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이는 아픈 병아리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송성영
사랑방 컴퓨터 앞에서 한창 골머리를 싸 메고 있는데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사랑방과 안방에 전화가 연결되어 있는데 아내와 나는 동시에 수화기를 들었다.
"저 이균인데요…."
인상이 친구 유이균이었다. 한 시간 전쯤에도 전화를 걸어왔는데 이번에는 또 무엇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일까?
"왜?"
"인상이 한티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잠깐만 기달려."
나는 수화기를 놓지 않고 몰래 도청했다. 평소 엉뚱하기로 정평이 난 녀석들이었다. 한 놈이 전화를 걸어 '오늘 숙제 뭐냐?' 물으면 받는 놈은 '나도 모르겠는디' 그러다가 다시 통화하여 자신이 직접 물어 보면 될 것을 누구한테 물어봐서 전화해 달라는 뭐 이런 식의 황당한 대화를 하는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의 대화법은 그냥 막 말로 하자면 사오정 수준이고 그 수준을 최고도로 끌어올려 놓고 보면 선문답이었다. 선문답이 따로 있겠냐마는 아무튼 옆댕이서 녀석들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기분이 묘해진다.
생각해 보니 녀석들의 대화는 선문답처럼 골치 아픈 것이 아니다. 듣고 있노라며 생각이 또아리를 트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없어진다. 녀석들의 대화법은 단순하기에 갈등이 없다. 싸움이 없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저 꾹꾹 질러대며 장난을 걸고 싶어진다. 이번에는 또 뭔 싱거운 얘기를 할까 궁금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인상아 나여."
"왜?"
"내일 가방 갖구 가야돼?"
"가방? 아, 아니, 안가지구 갈 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내일 학예회가 있는 날이었는데 책가방을 가져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 모르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맥 손을 놓고 있던 인상이 녀석은 대체 내일 어떻게 할 작정이었을까? 역시나 녀석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웃음보를 꾹꾹 틀어막고 대화를 계속 엿들었다.
"백규는 가방 가져 간다구 하던데? 너는 잘 몰라?"
(최백규가 내일 가방을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면서 인상이에게 전화는 왜 걸었을까?)
"그래?, 내가 전화해서 애들 한테 물어 볼까?"
"그래 물어보고 전화해 줘."
"그래, 알았어."
"아, 아니 내가 전화해서 물어볼게."
"응 끊어."
그게 전부였다. 나는 하던 일을 접어 두고 녀석들의 대화 내용을 까먹기 전에 컴퓨터에 기록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카메라를 챙겨들고 쪼르르 안방으로 달려갔다. 녀석은 평소 그러하듯 가방을 까마득히 잊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