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의 심리에 관심이 많던 프랑스 탐정

[불멸의 탐정들 9] 작가 조르즈 시므농이 만든 '메그레 경감'

등록 2007.10.23 14:35수정 2007.10.24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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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나이의 목>
<사나이의 목>동서문화사
<사나이의 목> ⓒ 동서문화사

범죄소설의 역사를 장식했던 수많은 탐정들이 있다. 그 탐정들을 국적으로 분류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분류해본다면 영국 또는 미국출신의 탐정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명한 탐정들은 대부분 영국 또는 미국작가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미권의 작가가 아닌 다른 작가가 만든 탐정들도 많다. 그런 탐정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마도 조르즈 시므농이 만든 메그레 경감일 것이다. 시므농은 벨기에 출신의 프랑스 작가다. 메그레 경감이 등장하는 작품들도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어둠에 잠겨있는 레기용 해안, 가난한 노동자들이 북적이는 세느강변, 거친 선원들이 모이는 선술집의 풍경이 시므농의 작품들을 장식하고 있다. 메그레 경감도 이 무대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건을 수사한다.

 

자신을 따르는 많은 부하들을 거느린 메그레

 

'경감'이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메그레는 파리경시청 소속의 경찰이다. 180cm의 키에 100kg의 몸무게를 가진 거구의 경찰이다. 커다란 체격을 가지고 있지만,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끔씩 범인을 제압하기 위해서 그 큰 몸집으로 범인을 깔아누를 뿐이다.

 

왜냐하면 메그레 자신이 폭력을 싫어하기도 하고 동시에 그에게는 많은 부하경찰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항하는 범인을 검거할 경우에는 그의 부하들이 나선다. 메그레의 주위에는 진심으로 그를 추종하는 경찰들이 있다. 그들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워서 결국은 용의자를 체포하고 만다.

 

메그레가 부하들에게 신임을 얻는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도 그가 수사관으로서 유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도 부하들을 믿고 그들에게 따뜻한 태도를 잃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친 경찰일을 하다보면 다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용의자와 몸싸움을 하다가 머리에 술병을 얻어맞는 경찰도 있다. 메그레는 그런 사고를 당해서 집에 누워있는 경찰에게 일일이 찾아가서 위로해주기도 한다.

 

경찰들이 메그레를 따르는 다른 이유도 있다. 메그레는 어떤 경우에도 침착함과 확신을 잃지 않는다. 수사의 진도가 느리다고 판사가 호통을 쳐도,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시장이 항의해도 메그레는 언제나 자기만의 방식과 원칙을 버리지 않는다.

 

상관에게 일방적으로 혼난 직후에도 메그레는 기가 죽지않고 당당하게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끝내는 그 방식대로 범인을 검거한다. 이 정도 인물이라면 부하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1931년 작품인 <사나이의 목>에서 메그레는 44살의 나이로 등장한다. 그때 이미 20년 동안 경찰직에 몸 담고 있는 중이었다. 결혼해서 부인과 함께 살고있고, 딸이 있었지만 일찍 사망했다. 메그레는 술을 좋아하고, 셜록 홈즈의 전통을 충실히 따른 것처럼 파이프담배를 즐겨 피운다.

 

술과 파이프 담배를 좋아하는 메그레

 

흥미로운 것은 메그레가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이다. 그는 물적증거나 정황증거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 <황색의 개>에서 한 부하가 메그레에게 '지문을 채취할까요?'라고 묻는다. 메그레는 '뭐 해봐도 좋겠지'라고 대답할 뿐이다. 대신에 메그레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용의자로 의심받는 사람, 자신의 주변에서 서성이는 사람, 함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들의 말투와 눈빛, 행동을 파악하고 때로는 그들의 과거를 조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확신이 서면 그때부터는 누구의 간섭에도 신경쓰지 않고 밀어부치기 시작한다.

 

증거가 뚜렷해보이는 범인을 고의로 탈옥하게 만들고,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인물을 임의로 체포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인 위험한 인물과 한가롭게 술을 마시며 대화할때도 있다. 어찌보면 무모하고 답답해보이지만 메그레는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범인을 검거하면 주변의 인물에게 자신의 방법을 자세히 들려준다. 범인은 과연 어떤 심리상태로 이런 범행을 계획했는지, 범인을 극단적으로 만든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메그레에게 중요한 것은 범죄자의 심리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죽이기 위해서 살인을 하는 사나이, 세상을 원망하면서 운명의 불공평함을 증오하는 사나이, 남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뭔가를 계속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있다. 10년 넘게 복수심을 불태우는 사람, 공포에 사로잡혀서 계속 터무니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주위에 고래고래 소리치는 사람들도 있다.

 

메그레는 이런 인물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본다. 어떤 심정으로 범행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면, 범인을 검거하는 것도 그만큼 수월해질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에 관심이 많기 때문인지, 메그레가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은 어느정도 생소하게 느껴질수도 있다. 그는 단서들을 하나하나 분석하거나 논리적으로 정황을 파헤치지 않는다. 사건이 종결되고 나서도 그는 추리의 과정을 명쾌하게 해설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직관에 가깝게 주변인물들을 파악한다. 때로는 교묘한 속임수를 사용할때도 있지만, 속임수를 당하는 당사자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메그레가 수십년 동안 실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그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범죄자의 심리에 관심이 많던 메그레

 

그렇더라도 매번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니체가 했던 이야기처럼, 우리가 어둠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어둠도 우리의 심연을 들여다 보는 법. 수십 년간 수많은 범죄자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던 메그레 경감도 마지막에는 지쳤을지 모른다.

 

<제1호 수문>에서 메그레는 정년 전인데도 은퇴를 신청해서 허가를 얻어낸다. 한 부자가 메그레를 연봉 20만 프랑으로 고용하려고 하지만 메그레는 여기에도 응하지 않는다. 메그레가 원했던 것은 단지 휴식이다. 그는 부인과 함께 시골에 파묻혀서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사는 것을 원할 만큼 지친 것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지치게 했을까.

 

메그레 경감이 활약했던 세상은 밝고 생기넘치는 세상이 아니었다. 메그레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존재나 냄새, 인생 등이 뒤섞이고 얽힌 무겁고 답답한 세계였다. 그리고 메그레는 그것을 풀어놓으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사건을 해결하며 추악한 인간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지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메그레 경감의 작품에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많은 돈을 가지고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사람, 가난 속에서 세상에 대한 증오를 키워가는 사람,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한 남자의 인생을 파괴하는 사람 등. 메그레 경감을 창조한 작가 조르즈 시므농은 이런 사람들로 뒤섞인 세계를 작품속에서 구현하려고 했을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수도 있다. 시므농은 자신이 만든 인물 메그레와 비교해서 꽤나 대조적인 삶을 살았다. 메그레는 열심히 일해서 그에 따른 보수를 받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반면에 시므농은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불안정한 사생활을 가지고 있었다.

 

시므농은 평생 여러차례 결혼했고, 자신의 사치와 음주습관으로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반듯한 경감 메그레를 창조한 것은, 시므농 자신이 생각했던 도덕적인 인물의 구현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메그레가 범죄자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 처럼, 시므농도 메그레를 통해서 자기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 보려 했던 것인지 모른다.

사나이의 목

조르주 시므농 지음, 민희식 옮김,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2003


#메그레 경감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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