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걷기 연습을 하다

지칠 줄 모르시는 어머니

등록 2007.11.12 08:50수정 2007.11.1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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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아침밥을 먹기도 전에 곱게 차려입고 모자도 쓰고 양말도 신으셨다. 목도리도 하셨다.

어머니 걷는 연습
어머니걷는 연습전희식
▲ 어머니 걷는 연습 ⓒ 전희식

 

"가자. 쑥 뜯으러 가자. 내가 어제 나가보니까 곰배띠기도 살아있고 죽동띠기도 안 죽고 살아있어. 쑥 뜯으러 같이 가자고 하자."

에고. 오늘 오전은 다 제쳐 놓고 어머님이랑 쑥 뜯으러 가야겠구나 싶지만 아침밥상 앞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서리가 하얗게 내리는 늦가을에 어디로 가야 우리 어머니 뜯을 쑥이 있을지.

 

바퀴의자를 끌고 와서 어머니를 태웠다. '쑥'이 문제가 아님을 나는 잘 안다. 어머니에게 '쑥'은 하나의 구실이다. '쑥'을 대체 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함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쑥'에 얽매이지 않는다.

 

거침없이 바퀴의자를 밀고 마당을 나오는데 어머니가 세우란다. 걸어서 가겠단다. 어제도 요 앞에 길가를 혼자서 걸어갔다 왔다는 것이다. 그러자고 했다. 서서 걷는 보행기를 가져와서 내가 뒤에서 어머니를 껴안고 걸음마를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되는 것이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종진(가명)아. 사진기. 사진기 어서.”


우리집 ‘스스로 세상학교’ 학생인 종진이가 사진기를 들고 방에서 나왔다. 한 10분 동안 열걸음 갔을까. 내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종진이가 뒤쪽에 있는 바퀴의자를 끌고 와 어머니를 앉혔다.

 

어머니 걷기
어머니걷기전희식
▲ 어머니 걷기 ⓒ 전희식

 

어머니는 보행기로는 못 걷겠다고 했다. 보행기는 힘들어서 못하지만 지팡이만 하나 주면 걷겠다고 했다. 나는 얼른 창고에 가서 지게에 기대어 있는 지게 작대기를 갖다 드렸다. 어머니는 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겠다는 것이다. 어림도 없었다. 어머니는 걸을 수 있는데 이상하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니 지팡이 짚고 걷겠다고 했다.
어머니지팡이 짚고 걷겠다고 했다.전희식
▲ 어머니 지팡이 짚고 걷겠다고 했다. ⓒ 전희식

 

작대기를 던진 어머니는 이번에는 지팡이는 힘드니까 그냥 한 손으로 무릎만 짚고 걷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어머니는 바퀴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만 잡아 주면 된다고 했다. 어머니 손을 잡고 겨드랑이를 껴안아 드렸다. 어머니는 한참 용을 썼다.

 

한참 용을 쓰다가 안 되겠다고 하면서 다시 바퀴의자에 앉으셨다. 걷는 걸 포기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이번에는 마당 텃밭가로 가서 담을 짚고 걸어 보겠다고 했다. 벌써 어머니랑 걷기를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났다. 건장한 내 몸이 지칠대로 지쳤는데 어머니의 뜻은 굳세기만 했다.

 

어머니 걷는 어머니
어머니걷는 어머니전희식
▲ 어머니 걷는 어머니 ⓒ 전희식

 

이러다가 무슨 사고가 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지만 어머니를 만류하고 싶지는 않았다. 낮은 돌 담을 짚고 옆으로 걸어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자신에 차 있는 어머니를 텃밭 가로 모시고 가서 세워 드렸다. 종진이와 함께 어머니 양쪽 겨드랑이를 붙잡아 드렸다. 허리도 안아서 부축해 드렸다.

어머니는 놓으라고 했다. 놔 드렸다. 몇 걸음 걸어 가셨다. 여차하면 안을 수 있도록 곁에서 따라갔다. 몇 걸음 걷다가 힘들다고 했다. 이제 그만 하시려나 했다. 아니었다. 이번에는 섬돌 앞으로 데려 가라 했다.

 

마루 아래 섬돌에서 어머니는 손을 짚고 한참을 걸으셨다. 이렇게 하다 기적이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이것이 이미 기적인지도 모른다.

 

“아이고 됐다. 인자 오줌도 누릅고 올라가자. 방에 가자. 춥다.”

방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오줌을 누인 다음 자리에 누우시래도 막무가내였다.

"내가 만날 누워 있으니께 다리가 말라 붙어서 몬 걷는거 아이가. 뭐든지 꼼작거려야지 안 누울란다. 뭐 일꺼리좀 줘라."

 

어머니 팥 가리시는 어머니
어머니팥 가리시는 어머니전희식
▲ 어머니 팥 가리시는 어머니 ⓒ 전희식

 

팥 타작 해서 자루에 넣어 두었던 팥을 드렸다. 오후까지 팥을 가리셨다. 꼼꼼히 가리신 팥에 검불이 낭자하였지만 어머니의 뿌듯한 보람이 서린 것이었다. 나는 며칠 전 걸러 낸 오미자 즙을 한 잔 따라서 어머니께 드렸다. 다 드시고 맛있다며 입맛을 다셨다. 뭐든 맛 있을 수밖에 없는 하루였겠다 싶다.

2007.11.12 08:50ⓒ 2007 OhmyNews
#어머니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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