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다 대구 총질이여!"

무분별한 사냥꾼들의 총질 불러온 개발지상주의자들의 탐욕

등록 2007.12.07 16:16수정 2007.12.0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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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짐승들이 농가에 내려오는 것은 무분별한 개발로 터전을 잃었기 때문이다
산짐승들이 농가에 내려오는 것은 무분별한 개발로 터전을 잃었기 때문이다송성영

"따 당! 따 당! 따 당! 따 당!"


총소리가 귀전을 때렸습니다. 네 발이 연속해서 발사되는 소리였습니다. 두 사람이 두 발씩 동시에 쐈던 모양입니다. 그 총소리는 공포심마저 몰고 왔습니다. 군에 입대해 훈련소 사격장에서 맨 처음 들었던 그런 끔직하고 살벌한 총소리였습니다.

뒷산에서 후려친 총소리는 곧장 앞산을 때렸습니다. 분명 공기총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군대에서 쏴봤던 M16 소총 소리에 버금갈 정도로 화력이 꽤 있을 것 같은 총에서 발사되는 소리였습니다.

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붙고 있는 산비탈 밭에서 저녁 찬 거리로 시금치를 솎아내고 있다가 총소리와 동시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습니다.

"이런 X새끼들이!"

총소리가 워낙 살벌해서 저거 한방 제대로 맞으면 최소 사망이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총소리는 산비탈 밭 바로 위에서 들려왔고 또한 그 소리가 워낙 커 밭으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던 것입니다.


"곰순아! 곰순아!"

밭에 따라 나섰다가 산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던 곰순이가 위험했습니다. 집 근처에서 총질을 하는 인간들이라면 우리집 개 곰순이가 개인 줄 빤히 알면서도 산짐승인줄 착각 했다며 장난삼아 방아쇠를 당기고도 남을만한 그런 인간들이었습니다.


늘 그랬듯이 곰순이는 득달같이 달려왔습니다. 나는 곰순이의 안전을 확인하고 총 소리가 난 산 쪽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습니다.

"야이, X새끼들아! 어디다 대구 함부로 총질여!"

나는 산 쪽을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습니다. 산신령이 있었다면 뭔 놈의 욕을 그렇게 살벌하게 쏴대나 싶었을 것입니다. 그 놈 참 어지간하다 했을 것입니다.

요즘은 통 뒷산에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냥꾼들 때문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총소리 때문입니다. 사냥금지 구역이 따로 없습니다. 산짐승이 있는 곳이면 민가가 훤히 보이는 곳도 여지없이 사냥구역이 됩니다.

아이들과 산에 오르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말이 되면 총소리는 더 심하게 들려옵니다. 총소리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이라지만 어디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은 어찌할 도리가 없잖습니까?

우리 집 뒷산에서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달, 11월 초순부터 였습니다. 사냥꾼이 쳐들어오기 전부터 동네 이장이 여러 차례 동네 방송으로 알렸습니다.

"다시 찾고 싶은 고장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마을을 찾는 사냥꾼들을 친절하게…."

우리 동네 뒷산에 사냥꾼들이 찾아오니 잘 안내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똑 같은 내용을 여려 차례 반복해서 방송했던 걸 보면 아마 시에서 어떤 지침이 내려왔던 모양입니다.

 경북 영천에서 한 노인이 사냥꾼들의 총에 맞아 사망한 일이 발생하자 우리 마을 입구에 사냥금지구역 표시를 내 걸었지만 마을 뒷산에서는 여전히 총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경북 영천에서 한 노인이 사냥꾼들의 총에 맞아 사망한 일이 발생하자 우리 마을 입구에 사냥금지구역 표시를 내 걸었지만 마을 뒷산에서는 여전히 총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송성영

사냥꾼들을 끌어들은 가장 큰 이유는 산짐승들로부터 농가 피해를 줄여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산짐승들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개체수가 늘어났을 뿐입니다. 먹이사슬이 단절 됐기 때문입니다. 마을 뒷산이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그만큼 망가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동네 뒷산이 까뭉개지면 산짐승들이 사람들을 피해 좀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오히려 산짐승들이 마을로 내려오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농작물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산짐승은 고라니입니다. 고라니 때문에 산 주변에 콩을 심는 것을 아예 포기해야 할 정도입니다. 고라니는 콩을 제일 좋아 합니다. 콩 열매는 물론이고 콩잎까지 죄다 먹습니다. 고라니가 출몰하는 산 아래 콩밭은 수확 철이 되면 앙상한 콩대만 남게 됩니다. 콩 뿐만이 아닙니다.

올해는 내가 소작하고 있는 논바닥에 까지 들어와 죄 밟고 뭉개 놓았습니다. 비록 손바닥만한 다랭이 논 한 칸에 불과했지만 고라니가 다녀간 자리는 벼가 쓰러져 여물지 않고 풀만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고라니들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라니를 잡겠다고 논과 밭 가장자리에 농약이나 쥐약도 무더기로 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라니뿐만 아니라 날 짐승이든 땅에 기어다는 짐승들이건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모든 짐승들은 사람들의 적이 된지 이미 오랩니다.

개발지상주의자들이 빼앗아 간 산짐승들의 터전

하지만 산짐승들이 뭔 죄가 있겠습니까? 그 모든 죄 값을 받아야 할 당사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산짐승들이 아니라 돈이 되면 죄 까뭉개고 싹쓸이 해버리는 개발지상주의자들입니다. 산짐승들이 농가에 내려오는 것은 무분별한 개발에서 시작됩니다.

산짐승들이 농가에 내려오는 일은 생명을 위협 받는 일입니다. 산짐승들에게는 엄청난 모험입니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 마을로 내려오는 것은 개발지상주의자들에게 터전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개발지상주의자들이 산짐승들의 터전을 송두리째 도적질해 갔기 때문입니다. 그 피해가 어디 사냥꾼들에게 쫓겨 다니는 산짐승들에게만 있겠습니까? 사냥꾼들의 총소리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하는 것은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산짐승들과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그 중심에 개발지상주의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냥꾼들의 총소리는 강산이 까뭉개지기 시작하면서 이미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총소리에 불안하든 말든 상관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사냥꾼들. 그들이 과연 농가 피해를 줄여 주겠다며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대부분은 살상을 즐기고자 총을 쏘는 것이 아닐까요? 고라니의 머리통이나 심장에 정조준 하여 뜨거운 피 맛을 보겠다는 것이 아닐까요? 

총소리로 인한 불안감을 쌀가마로 환산하면?

개발지상주의자들, 자본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을 위해 국토를 난도질하고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 개발하겠다고 합니다. 과연 그 개발이 국민들을 위한 것일까요? 자본가들은 절대로 자신을 희생하거나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사냥꾼들이 집 뒤로 바싹 다가와 총질을 하던 날, 나는 사냥꾼들을 몰아내겠다며 작대기를 들고 산에 올랐습니다. 사냥꾼들을 만나기도 전에 산 아래 갈대숲에서 고라니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나와 고라니 사이의 거리는 불과 5m도 채 안됐습니다. 나도 놀라고 녀석도 놀랐습니다. 녀석은 사냥꾼들을 피해 산 아래까지 내려왔던 것입니다. 내가 사냥꾼이었다면 녀석은 벌써 피를 흘리고 쓰러졌을 것입니다. 나는 녀석이 놀래 도망치는 것을 보며 소리쳤습니다.

"야 인마! 어디가, 그냥 거기에 있어! 내가 그냥 집으로 돌아 갈테니께 넌 거기 숨어 있어!"

 사냥개를 앞장 세우고 동네 한복판을 활보하는 총을 멘 사냥꾼
사냥개를 앞장 세우고 동네 한복판을 활보하는 총을 멘 사냥꾼 송성영

숨어 있던 고라니를 사냥꾼들에게 몰아주는 꼴이 될수도 있었습니다. 산을 오르던 발길을 돌려 집으로 되돌아오면서 사냥꾼들의 살벌한 총소리를 듣는 것 보다 다랭이 논 한쪽을 고라니에게 헌납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손익계산서를 따져 보아도 그랬습니다. 올해 벼농사는 다랭이 논을 헤집고 다닌 고라니 때문에 30kg 정도의 벼를 손해 봤습니다. 하지만 온 산을 들쑤시고 다니는 사냥꾼들의 총소리 때문에 내내 불안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 손해를 어떤 가치로 환산할 수 있겠습니까? 총소리로 인한 불안감은 쌀가마로 환산하면 3가마니, 아니 30가마니 그 이상의 쌀가마니로도 환산할 수 없을 만치의 심적으로 큰 타격을 안겨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라니로 인해 손해 본 30kg의 벼에 눈이 멀면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고라니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마을로 내려오지만 나는 다랭이 논 한 구석을 고라니에 헌납했다 하여 굶어 죽을 일은 없습니다. 고라니가 피해를 준만큼 덜 먹고 속 편하게 사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수확량이 많아지길 바라며 농사짓는 것도 결국은 뱃속 편하게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좀더 많이 먹겠다=좀더 많은 것을 파괴하겠다

개발지상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일이라면 짐승이건 사람들이건 상관하지 않고 함부로 방아쇠를 당깁니다. 힘없는 산짐승들을 사냥하듯 약소국가를 침략해 전쟁도 불사합니다.

조만간 대통령이 새로 뽑히게 됩니다. 개발지상주의를 외치는 인간이 대통령이 되면 한마디로 '골 때리는 총소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박정희 군부독재가 그러했듯이 개발지상주의자가 권력을 잡게 되면, 좀더 빠른 길을 내달리며 좀더 많이 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피가 되고 살이 되겠습니까?

대통령이 되겠다고 얼굴을 내민 대부분의 후보들이 국민들을 잘 먹이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 역시 먹는데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배고프면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과연 배고파 먹고자 하는 것일까요? 좀더 많이 먹겠다는 것입니다. 좀더 많이 먹겠다는 것은 좀더 많은 것을 파괴하겠다는 것입니다.

개발지상주의자가 대통령으로 뽑히게 되면 좀더 빨리, 좀더 많이 갖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경쟁적으로 앞만 보고 내달릴 것입니다. 우리 마을에서 처럼 눈망울 초롱초롱한 산짐승들은 머리통에 총 구멍이 뚫려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할 것입니다. 그 산짐승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개발지상주의자의 총질에 위협받고 있고 또한 그 총질을 멈추게 할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개발지상주의자들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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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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