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가정용 정미기를 구입했다. 쌀겨며 왕겨며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송성영
그렇게 정미기를 이용해 즉석에서 필요한 만큼 져서 곧바로 밥해 먹으니 밥맛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밥이 밥도둑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누가 찾아오면 밥맛 자랑하다가 좀 퍼주고 또 고마운 얼굴들 떠올려지면 여기 쪼금, 저기 쪼금 택배로 보냅니다. 따져 보지 않았지만 그 양이 적다 보니 쌀값보다 택배 값이 더 많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천수답 물꼬 때문에 고생한 것이며 이것저것 경제성을 따진다면 논바닥에 들어간 것의 반도 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즐겁습니다. 그 즐거움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습니까?
주변 사람들 중에 아직도 우리 쌀 맛을 못 분들이 많습니다. 아, 깜빡할 뻔했네요. 모내기를 했던 큰 놈네 학교 반 녀석과 애초에 약속한 대로 떡도 쪄 줘야 합니다. 모두가 즐거운 일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넉넉했다면 이런 즐거움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밥 한 공기며 떡 몇 쪼가리에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밥을 다 먹고 우리 집 큰놈, 작은놈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작은 녀석은 두 그릇이나 비웠습니다. 가만히 보니 녀석들 밥그릇에 밥알 몇 개가 굴러다닙니다.
"짜식들이, 다 먹어야지, 니들이 농사지은 건데, 고맙게 잘 먹고 되돌려 줘야지."녀석들은 눈만 꿈뻑거립니다. "뭘 돌려줘?" 그런 표정입니다.
"하늘과 땅에서 얻었으니 다시 하늘과 땅으로 돌려 줘야지, 거기서 얻은 밥알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먹어서 기운이 생기면 그걸 좋은 마음으로 세상에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겨, 그래야만 니들에게 다시 하늘과 땅이 밥을 주지…."나는 사이비 교주처럼 우쭐거리며 일장 연설을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혹시나 싶어 내 밥그릇을 봅니다. 내 밥그릇에도 밥알이 남아 있습니다. 슬그머니 한 알을 떼어먹습니다. 그런데 또 한 알이 더 있습니다. 아이들이 묘한 표정으로 봅니다. 심각했던 나 자신을 봅니다.
"얼래? 또 있는디? … 두울, 반쪼가리 밥알까지 셋, 아빠 밥그릇에도 밥알이 세 개나 남아있네…."나는 머쓱하니 입을 닫습니다. 일찍이 장일순 선생께서 나락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 있다고 했듯이 분명 밥은 모든 것을 담아내는 우주입니다. 하늘입니다. 밥맛은 바로 하늘과 땅의 맛입니다. 또한 밥맛은 좋은 사람들의 맛이고 그들의 마음입니다. 하늘과 땅과 더불어 먹을거리를 만들어 냈으니 사람도 하늘이며 땅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