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들은 매일 죽는 연습을 해요"

[인터뷰] 사형수들의 대모 조성애 수녀... 오늘 사형제 폐지국가 선포식

등록 2007.10.10 09:16수정 2007.10.1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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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형수들의 대모'라고 불리며,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조성애 수녀.

'사형수들의 대모'라고 불리며,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조성애 수녀. ⓒ 이민정


"그 사람, 그 당시에는 제 정신이 아니었죠. (그런 사건 볼 때마다) 가슴이 덜컹하죠. 그런 사건이 일어나다니, 이게 세상이에요."

조성애 수녀(76)는 얼마 전 전남 보성에서 남녀 4명을 죽인 '어부 할아버지' 사건을 꺼내자 조그마한 체구를 들썩이며 "끔찍하다"고 반복했다. 하지만 조 수녀는 곧 "미국에서 총기사건을 일으켰던 조승희 사건을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우리, 그 때 얼마나 떨었어요. 미국에 있는 한국 동포들에게 해가 되면 어쩌나 걱정했잖아요. 그랬는데, 미국 국민들이 조씨를 용서해주는 것 보세요. 박애정신과 사랑, 너무 훌륭하지 않았어요? 사건은 사건으로 보고, 미움을 다 부각시키지 말자고요."

지난 10년간 사형제가 시행되지 않자 국내 인권단체들이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라고 선포식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또 한 명의 사형수가 추가됐다. 여론은 곧 '엽기살인', '비인간적 흉악범'이라 부르며 사형제 존치쪽으로 기울 듯하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오늘(10일) 사형제 폐지국가 선포식을 연다.

사형 실행 중단 10년을 맞아 조 수녀를 찾았다. 그와의 인터뷰는 8일 오전 서울 용산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에서 진행됐다.

그는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유난히 '용서'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그는 실제로 지난 89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를 돌아다니며 사형수 및 재소자들을 용서하고 다녔다.

하지만 용서라는 것이 말처럼 쉽나. 살인자에게 희생된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누가 그들의 앞에서 "용서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실제로 조 수녀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자, 네티즌들은 "고아원에서 봉사나 하시라"며 그에게 따가운 댓글을 남겼다.


그는 "살인은 분명한 잘못이고, 분명한 흉악범죄"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하지만 가해자를 용서한 유가족들을 만나보면 '용서하니까 평화로워졌다'고 말한다, 가해자가 죽어도 도움은 안 되더라"고 말했다.

그는 용서를 '전도'하기 위해 유가족들을 방문한다. 물론 문전박대 당하기 십상이다.


"구박 많이 받죠.(웃음) 어느 집에 갔더니, 피해자의 딸이 '나가라'고 난리를 쳤죠. 이해한다고, 성당 다니라고 온 것이 아니라고 몇 번 말했지만, 전화통화를 통해 피해자의 부인까지도 나를 내쫓으라고 난리였어요. 소금만 안 뿌렸지. 아예 만나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래도 이해합니다. 불쌍한 유가족들도 많아요."

"사형수들, 교도소에서 뻔뻔하게 살지 않습니다"

a  조성애 수녀.

조성애 수녀. ⓒ 이민정

그래도 조 수녀는 아직까지도 유가족을 만나러 다닌다. 교도소 안에서 잠들기 전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이 깊이 참회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기 위해서다.

"지금도 사형수를 만나러 들어갈 때마다 조마조마해요. 사형수들은 교도소 안에서 뻔뻔스럽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항상 매일 죽는 연습을 해요. 아침이 되면 '오늘이 그 날(사형집행날)일까', 저녁이 되면 '오늘이 지났구나' 하면서 하루를 성찰해요.

죽을 준비를 매일 합니다. 그들을 용서해주자고요. 달력의 빨간 날을 제일 좋아하죠. 휴일이라 사형집행이 없거든요. 사형 집행장을 자기들 말로 '넥타이 공장'이라고 하는데, 그 곳을 청소할 때마다 술렁거려요. 이제 그만, 죽음의 공포로부터 그들을 구해주자고요."

그가 20여년간 만난 사형수는 40여명. 사형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등장하는 모니카 수녀(윤여정 분)의 실제인물이 바로 조 수녀다.

그는 매주 화요일 사형수를 만난다. 이미 사형을 구형받고, 마음을 정리한 뒤 만나고자 하는 종교를 선택하면 조 수녀와의 어색한 첫 만남이 성사된다.

"처음 만날 때는 어색하죠.(웃음) 처음 만났을 땐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요. 일상다반사요. 교훈이 될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같이 노래도 불러요. 자기가 저지른 사건 이야기를 일체 안 해요. 6개월 정도 지나면 오픈(공개)하죠. 종교교육을 시키는데, 정말 똑똑해요. '잘 키웠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들죠."

"잘못을 뉘우친 이들에게 죽음 대신 새 삶을"

그는 그동안 만났던 사형수들을 이야기하며 제 자식처럼 아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불쌍하게 자란 아이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모두가 잊을 수 없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사시에 말더듬는 장애가 있었어요. 장애인 부모가 동네에 버렸다가 다시 데려다 키웠는데, 끝내 엄마는 가출했고, 힘든 형편 때문에 장애인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어요. 취직도 쉽지 않았죠. 장애가 있으니, 좀 쓰다가 쫓아내고. 인생을 비관하며 자살하려고 손목도 여러 번 그었대요. 떠돌아다니다가, 차를 타고는 사람을 들이 받아서 죽였어요."

하지만 그는 지난 97년 사형됐다. 조 수녀는 30대 사형수에 대해 "순진한 아이였고, 죽으면서 영치금을 가난한 재소자에게 주라는 유언도 남겼다"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뛰어나서, 이 아이만은 결혼을 했으면 바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사형수 대부분이 어려운 환경에서 불쌍하게 자란 이들"이라며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들에게 회개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종 느린 속도로 또박또박 이야기하던 그는, 사형제 폐지론을 펼칠 때 말의 속도를 높였다.

"우리가 생명 존중을 너무 모른다"며 사형제 폐지론에 힘을 주던 조 수녀에게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누군가의 생명을 뺏었던 사람들 아니냐"고 반박하자, 그는 "사형수들이 생명을 함부로 다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변화해가는 이들을 꼭 죽여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사형제를 유지하자는 사람들은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흉악범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학자들이 이미 논문을 통해 증명했어요. 범죄가 많다는 것은 그 사회가 병들고, 사회 구성원의 아량이 좁아졌다는 걸 뜻합니다."

그러면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알 수 있었던 사례를 소개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엄청난 업신여김을 당합니다. 집 나온 한 소년이 폐가에 숨어있다고 해서 뭘 좀 먹이고 씻기려고 갔더니, 경찰이 와 있었어요. 곧바로 소년은 현장에서 체포됐죠. 몇 년 뒤 수소문해서 소년을 찾았더니, 교도소로 옮겨져 수년을 살고 나왔더라고요. 경찰에 붙잡혔을 당시, 몸에 칼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간 거죠."

그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1~2년 안에 교화되지는 않는다"면서 "그들이 정말 잘못했지만, 잘 살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형제 폐지한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고 싶다"

a  사형수 유영철씨가 조성애 수녀에게 지난 2006년 2월 보낸 편지. 그러나 유씨는 최근 조 수녀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

사형수 유영철씨가 조성애 수녀에게 지난 2006년 2월 보낸 편지. 그러나 유씨는 최근 조 수녀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 ⓒ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

최근 그는 부쩍 '교도사목회'를 조직해 사형수를 만났던 선배 수녀들의 생각이 자주 난다. 지금은 돌아가신 4명의 수녀들에게 "당신들 덕분에 한국에서 10년째 사형 집행이 되지 않고 있다"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단다.

"만 10년째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서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가 된다고 하니까, 그 수녀님들 생각이 나요. 과거에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걸….

이렇게 좋은 시대와 정권, 정치가들이 와서 우리나라가 세련되게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부르짖을 수 있는 시대가 왔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 분들이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는 요새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씩 외쳐보고 싶은 심정이란다. 죽음 앞에 떨고 있을 사형수들이 안심하고 잠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형제를 폐지하는 대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주장하고 있다.

조 수녀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씨와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유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그러면서 사형제로 인해 생길지 모를 또 다른 피해자를 우려했다. 

"내가 매스컴에 나와서 자꾸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지 요새는 편지를 안 써요.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랬는데. 세상 사람들에게 그를 거부하지 말라고 그랬던 것인데, 아무래도 자기에게 두 아이가 있다보니…. 자녀는 숨어 살고 있겠죠. 피해자 가족들은 억울함을 이야기라도 하고 사는데, 가해자 가족들은 3대, 4대까지 사형수로 사는 거나 다름없어요. 혹시나 그 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될까,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사형 #조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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