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에서 한 노인이 사냥꾼들의 총에 맞아 사망한 일이 발생하자 우리 마을 입구에 사냥금지구역 표시를 내 걸었지만 마을 뒷산에서는 여전히 총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송성영
사냥꾼들을 끌어들은 가장 큰 이유는 산짐승들로부터 농가 피해를 줄여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산짐승들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개체수가 늘어났을 뿐입니다. 먹이사슬이 단절 됐기 때문입니다. 마을 뒷산이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그만큼 망가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동네 뒷산이 까뭉개지면 산짐승들이 사람들을 피해 좀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오히려 산짐승들이 마을로 내려오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농작물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산짐승은 고라니입니다. 고라니 때문에 산 주변에 콩을 심는 것을 아예 포기해야 할 정도입니다. 고라니는 콩을 제일 좋아 합니다. 콩 열매는 물론이고 콩잎까지 죄다 먹습니다. 고라니가 출몰하는 산 아래 콩밭은 수확 철이 되면 앙상한 콩대만 남게 됩니다. 콩 뿐만이 아닙니다.
올해는 내가 소작하고 있는 논바닥에 까지 들어와 죄 밟고 뭉개 놓았습니다. 비록 손바닥만한 다랭이 논 한 칸에 불과했지만 고라니가 다녀간 자리는 벼가 쓰러져 여물지 않고 풀만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고라니들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라니를 잡겠다고 논과 밭 가장자리에 농약이나 쥐약도 무더기로 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라니뿐만 아니라 날 짐승이든 땅에 기어다는 짐승들이건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모든 짐승들은 사람들의 적이 된지 이미 오랩니다.
개발지상주의자들이 빼앗아 간 산짐승들의 터전하지만 산짐승들이 뭔 죄가 있겠습니까? 그 모든 죄 값을 받아야 할 당사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산짐승들이 아니라 돈이 되면 죄 까뭉개고 싹쓸이 해버리는 개발지상주의자들입니다. 산짐승들이 농가에 내려오는 것은 무분별한 개발에서 시작됩니다.
산짐승들이 농가에 내려오는 일은 생명을 위협 받는 일입니다. 산짐승들에게는 엄청난 모험입니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 마을로 내려오는 것은 개발지상주의자들에게 터전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개발지상주의자들이 산짐승들의 터전을 송두리째 도적질해 갔기 때문입니다. 그 피해가 어디 사냥꾼들에게 쫓겨 다니는 산짐승들에게만 있겠습니까? 사냥꾼들의 총소리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하는 것은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산짐승들과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그 중심에 개발지상주의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냥꾼들의 총소리는 강산이 까뭉개지기 시작하면서 이미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총소리에 불안하든 말든 상관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사냥꾼들. 그들이 과연 농가 피해를 줄여 주겠다며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대부분은 살상을 즐기고자 총을 쏘는 것이 아닐까요? 고라니의 머리통이나 심장에 정조준 하여 뜨거운 피 맛을 보겠다는 것이 아닐까요?
총소리로 인한 불안감을 쌀가마로 환산하면?개발지상주의자들, 자본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을 위해 국토를 난도질하고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 개발하겠다고 합니다. 과연 그 개발이 국민들을 위한 것일까요? 자본가들은 절대로 자신을 희생하거나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사냥꾼들이 집 뒤로 바싹 다가와 총질을 하던 날, 나는 사냥꾼들을 몰아내겠다며 작대기를 들고 산에 올랐습니다. 사냥꾼들을 만나기도 전에 산 아래 갈대숲에서 고라니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나와 고라니 사이의 거리는 불과 5m도 채 안됐습니다. 나도 놀라고 녀석도 놀랐습니다. 녀석은 사냥꾼들을 피해 산 아래까지 내려왔던 것입니다. 내가 사냥꾼이었다면 녀석은 벌써 피를 흘리고 쓰러졌을 것입니다. 나는 녀석이 놀래 도망치는 것을 보며 소리쳤습니다.
"야 인마! 어디가, 그냥 거기에 있어! 내가 그냥 집으로 돌아 갈테니께 넌 거기 숨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