1일 5회 상영' 기준, 현실과 다르다넷째, 강인규 기자는 미국 극장의 상영 행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강인규 기자의 글을 다시 한 번 인용해보자.
"'박스오피스 모조'가 밝힌 6일 동안 <디워>의 총수입을 2275개 개봉 스크린으로 나누면 스크린당 하루 평균 수입은 430불(약 40만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스크린당 하루 평균 5회를 상영했다고 보면 한 회 평균 86불(약 8만원) 정도의 수입을 거둔 것이다. 표당 8불로 계산할 경우, 매 회 11명 정도가 관람한 셈이다." 내가 사는 카본데일의 경우 주말에는 <디워>를 하루 4회 상영했고, 주중에는 3회 상영하고 있다. 즉, 하루 평균 상영횟수를 5회로 상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높게 상정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오전부터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가 많으나 미국에서는 정말 대단한 흥행작이 아니면 오전부터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는 없다.
소도시의 경우 주말에는 대체로 오후 1시나 2시부터 상영을 시작하고 주중에는 4시경부터 상영을 시작한다. 대도시의 경우에도 아무리 빨라도 주중에는 1시부터 상영하는 경우가 많다. 즉, 아무리 높이 잡아도 <디워>의 하루 평균 상영횟수는 4회로 봐야 하고 앞서 말했듯이 주말과 주중에 관람객 수가 많이 차이 나기 때문에 전체를 뭉뚱그린 매회 평균 관람객수를 기준으로 흥행 성공/실패를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리고 배급사와 제작사는 극장의 티켓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리지만 극장은 사실 영화로 이익을 내는 게 아니라 극장의 매점에서 파는 음료수와 팝콘으로 수익을 올린다. 게다가 어린이영화니 어린이들이 영화에 집중해서 영화를 보기보다는 영화를 보면서 음료수 마시고 과자를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극장으로서는 수익성이 더 높은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관객수가 어느 정도 유지된다면 극장으로서는 그 영화가 좋은 영화이든 좀 떨어지는 영화이든 마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디워>가 2주차에 상영관수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난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언론시사회 하지 않고도 성공한 경우 있다다섯째, 강인규 기자는 "'미국 내 대규모 개봉'이라는 전략이 한국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을망정, 미국시장에서는 도리어 역효과를 낳았다. 어차피 기대작들이 많지 않은 시기였기에, 제한개봉으로 시작해 점차 스크린을 늘려가는 것도 고려해 볼만한 방식이었다"고 적고 있으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예로 들고 있다.
나는 이 방식이 역효과를 내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모험이었고, 역효과를 낳았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본다. 거대한 제작비와 홍보비, 프린트 제작비를 감안하면 엄청난 낭비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 자체가 전체 홍보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강인규 기자는 2000여개의 상영관을 잡았으면서도 언론시사회를 열지않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략을 썼다고 적고 있다. 이 전략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비단 강인규 기자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매체에서도 지적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이런 전략을 구사한 것은 <디워>가 처음은 아니다. 비슷한 사례로 1970년대 말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디어 헌터>가 있다. <디어 헌터>는 언론시사회를 하지 않은 채 몇 개 변두리 극장에서 개봉한 다음에 입소문을 내는 신비화 전략을 구사해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고 나중에 흥행에 성공한 경우다.
지금도 미국매체에서 혹평이 쏟아지는데 언론시사회를 했다고 해서 좋은 평가가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매체의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우니 아예 버리고 감으로써 그냥 볼만한 어린이영화가 한 편 있다는 관객의 소문에 승부를 건 셈이다.
즉, 극장개봉 자체는 수익을 올리기 위한 행위이기보다는 전체적인 홍보의 일환인 셈이고, 이미 DVD판권과 케이블 텔레비전 채널 방영과 같은 2차시장의 판권을 얻어낸 셈이니 심형래 감독, 쇼박스, 프리 스타일의 개봉전략과 흥행전략에 큰 무리는 없는 셈이다.
앞서 그 영화가 좋은 영화라서 극장에 계속 걸려있는 게 아니라고 쓴 것과 마찬가지로 DVD로 출시될 <디워>는 작품이 좋아서 잘 팔리기보다는 어린이용 영화기 때문에, 어린이가 있는 집이면 어느 집이든 구비해 두는 것이 편할 작품이기 때문에 판매실적이 좋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2000개의 극장을 잡은 것과 언론시사회를 하지 않은 것은 낭비라기보다는 일종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나는 심형래 감독의 <디워>는 걸작은 아니지만 봐줄만한 구석이 있어서 팔리는 작품이고 1주일 극장 개봉 성과를 놓고 흥행성공 실패여부를 논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것이라고 본다. <디워>는 어린이영화시장을 염두에 둔 괴수물이라는 장르영화라는 점, 그 영화가 타깃으로 하는 대상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성공가능성이 있는 작품이지 결코 작품 자체가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심형래 감독의 강점은 자기 영화를 누가 볼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는 점과 추진력, 인내력, 뚝심이지 작품을 연출하는 연출가로서 능력이 아니다. 그런데 기왕 자기가 만든 영화가 한국의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보게끔 하고 싶다면 만들려면 더 잘 만들어주길 바란다는 점, 그리고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자기가 만든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만든 괴수영화가 아니라 '한국인 심형래가 만든 한국의 괴수영화'로 인식되길 원한다면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시네21 개인 블로그 '사과애'와 사이월드 미니홈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광우 기자는 영화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뉴욕한국영화제를 위해 일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일리노이주 카본데일에 있는 서던 일리노이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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